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사회복지회 강대성 회장
△ 대한사회복지회 강대성 회장

조직마다 고유한 문화가 있다. 신입 직원이 처음 문을 열고 들어설 때 느끼는 공기의 온도, 사람들의 말투와 표정, 일하는 방식까지 모두 그 문화를 드러낸다. 과거 한 골프장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골퍼의 걸음걸이만 봐도 어느 대기업 출신인지, 혹은 공무원인지 알 수 있다.” 오랜 시간 몸에 밴 습관과 태도에는 그 조직이 지닌 문화가 자연스레 스며들기 마련이다.

필자가 SK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경험도 이를 잘 보여준다. 여의도에 새로 주유소를 열며 소장을 임명했을 때, 그가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은 시설이나 실적이 아니라 ‘문화’였다. 당시에는 셀프 서비스가 아닌 주유원 직접 응대 방식이었고, 고객이 안전하게 진출하도록 돕는 DWS(Drive Way Service)를 철저히 교육했다. 놀라웠던 점은 시간이 지나 새로 채용된 주유원들까지도 자연스럽게 DWS를 몸에 익혔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원칙이 모두의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이 결국 그 조직만의 문화가 되는 순간을 목격한 셈이다.

이 경험은 문화가 한 사람의 행동에서 시작해 조직 전체로 번져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떤 곳은 장점을 찾아 칭찬하는 분위기가 있고, 어떤 곳은 약점을 지적하는 데 익숙하다. 두 문화가 만들어낼 미래가 어떻게 다를지는 분명하다. 구성원의 마음속에 어떤 감정이 자리하느냐에 따라 조직이 걷는 길도 달라진다. 긍정과 신뢰는 성과를 만들고, 불신과 냉소는 조직을 약하게 한다.

필자는 영리기업, 사회적기업, 비영리조직 등 다양한 환경에서 일하며 바람직한 문화가 무엇인지 살펴볼 기회를 가져왔다. 그 과정에서 늘 떠오르는 문장이 있다. 피터 드러커의 말, “Culture eats strategy for breakfast(문화는 전략을 아침으로 먹는다).” 뛰어난 전략도 건강한 문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오래갈 수 없다. 문화는 조직의 기초이며, 그 기초가 흔들리면 그 위에 쌓은 성과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좋은 조직문화를 만드는 일은 단순히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구성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조직의 지속 가능성을 지탱하는 장기적 투자다. 필자가 여러 조직에서 경험하며 공통적으로 확인한 핵심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존중’이 기본 규칙이어야 한다.

존중은 조직문화의 가장 작은 단위다. 직급이나 경력, 나이를 떠나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태도가 자리 잡을 때 건강한 문화가 형성된다. 존중이 사라지는 순간 작은 균열이 생기고, 그 균열은 결국 조직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둘째, ‘칭찬과 피드백’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장점을 발견하면 즉시 인정하는 문화는 구성원에게 자신감을 준다. 동시에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정확하고 차분하게 전달해야 성장의 속도를 높일 수 있다. 과도한 지적은 동기를 꺾지만, 적절한 피드백은 성장을 이끄는 중요한 힘이다.

셋째, ‘리더의 행동’이 곧 문화가 된다.

문화는 매뉴얼이 아니라 행동에서 만들어진다. 리더의 말투와 약속을 지키는 태도, 권한을 쓰는 방식, 문제를 해결하는 자세는 곧 조직의 규범이 된다. 조직문화를 바꾸고자 한다면 리더의 변화가 가장 빠르고 강력한 출발점이다.

넷째, ‘심리적 안전감’을 지켜야 한다.

실수나 의견 제기가 공격의 대상이 되는 환경에서는 어떤 혁신도 나오기 어렵다. 구성원이 자유롭게 생각을 말하고 실패를 학습의 기회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새로운 시도가 가능해진다. 안전함은 창의성을 이끄는 토양이다.

다섯째, ‘일관된 가치 기준’을 세워야 한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명확히 밝히고, 의사결정과 평가, 보상에 이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해야 한다. 가치가 흔들리면 문화도 흔들린다. 구성원은 말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 조직의 우선순위를 확인할 때 비로소 신뢰한다.

가을은 성숙과 결실의 계절이다. 한 해의 노력이 서서히 열매를 맺듯, 조직문화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작은 습관과 반복된 행동, 그리고 구성원 간의 따뜻한 상호작용이 쌓일 때 비로소 그 진가가 드러난다.

지금 우리가 몸담은 곳의 문화는 어떤 모습인가. 서로의 장점을 발견해 북돋는 환경인가, 아니면 작은 실수에도 비난이 앞서는 분위기인가. 사람을 살리고 미래를 여는 문화는 결코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구성원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의지의 결과다. 선선한 가을바람처럼 따뜻하고 건강한 문화가 여러분의 일터에도 깊이 스며들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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