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1만2725명…점차 수는 줄지만
명절에도 나 홀로…“혼자가 편하다”
“도움 필요한데 거절하면 안타까워”
명절되면 위기대응 콜센터 문의 몰려

지난해 추석 명절을 맞아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인들이 다시서기희망지원센터가 마련한 차례를 지내며 절을 올리고 있다. [사진제공=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지난해 추석 명절을 맞아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인들이 다시서기희망지원센터가 마련한 차례를 지내며 절을 올리고 있다. [사진제공=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명절이나 연말이 되면 생각나는 소외된 이웃들이 있다. 거리에서 살아가는 노숙인들이다.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집과 가정을 잃은 채 살아가는 이웃들인 노숙인들은 올 추석을 어떻게 맞고 있을까.

보건복지부가 지난 6월 발표한 2024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전국 노숙인 등 수는 1만2725명이다. 이는 3년 전인 지난 2021년과 대비 11.6%(1679명) 감소한 인원이다.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첫 실태조사를 한 2016년 1만7532명과 비교해 그 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노숙인이 줄어드는 배경에는 우선 복지 정책과 현장 지원이 시간이 흐를수록 체계화되며 효과를 보는 측면이 있다. 거처유형별로 구분하면 지난해 거리 노숙인은 1349명으로 전체 노숙인의 10.6%에 불과했다. 자활·재활·요양 등 시설 입소 노숙인은 6659명(52.3%), 쪽방주민은 4717명(37.1%)였다.

노숙인 감소의 또다른 원인은 노령화다. 시설 노숙인 중 60대 비중은 37.1%, 70대 비중은 15.8%였다. 생활시설 입소자 중 65세 이상 노인 비율은 36.8%이며 특히 노숙인 요양시설의 경우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46.6%에 달한다.

경제활동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노숙인의 주요 수입원은 공공부조 수입이 47.8%, 공공 근로활동 수입이 37.6%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노숙인 중 75.3%가 취업을 하지 않았으며 이 중 56.9%는 근로 능력이 없다고 답했다.

한파가 지속되고 있는 지난 2월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립 다시서기서울역희망지원센터를 찾은 노숙인들이 몸을 녹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한파가 지속되고 있는 지난 2월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립 다시서기서울역희망지원센터를 찾은 노숙인들이 몸을 녹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알코올 중독에 건강 해쳐도 간섭 못 해

서울역은 대표적인 노숙인 밀집지역 중 하나다. 서울역 광장 한켠에는 현장에서 노숙인을 보호하고 주거, 의료, 일자리 지원을 통해 자립을 지원하는 다시서기희망지원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투데이신문은 추석을 맞아 해당 센터의 도움을 받아 노숙인 2명의 얘기를 들어봤다.

A씨(56세, 남성)는 작은 체구에 백발이 성성한 모습이었다. 좀체 자신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는데 본인은 “혼자가 편하다. 오랫동안 혼자 살다보니 그렇다”고 말했다. 간신히 말을 꺼낸 A씨는 지난 1989년부터 노숙과 쪽방 생활을 전전하며 지내고 있다. 현재는 남대문 지하상가에 자리를 잡고 거리에서 살고 있다.

A씨는 대구에서 살다가 형이 있는 서울로 왔지만 이내 형을 떠나 거리로 나왔다. 스무살에 홀로 나온 A씨는 일단 건설현장 등에서 일하며 단칸방에서 살았다고 한다. 일이 끊기면 다시 방을 나와 거리에서 생활하고 일이 생기면 쪽방에서 사는 생활을 계속하며 서울역 인근을 전전했다.

A씨가 일을 하면서도 노숙인 생활을 청산하지 못한 이유는 음주다. 한 번 술을 마시면 3~4일씩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덜컥 건강이 안 좋아졌다. 현재 그는 심장질환과 허리 디스크를 앓고 있다. 올 여름에는 두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을 정도다. 지금도 병원을 다니면서 알코올 중독 치료도 받고 있는 중이다.

오랫동안 알코올에 의존했기에 알코올중독 노숙인들은 혼자 사는 생활을 하면 으레 술부터 찾는다고 한다. A씨는 “어릴적 심부름을 하면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라며 “모든 생각을 안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두 잔 가량 술을 마셨는데 숨이 가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2주째 금주 중인 상태다.

