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일 서울 종로구 동대문역 인근에서 진행된 자유대학 정부 규탄 집회 모습. [사진제공=뉴시스]<br>
지난 10월 3일 서울 종로구 동대문역 인근에서 진행된 자유대학 정부 규탄 집회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국내 혐중(嫌中)시위를 겨냥해 특정 국가 및 국민에 대한 모욕·명예훼손을 형사처벌하는 것이 골자인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를 두고 위헌 소지와 평등권·표현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침해 등의 우려가 나오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표현의 자유 억압하는 법안”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7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은 최근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공동발의자로는 더불어민주당 의원 9명(이광희·신정훈·박정현·윤건영·이상식·박균택·허성무·서영교·권칠승)과 무소속 최혁진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양 의원은 발의 배경에 대해 “최근 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특정 국가나 국민, 특정 인종에 대한 혐오적 발언으로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각종 혐오 표현과 욕설이 난무하는 집회·시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며 “현행 법체계로는 이러한 행위를 규제할만한 마땅한 법률이 없어 처벌의 공백이 지속되고 있다는 비판이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행법상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과 모욕은 모두 피해자를 특정되는 사람에 한정하고 있어 특정 집단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모욕을 이유로는 처벌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양 의원은 지난 10월 3일에 진행됐던 ‘혐중집회’를 예시로 들었다. 그는 “집회 참가자들이 ‘짱개, 북괴, 빨갱이는 대한민국에서 어서 빨리 꺼져라’라는 내용이 포함된 일명 짱깨송을 부르면서 각종 욕설과 비속어를 난발했다”며 “국정자원관리원 화재에 중국인 개입, 부정선거 중국 개입 등 허위사실을 유포하며 특정 국가와 특정 국민에 대한 모욕과 명예훼손을 일삼았다”고 말했다.

이에 양 의원은 이번 개정을 통해 ‘특정 집단에 대한 모욕’ 조항을 신설했다. 특정 국가·국민·인종을 모욕한 자를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더불어 기존 형법상 명예훼손죄에 적용되는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 불가)와 ‘친고죄’(피해자 고소가 있어야 처벌 가능) 조항을 빼 수사기관이 직접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 잇따르는 혐중시위를 제지하겠다는 취지로 발의된 법안이지만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논란이 커지자 양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개정안은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과 모욕의 대상을 중국, 중국인에 한정한 것이 아니며 전 세계 어느 나라에 대해서든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허위사실을 유포하며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하는 경우를 처벌하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표현의 자유를 무시하고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는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의 경우에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판시를 수차례 한 바 있다”며 “또 독일, 프랑스, 영국 등 대다수의 선진국가에서는 국가, 인종, 종교, 출신, 성별 등을 이유로 한 혐오표현을 처벌하고 있다”고 짚었다.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 [시진제공=뉴시스]&nbsp;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 [시진제공=뉴시스] 

이 같은 해명에도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은 모양새다. 야당에서는 법안이 시행되면 정부가 임의로 ‘반중 인사’나 ‘정치적 발언자’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며 표현의 자유 침해를 지적하고 있다. 

국민의힘 정희용 사무총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해당 개정안을 언급하며 “특정 국가, 국민 인종을 모욕하는 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고 반의사불벌죄와 친고죄 조항을 제외해서 수사기관이 직접 수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기까지 했다”며 “만약 법안이 시행되면 정부나 수사기관이 임의로 명예훼손 발언이나 혐오 발언에 대해 처벌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가장 큰 문제는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억압하는 것에 있다. 또한 법안 제안 이유에서 콕 집어, ‘혐중 집회’를 사례로 언급하고 있다”며 “중국에 대한 비판 발언조차도 임의로 수사하고 처벌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편 가르기와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표현 자유 억압 법안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반중(反中) 시위와 반미(反美) 시위에 상반된 대응을 보인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국민의힘 이재능 미디어대변인은 전날 자신의 SNS을 통해 “전국민주노동총연맹 주관의 반미 시위는 외면하더니 정작 반중 시위를 이유로 감옥에 보내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성조기를 찢고 미국 대사관에 불을 질러도 헌법은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반미운동’ 그 자체를 처벌하지는 않았다”며 “그런데 공산주의 국가들의 동북공정과 안보위협, 체제위협을 비판하는 것은 5년 이하 징역형의 사유가 되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문금주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내고 “해당 법안이 겨누는 것은 ‘비판’이 아니라 거짓과 혐오를 퍼뜨리며 타인을 짓밟는 언어의 폭력”이라며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지만 그 자유는 타인의 인격을 훼손하고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방패가 될 수 없다. 혐오를 자유라 부르는 순간, 자유는 이미 그 의미를 잃는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그동안 위기와 재난의 순간마다 특정 인종을 향한 공포를 조장하고 ‘중국인 의료·선거·부동산 쇼핑 방지법’ 같은 낙인찍기 법안을 내세워 차별과 혐오를 정치의 무기로 사용해 왔다”며 “혐오와 차별의 언어를 반드시 끝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법안은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혐오표현 규제’와 ‘표현의 자유 보장’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사회적 논쟁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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