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빌딩에서 열린 ‘법·규제 패러다임의 전환:형사에서 민사로’ 세미나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14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빌딩에서 열린 ‘법·규제 패러다임의 전환:형사에서 민사로’ 세미나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홍승주 기자】최근 기업인에 대한 형벌 규정을 완화하기 위해 형법상 배임죄를 폐지하고 민사 책임을 강화하는 방식의 대체 입법이 검토 단계에 들어섰다. 범죄 유형화 작업에 시간이 소요돼 연내 법안 처리의 어려움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민형사 균형의 중요성을 논하는 세미나가 진행됐다.

14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빌딩에서 ‘법·규제 패러다임의 전환:형사에서 민사로’를 주제로 특별 정책 세미나가 열렸다. 한국법학교수회와 은행법학회의 공동 주최로 개최됐으며, 학계 전문가들이 모여 형법 과잉을 해소하고 민법과 형법의 균형을 이루는 방안을 모색했다.

14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빌딩에서 열린 ‘법·규제 패러다임의 전환:형사에서 민사로’ 세미나에서 김자봉 은행법학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14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빌딩에서 열린 ‘법·규제 패러다임의 전환:형사에서 민사로’ 세미나에서 김자봉 은행법학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김자봉 은행법학회장은 개회사에서 “사회적 위기 시대를 직면해 법의 의미를 재구성하고 법치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질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형사 법”이라면서 법의 사회적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음으로 최봉경 법학교수회장의 개회사와 공정거래위원회 주병기 위원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주병기 위원장은 불공정 행위에 대한 과도한 형벌은 경영인에게 부담을 가중할 위험이 있다면서도 제재 실효성을 강화하는 등 두 축을 함께 끌어가 제도를 개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김재형 전 대법관은 기조연설에서 “인공 지능을 비롯한 과학 기술의 발전이 법과 규제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면서 이는 국가의 능력을 결정하는 중대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민법과 형법이 국가의 틀을 잡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홍범 14조를 인용해 국민의 자유와 생명, 재산을 보호하는 목적을 갖는 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서 법무법인 세한 송창영 변호사가 행정 법령의 과잉 형사화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한국의 경제 형벌이 과하게 형사화됐고, 이는 기업인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며 전과자를 양산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배임죄는 주체와 행위 요건이 폭넓고 모호해 예측 가능성이 낮다며 기소율 대비 무죄율이 높아 자원 낭비를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경제 형벌 합리화 방안에 따라 대체 입법을 마련해야 한다”며 가벼운 위반은 과태료로 전환하고 ‘선(先) 행정조치-후(後) 형벌 부과’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등 형사 처벌 범위를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4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빌딩에서 열린 ‘법·규제 패러다임의 전환:형사에서 민사로’ 세미나에서 이석배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14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빌딩에서 열린 ‘법·규제 패러다임의 전환:형사에서 민사로’ 세미나에서 이석배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단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이석배 교수는 배임죄의 임무 위배 행위에 대한 대법원 해석의 문제점을 경영 판단 법리 적용의 관점에서 풀이했다. 그는 “배임죄 해석에서 민사 불법행위와의 차이는 임무 위배 행위 범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법원이 경영 판단으로 인한 손해는 형사 책임이 없다는 것을 원칙으로 했으나, 실무에서는 임무 위배 판단 기준이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석배 교수는 결과를 가지고 행위를 도출하면 사전 인식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법원은 임무 위배를 신의성실 위반이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판단해, 사실상 거의 모든 행위를 배임으로 볼 위험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대법원의 해석으로 배임죄의 적용 범위가 과도하게 넓어졌으며, 법원이 신의칙 같은 비공식 원칙을 남용하지 않고 구성 요건 중심 해석을 회복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정준혁 교수는 한국의 상장회사 대부분이 소수 지배주주 체제인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업가치를 높이는 파이 늘리기와 지배주주의 사적 이익을 통제해 일반주주를 보호하는 파이 나누기의 조화가 기업지배구조 개선의 핵심 과제임을 제시했다. 특히 파이 나누기를 위해서 국제표준에 맞는 자기주식, 합병비율, M&A 관련 제도 개선과 주주대표소송 등 사후 구제 수단의 활성화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효율 중심의 파이 늘리기를 위해선 배임죄 적용 범위 축소가 필요하다”며 장기적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14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빌딩에서 열린 ‘법·규제 패러다임의 전환:형사에서 민사로’ 세미나에서 이소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14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빌딩에서 열린 ‘법·규제 패러다임의 전환:형사에서 민사로’ 세미나에서 이소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이소은 교수는 “인공지능 기본법이 인공지능 사업자에게 안전성과 신뢰성 확보의 의무를 부과한다”면서도 이용자 및 영향받는 자에 대한 규제와 보호는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 기존의 민사책임 제도 중에서도 불법행위책임 제도가 인공지능 기술 잔여 위험을 배분하는 사후 규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인공지능 분야의 기술 혁신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고성능 범용 인공지능 등에 대해서는 무과실책임 유사 제도의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며 과실책임 원칙을 따를 때도 증명 책임 경감 방안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동대학교 법학부 이국운 교수와 한국금융연구원 김자봉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경제 성장을 위해 민사 중심 사법 체계로의 패러다임 전환과 금융 전문 법원 설립을 제시했다. “민사 중심 사법 체계는 형사 과잉을 해소하고 사적 자치에 기반한 창의적 경제 활동을 보장한다”며 이를 위해 기술 탈취를 억제하는 디스커버리 제도와 혁신 생태계를 위한 경업금지 제한 등의 체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고도화된 금융거래의 신속한 문제 해결과 피해자 구제를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통한 민사적 책임 강화를 언급했다. 전문적인 법적 판단 인프라로서 독립된 금융 전문 법원의 도입 역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좌장의 이주원 교수는 민법과 형법의 조화를 강조하며 헌법기관의 신뢰 구축을 위한 중립성의 필요를 언급하고 세미나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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