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3명·오후에 2명, 자원봉사자 상주 맡아
화장 뒤 유택동산 산골되거나 봉안시설에 안치
정부 외면에도 시민 체감 높아…“실태조사 시급”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

지난달 22일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서울시립승화원에서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가 치러지고 있다. ⓒ투데이신문
지난달 22일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서울시립승화원에서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가 치러지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지금부터 조○○님, 윤○○님, 노○○님의 장례식을 진행하겠습니다.” 지난달 22일 오전 9시 30분. 작은 빈소에 8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위패에는 각각 3명의 고인이 모셔져 있다.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서울시립승화원의 그리다 빈소. 이 빈소에서는 이날 오전에 3명, 오후에 2명의 무연고자 공영장례를 치른다.

장례 사회는 나눔과나눔 김민석 사무국장이 맡았다. 나눔과나눔은 무연고 사망자의 사회적 장례를 지원하는 비영리 민간단체다. 오전 장례를 치르는 3명의 무연고자는 지인이 아무도 장례를 찾지 않는다. 대신 자원봉사자들과 장례지도사들이 장례를 엄수한다. 고인 모두 시신은 당일 화장을 하고 분골해 승화원 내 유택동산에 산골된다. 김 사무국장이 말한다. “고인분들의 삶을 생각하면서 잠시 묵념하겠습니다.”

영정사진은 1명만 있었다. 남은 2명의 고인은 영정으로 쓸 사진을 확보하지 못했다. 사망날짜는 지난 7월 18일, 8월 14일, 8월 30일로 각각 달랐다. 

무연고자 사망시 연고자 파악은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병원에서 사망했다면 병원과 장례식장에서 연고자를 알아본다. 그래도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해당 기초지방자치단체가 가족관계등록부, 제적등본 등에 확인된 고인의 연고자를 파악한다. 연고자가 있더라도 확인이 안되거나 시신 인수를 거부하면 무연고자 사망으로 분류된다.

병원이 아닌 장소에서 사망했다면 경찰이 출동해 수사를 진행하고 연고자를 찾는다. 경찰이 찾지 못하면 기초지자체가 맡아 연고자를 다시 찾고 끝내 없다면 무연고자로 확정한다.

묵념 이후 고인 예식이 진행된다. 향을 피우고 마지막 식사를 올리는 상식의 예를 올린다. 자원봉사자들이 한명씩 상주가 돼 고인에게 술잔을 올리고 큰절을 두 번 한다. 김 사무국장이 장례 축문을 읊는다.

“영전에 삼가 고합니다. 아무리 슬퍼도 헤어져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을 어찌 하겠습니까. 외롭고 힘들었을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영원히 가시는 길이 아쉬워 술 한 잔 올려드렸습니다.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으나 고이 길 떠나십시오.”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가 치러지는 경기도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의 그리다 빈소. ⓒ투데이신문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가 치러지는 경기도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의 그리다 빈소. ⓒ투데이신문

자원봉사자들과 장례지도사들이 한명씩 조화를 한 송이씩 받아 헌화한다. 이렇게 빈소에서의 장례가 마무리되는 시간은 오전 10시쯤이 됐다. 참석자들이 미리 대기하는 관을 운구하러 빈소를 나선다. 상주를 맡은 자원봉사자를 선두로 고인들의 관이 하나씩 화장시설로 운구된다. 경건한 분위기 속에 화장이 진행된다.

오전 11시 30분 무렵. 화장이 끝났다. 자원봉사자들이 유골을 수습해 함에 담는 과정을 함께 참관한다. 김 사무국장의 인솔로 상주인 자원봉사자들이 유골함을 들고 마지막 장례 과정을 하고자 이동한다. 이곳에서 함께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 속에서 기자까지 합쳐 8명의 인원이 조용히 3개의 분골함을 들고 장례식장을 나와 유택동산으로 이동한다.

승화원 유택동산은 2곳에 조성돼 있다. 이날은 장례식장 아래쪽에 자리한 유택동산이 목적지다. 유택동산 제단 위에 고인의 위패와 분골함을 올려놓고 참석자들이 마지막 명복을 비는 묵념을 한다. 이에 중앙투입구 덮개를 열고 분골함의 뼛가루를 투입구 안으로 흘려 넣어 모신다. 무연고자라도 경우에 따라 이처럼 산골하거나 아니면 무연고 추모의 집(용미리 1묘지 공영장례 봉안시설)에 5년 동안 봉안된다.

유택동산 투입구 덮개를 닫으며 이날 오전 장례는 마무리됐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3명의 외로운 넋이 가는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지난달 22일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서울시립승화원에서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가 치러지고 있다. ⓒ투데이신문
지난달 22일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서울시립승화원에서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가 치러지고 있다. ⓒ투데이신문

“가족 있다면 함께 마지막 길 배웅할 수 있길”

무연고자 장례를 찾은 자원봉사자들은 어떻게 왔을까. 본보가 만난 A씨(26세, 남성)는 대학교 4학년 재학생으로 졸업 요건을 충족하고자 자원봉사를 찾다가 지원하게 됐다. 이날 장례가 세 번째 무연고자 장례 자원봉사다. 그는 “혼자 쓸쓸히 돌아가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라며 “이들이 사회 안전망에서 벗어난 사각지대에 있었다는 점이 느껴져서 아직 우리 사회의 복지체계에 허점이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A씨는 “지난번 무연고자 장례에는 유가족이 참석한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쓸쓸히 가시는 것보다 가족이 있다면 그래도 함께해 마지막 길을 배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그러면서 “서울시와 민간에서 대신 장례를 치르고 있는데 유가족이 있는 무연고자 공영장례라도 정부 지원을 통해 유가족들이 직접 가는 길을 배웅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어떨까 싶다”고 덧붙였다.