A씨가 다시서기희망지원센터와 연을 맺은 때는 지난 2009년 즈음이다. 좀체 곁을 내주지 않는 A씨지만 지금은 센터에 대한 신뢰가 강하다. 하지만 아직 시설 입소는 망설이는 모습이다. “센터에서 샤워도 하고 옷도 세탁한다”고 하면서도 한사코 시설 입소에는 손을 내젓는다. 그는 “시설에 가면 가둬놓는다고 해서 그쪽으로는 생각도 안하고 있다”고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A씨는 최근까지 병원에 다니는 기록을 토대로 기초생활수급을 받게 돼 영등포 인근의 월세 25만원 쪽방에서 살 수 있었다. 그러나 혼자 살면서 다시 술을 찾았다고 한다. 결국 병원 기록 등을 제때 챙기지 못해 증빙자료 미비로 수급이 끊겼고 쪽방을 나오게 됐다.

A씨는 남대문 지하상가에 박스들로 집을 짓고 거주하면서 일과는 센터에서 보내고 있다. TV를 가장 많이 보지만 즐겨보는 프로그램은 따로 없고 관심사도 없다고 한다. 평소 혼자 있으면 무슨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느냐는 질문에도 가타부타 말이 없다. 그는 “가족들을 다시 찾아 만날 생각은 없다. 혼자가 편하다”고 말을 줄였다.

그런 그에게 명절은 큰 의미가 없는 날이다. 올해 설 명절은 교회에서 침낭을 나눠줘 추위를 견뎠다고 한다. 지난해 추석은 수급을 받고 있던 때여서 영등포 쪽방에서 지냈다.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왔지만 먹을거리를 선물로 주고 갔다고 한다. 쪽방촌 역시 이웃에 대한 관심이 없다보니 명절 내내 방에서 TV만 보며 지냈다고 한다. 아마 올해 추석 명절도 다르지 않게 보낼 모양이다.

A씨의 관심사라면 다시 수급을 받아 쪽방을 구하는 것이다. 그가 혼자만의 방으로 돌아간다면 과연 술을 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센터에서도 그 부분은 관여할 수 없다. 노숙인들의 의지를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구 갈월동에 위치한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서 명절을 맞아 노숙인들이 차례를 올리고 있다. [사진제공=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서울 용산구 갈월동에 위치한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서 명절을 맞아 노숙인들이 차례를 올리고 있다. [사진제공=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다시서기’ 희망 키우다…“월세방이 목표”

B씨(46세, 남성)는 다시서기희망지원센터에서 전일제 근무를 하고 있다. 수입이 생기며 현재는 동자동 쪽방촌의 월세 15만원 쪽방에서 살고 있다. 센터는 노숙인들의 자립을 도울 목적으로 센터 자체적으로 일자리를 지원하고 있다. 그는 서울역 인근의 노숙인들을 정기적으로 순찰을 돌며 한명씩 상태를 파악하는 역할을 맡았다.

B씨는 지난 2015년 무렵 식당을 운영하다가 사기를 당했다고 한다. 전 재산을 잃은 그는 PC방 등에서 지내다가 다음해인 2016년 다시서기희망지원센터와 인연을 맺게 됐다. 

처음부터 B씨는 자활 의지가 높은 편이었다. 센터에서 일자리를 얻고 때로는 실업급여도 받아 쪽방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쪽방촌에 있는 상담소에서 일하기도 하는 등 주위에 같은 처지의 이웃들을 돕는 일에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지금은 월세방을 구하는 게 목표다. 동자동 쪽방촌은 계속 개발 얘기가 돌면서 뒤숭숭한 분위기라는 귀띔이다.

