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기노 기자/투데이신문 미디어콘텐츠본부장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교보생명이 시민 2만 5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투표를 벌인 결과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 최고의 광화문 글판 문구로 선정됐다고 한다. 교보생명은 “‘견디며 익어가는 인내와 회복의 메시지’가 시민의 일상에 다정한 위로로 다가섰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전했다.

대추가 저절로 달고 향이 나게 붉어지지 않는 것처럼 인간도 저절로 성숙해지지 않는다. 우연이나 요행으로 ‘성숙한 인간’의 길에 도달할 수는 없다. 누구나 가슴 한 편에 천둥과 벼락 몇 개쯤은 품고 살 것 같다.

사람의 내면에는 격렬한 시련을 견디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 신산스러운 시간을 견뎌낸 이는 비로소 자신을 다스릴 힘을 갖게 된다. 그 힘이 조금 남는다면 타자에게 사랑과 배려를 베풀 여유도 가질 것이다. 대추가 외풍을 견딘 만큼 더 깊은 붉음을 띠듯 사람도 고난과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야 비로소 익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고난의 시간을 견뎌낸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인내’란 단순히 버티는 것이 아니라 시련을 내면화하여 자신을 더욱 깊고 넓은 존재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회복’도 상처로부터의 단순한 원상복귀가 아니라 이전보다 단단하고 성숙한 존재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재생의 과정일 것이다.

그래서 복잡다단한 인간관계로 고통을 받는 이에게 ‘무조건 견뎌라’고 말하는 것도 무책임한 것 같다.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내면을 객관화하는 게 필요한 것이다. 대추는 인간이 아니기에 태풍이 와도 벼락이 쳐도 그것을 온전히 제 몸으로 다 받아낸다.

인간도 어쩔 수 없이 고통을 받아들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곧 내면의 성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대추처럼 자연의 질서에 몸을 맡긴 채 저절로 익어가는 존재가 아니다. 고통을 어떻게 다루고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삶에 내면화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성숙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파국이 될 수도 있다. 고난이 인간을 성숙하게 만드는 ‘자양분’이 되려면 성찰과 책임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이다.

최근 윤석열 김건희 부부가 2023년 3월 5일 일반인 통제구역인 경복궁 건청궁(조선 고종·명성황후의 집무·생활 공간) 내부를 사전 연락 없이 방문한 것이 드러났다. 그 직후 부부가 대통령실 명의로 국가유산청 전승공예품은행에서 공예품 총 63점을 대여해 간 사실도 확인됐다.

이 가운데 일부는 파손되었다는 의혹도 나온다. 대여지가 대통령실이 아닌 관저였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김교흥 의원은 “관저 등을 궁처럼 꾸민 건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대통령 부부의 ‘왕 놀이’를 보면서 그들이 품 안에 품었을 태풍이나 벼락을 생각해 보았다.

윤석열은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수사 과정에서 검찰 수뇌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소신 있게 수사를 진행하다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남기고 대구고검 대전고검 등지로 좌천당하는 등 심한 인사 불이익 ‘벼락’을 맞은 바 있다.

그 후 윤석열이 그 고난을 자기 성찰로 슬기롭게 승화시켰다면 작년 겨울 아랫사람들을 닦달해 비상계엄과 같은 정치적 일탈을 할 수 있었을까. 윤석열은 시련을 견딘 다음 벼락과 천둥이 준 자양분을 오롯이 그들 부부의 ‘왕 놀이’에만 썼다. 손쉽게 얻은 권력을 제집 살림 장만하듯 아무렇게나 썼다. 부부는 탐욕과 자기 과시에 빠져 살다가 국가 전체를 한 순간에 위기로 몰아넣었다.

그들이 맞은 태풍과 벼락이 국가와 국민에게 따스한 과실로 간 것이 아니라 아쉽다. 윤석열이 재판 과정에서 부하들을 비웃고 그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를 보면서, 어떤 인간은 아무리 독한 벼락과 천둥을 맞아도 성찰의 길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허탈한 사실과 마주하는 것도 서글프다. ‘정치란 허업’이라고 일갈한 김종필의 ‘유언’같은 말이 떠오른다.

천둥 벼락이 모두를 익게 하지는 않는다. 견딘 시간만큼 깊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는 사람도 많다. 정치인들의 시련과 고통은 오롯이 국민들의 안위와 행복으로 쓰이는 게 아니면 그건 개인의 몰락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공익을 해하는 나쁜 태풍이 된다.

어제 국회에서 여러 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폼 잡는 ‘큰’ 정치인을 보면서 그가 부딪혔을 태풍을 생각해보았다. ‘금배지’를 위해 수많은 벼락과 천둥을 맞은 정치인들은 왜 국민과 ‘함께’ 익어가지 않는지를, 그 탐욕의 대가는 왜 늘 국민들이 떠안아야 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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