B씨(52세, 남성)는 장례지도사를 준비하다가 무연고자 장례를 알게 돼 자원봉사를 왔다. 이번에 두 번째 공영장례 자원봉사다. 그는 “장례지도사를 준비하면서 공영장례를 알게 됐다. 직접 장례의 과정을 경험할 수 있어 다시 찾게 됐다”고 말했다.

B씨는 “남의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나중에 내가 당사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라며 “장례를 함께 치르면서 생전 일면식도 없었던 사람들이지만 마지막 가시는 길은 함께한다는 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소감을 얘기했다. 이어 “앞으로도 꾸준히 참여해 사회에 봉사도 하고 스스로 삶과 죽음에 대해 배우려 한다”고 전했다.

오랫동안 공영장례에 참여한 한 자원봉사자는 “서울에서 공영장례를 치르는 곳은 승화원 한 곳 뿐인데 무연고자 사망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러다보니 합동으로 장례를 치를 수밖에 없다”라며 “보통 사망을 확인한 이후 공영장례를 치르기까지 한달에서 길면 3개월까지 걸린다”고 귀띔했다. 그는 “무연고자 장례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앞으로 더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며 “장례를 치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빨리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발견해 연고자를 찾거나 새로 연고자를 만들도록 해서 그 안에서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도록 미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가 치러지는 경기도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 유택동산. ⓒ투데이신문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가 치러지는 경기도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 유택동산. ⓒ투데이신문

서울에서만 무연고 공영장례 1392건…전국 6139명

서울시설공단에 따르면 승화원 1곳에서만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 건수가 2022년 1102건, 2023년 1218건, 2024년 1392건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올해도 지난 7월 기준 847건에 달한다. 지난해 전국에서 6139명이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됐지만 공식적인 통계는 없는 상황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2019년 12월 무연고자 사망자가 급속도로 늘어나자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해 무연고 시신이나 무연분묘 유골의 봉안기간은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의 외면과 달리 무연고자 공영장례에 대한 정책 체감도는 상당한 편이다. 서울시가 지난 2020년 12월 한 대 동안 불합리한 민원처리절차를 합리적으로 개선했거나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서비스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한 서울시 민원서비스 개선 우수사례를 꼽았는데 최우수 사례로 공영장례지원이 선정된 적도 있다. 공영장례지원은 서울시 엠보팅에서 열흘 간 진행된 온라인투표에서 1만4628표 중 2508표를 받아 1위에 꼽혔다.

지난달 2일 열린 제4회 정부혁신 최초·최고 선정기관 인증패 수여식에서는 서울시 공영장례가 국내 최고사례 인증패를 수상했다. 정부혁신 최초·최고 공모는 행정안전부와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 2023년부터 공동 주관하고 있으며 국민 편의와 안전을 높인 혁신 사례를 추진하는 기관을 선정하는 행사다.

서울시는 2018년부터 공영장례지원 제도를 도입했으며 장례 과정 전반인 염습, 수의, 입관, 운구, 화장, 봉안, 장례의식 등 전 과정을 지원하고 있다. 또, 사단법인 나눔과나눔과 함께 공영장례 상담·지원센터를 운영하며 24시간 365일 장례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 2022년 10월 무연고 사망자 합동추모제가 열린 경기 파주시 서울시립승화원 제1묘지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 집 앞에서 참석자들이 제를 올리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2022년 10월 무연고 사망자 합동추모제가 열린 경기 파주시 서울시립승화원 제1묘지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 집 앞에서 참석자들이 제를 올리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공영장례, 보편적 사회보장 되려면 법 개정 필요”

김민석 나눔과나눔 사무국장은 “서울시의 경우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닌 무연고 사망자에게 최대 1인당 214만8000원을 지원하고 있으며 특히 연고자가 있는 저소득시민에게는 최대 283만5000원까지 지원하고 있다”라며 “서울에서는 공영장례가 당연한 제도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연고자가 있는 저소득시민 공영장례는 사망자와 연고자 모두 경제적 어려움으로 장사 진행이 곤란한 경우에 해당된다. 이를 통해 경제적 부담으로 장례를 함께하지 못하는 사례를 최소화하고 있다.

김 사무국장은 “궁극적으로 무연고 사망이 늘어나지 않도록 대응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현재 상황이 어떤지 실태조사부터 이뤄져야 한다”라며 “나눔과나눔의 근본적인 목표는 어떻게든 연고자를 찾아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할 수 있도록 해주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영장례가 보편적인 사회보장 제도가 되도록 해 연고자가 꼭 장례를 치르기보다 비혈연 관계라도 고인의 장례를 치르길 원하는 사람이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민법, 가족관계등록법 등 현행법 개정이 필요한 대목이다. 김 사무국장은 “점차 내가 무연고 사망자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하기 어려운 사회가 되고 있다. 남의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제도와 사회가 더 빨리 달라질 수 있으리라 본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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