기술이 인간을 닮아가는 시대

인공지능(AI)은 더 이상 단순한 계산 도구가 아니다. 챗GPT 같은 대화형 AI는 문맥을 이해하며 글을 쓰고, 음악과 그림을 창작하기도 한다. 테슬라와 구글 웨이모의 자율주행차는 도로 위를 달리고, 애플과 구글의 웨어러블 기기는 우리의 심장 박동과 수면 리듬을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기술이 점점 인간의 영역을 흉내 내고 확장해 갈수록, 우리는 단순히 편리함을 넘어 더 근본적인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바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다.

인간의 기계화 vs 기계의 인간화

오늘날 인간은 기술에 점점 더 의존한다. 넷플릭스의 추천 시스템이나 아마존의 맞춤형 제안은 우리의 의사결정을 대신한다. 편리하지만, 판단하지 않는 습관은 인간 고유의 직관과 불확실성을 감내하는 능력을 약화시킨다. 결국 인간은 스스로 기계화되고 있다.

반대로 기계는 점점 인간처럼 보이려 한다. 챗봇은 따뜻한 위로의 언어를 흉내 내고, 생성형 AI는 감정을 담은 듯한 음악을 만든다. 그러나 이는 체험 없는 모방일 뿐이다. 기계는 반응할 수 있지만 공감하지는 못한다. 이런 흐름은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점점 희미하게 만들며, 결국 우리로 하여금 ‘과연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마주서게 한다.

트랜스휴머니즘: 인간 정의의 재구성

이 흐름은 바로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과 맞닿아 있다. 트랜스휴머니즘은 과학기술로 인간의 신체적·정신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사상이다. 일론 머스크가 주도하는 뉴럴링크(Neuralink)는 뇌와 컴퓨터를 직접 연결하는 실험을 통해 마비 환자가 스스로 커서를 움직이도록 시연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는 인간과 흡사한 움직임을 구현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하며 물리적 경계를 허물고 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AI 기반 진단 시스템을 암 연구에 도입해 조기 발견 가능성을 높이고 있으며, 네이버와 카카오도 대화형 AI와 로봇 기술을 서비스에 접목하고 있다. 또한 유전자 편집 기술인 CRISPR는 난치병 치료와 인간 수명 연장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 이처럼 두뇌, 신체, 생명 자체가 기술과 결합하면서 인간의 정의는 다시 쓰이고 있다.

질문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바로 감정과 책임이다. AI는 “오늘 힘들었죠?”라고 말할 수 있지만, 타인의 고통을 내 문제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울림은 없다. 자율주행차 사고 사례처럼, 기술이 잘못된 결정을 내렸을 때도 법적·도덕적 책임은 기계가 아닌 인간에게 돌아간다. 책임을 지는 태도야말로 인간만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다.

또한 우리는 오랫동안 일을 통해 자신을 정의해 왔다. “나는 ○○하는 사람입니다”라는 직업적 정체성은 곧 자존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AI가 보고서를 작성하고, 판례를 요약하며, 음악을 작곡하는 시대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자신의 존재를 묻는 존재(Dasein)”라 했다.

“나는 왜 이 길을 선택했는가?”, “이 삶은 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만 인간은 진정 인간다워질 수 있다.

질문이 인간을 지킨다

트랜스휴머니즘은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무너뜨리지만, 그 속에서 오히려 더 분명해지는 사실이 있다. 실수하고, 부끄러워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AI는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해줄 수 있지만, 우리를 대신해 살아줄 수는 없다.

따라서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은 기술을 따라잡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발판 삼아 더 깊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길을 찾는 것이다. 우리가 질문을 멈추지 않는 한 인간다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AI 시대의 핵심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이어가는 용기, 그 자체에 달려 있다.

필자소개

㈜TCC스틸 재무팀장으로, 현재 한국생성형AI연구원 AI 전문교수와 한국소프트웨어기술인협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동 저서로 ‘AI와 휴먼 인사이트’, ‘엄마·아빠와 함께 즐기는 챗GPT 세상(AI로 찾아가는 우리 아이 꿈 지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