B씨는 “처음에는 밥을 사먹을 돈, 술 한 잔 사먹을 돈만 생각하고 일했지만 지금은 만나는 사람마다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라며 “동자동 쪽방촌 역시 서울역에서 넘어간 사람이 많다. 친한 사람들도 많고 이웃으로 지내며 서로 힘든 점을 이겨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서 지내다가 방을 얻어 나가거나 가족을 찾는 사람을 보면 느낌이 좋다”고 보람찬 미소를 짓기도 했다.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서 이번 추석에 노숙인들에게 나눠줄 선물 키트 구성을 확인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서 이번 추석에 노숙인들에게 나눠줄 선물 키트 구성을 확인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하지만 노숙인이 스스로 자립 의지를 갖고 삶을 바꿔나가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B씨는 “거리로 나온 사람들은 인생에 한번 큰 시련을 맞았다. 그 뒤에 노숙인 생활을 하면서 한 번 무너진 이후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라며 “남이 뭐라 하는 것도 귀찮고 무엇을 해주겠다고 해도 귀찮아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순찰을 오래 하다보니 그는 서울역 인근에 모인 노숙인들의 삶에 대해 잘 알고 있다. B씨는 “대략 100여명 정도 인근에 있는데 그나마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있다면 괜찮은데 구석에서 나오지 않는 분들도 많다”면서 “그들이 잘 있는지 확인하고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옷가지나 약을 드리며 살핀다. 심각한 경우면 병원에 연계하는 일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순찰을 하면서 가장 안타까울 때는 도움을 거부하는 노숙인을 만났을 때다. B씨는 “용산역 텐트촌과 회현역, 남대문시장도 순찰 범위에 든다. 주로 노숙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는데 지하도를 선호하는 편이다”라며 “분명 도움이 필요한 사람인데 한사코 거부하면 방법이 없다. 본인이 병원이든 어디든 가지 않겠다고 하면 경찰이나 119가 출동해도 안 된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시설에서 일어난 감금 사건 등이 이슈가 되면서 선택을 존중하는 쪽으로 바뀌었는데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분명한데도 손을 댈 수 없으니 안타깝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B씨는 명절에도 순찰 근무를 계속할 계획이다. “부모님이 지방에 계신데 1년에 몇 번 찾아간다. 하지만 이번 추석에는 이 곳에서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명절인데 쉬고 싶지 않냐고 묻자 “여기서 일하다보면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명절마다 쪽방이나 센터로 찾아오는 자원봉사자들을 많이 만났다고 했다. B씨는 “종교단체나 사회단체에서도 오고 회사 차원에서 찾는 경우도 있다”라며 “지원물품만 전달하고 가기도 하는데 바쁘겠지만 행사도 함께하고 얘기도 나누고 간다면 더 힘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센터에서도 자체적으로 명절 행사를 한다. 식사도 나오고 선물도 나오니까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으면 한다”고 이번 추석을 맞는 바람을 밝혔다.

김정용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팀장이 이번 추석에 노숙인들에게 전달할 송편을 냉동고에서 꺼내 점검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김정용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팀장이 이번 추석에 노숙인들에게 전달할 송편을 냉동고에서 꺼내 점검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지자체 사업인 노숙인 지원, 국가사업 전환 필요

서울역 다시서기희망지원센터가 현장기지라면 서울 용산구 갈월동에 위치한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는 본부에 해당한다. 다시서기센터는 서울시가 100% 예산을 지원하는 시립기관으로 현재 대한성공회유지재단이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김정용 센터 팀장(사회복지사)은 “노숙인 위기대응 콜센터를 운영하는데 명절이 되면 관공서나 경찰에서 전화가 많이 오는 편이다. 아무래도 명절 시기가 되면 홀로 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더 유심히 보게 되고 신고를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기 때문”이라며 “기존에는 원래 노숙생활을 했거나 서울로 무작정 와서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정신질환이나 술 때문에 주거를 상실한 경우가 많다”고 사정을 전했다. 전체 노숙인은 감소 추세지만 정신질환 등에 의한 새로운 유형의 사례가 많아지면서 대책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김 팀장은 “센터에 정신건강팀이 있지만 전국에서 서울역으로 모이다보니 전문인력이 부족한 상태”라며 “여성 노숙인 전문 시설도 수도권을 벗어나면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노숙인 지원사업은 당초 중앙정부 관할이었는데 몇 년 전 지방자치단체 사업으로 전환됐다. 몇몇 보조사업은 남았지만 몇몇 사업들은 지자체 사업이 아닌 국가사업으로 가야할 부분이 있어 계속 건의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팀장은 “노숙인들은 명절 때 가족과 단절돼 있다보니 더욱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센터에서 공동으로 차례도 지내고 제기차기, 투호 던지기, 윷놀이 등 전통놀이를 함께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한다”며 “올해도 여러 프로그램을 준비해 노숙인들과 함께 명절을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민들 중에서는 노숙인들을 보며 ‘왜 가만히 있냐. 일을 해라’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노숙까지 많은 단계를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을 거치며 몸도 마음도 아픈 사람들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따뜻한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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