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남남’ 친족기업 거래 규제 사실상 전무, 친족분리 및 거래 규제 강화 요구

총수 친인척이란 이유로, 안정적 매출‧수익
오너 사익편취, 중소 시장질서 왜곡 부작용
계열사 분리, 친족이라도 각종 규제서 제외
거래 내역 공개 강화 등 국회 법 개정 추진
【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촌형인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은 지난 2015년 7월 본인이 100% 지분을 가지고 있던 통신장비 개발 업체인 AnTS(에이앤티에스)의 지분 모두를 사위인와 사돈 일가에게 매각했다. ANTS는 SK텔레시스 등 SK 계열사에 통신장비 납품 등으로 운영 돼 온 기업이다.
그해 2월 대기업 계열사 간의 부당한 내부 거래를 막기 위해 발표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 이른바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시행됐다. 하지만 SK그룹 총수일가인 최 회장의 지분 전량 매각으로 AnTS는 SK그룹과 관련 없는 개별회사가 됐고 공정거래법상 규제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에 당시에 일감규제 회피하기 위한 매각 아니냐는 의혹이 뒤따랐다. 최 회장 대신 기업 주인이 된 이들은 최 회장 사위인 데니스 구와 그의 숙부인 구자겸 엔브에이치(NVH)코리아 회장이다. SK그룹 계열사와 지분 관계가 얽혀있지 않았다 뿐이지 SK그룹 총수일가의 친인척이 지배하고 있고 SK 계열사와의 거래로 기업이 운영되고 있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일감몰아주기는 우리 시장이 안고 있는 대표적인 불공정 적폐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현행 제도가 본래 취지에 맞게 일감몰아주기가 불러올 폐해를 충분히 막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규제 강화 목소리 또한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에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자산이나 총수일가 지분 기준을 낮추는 방식으로 규제 강화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친족이라는 이유로 안정적 매출과 수익
제도 빈틈, 일감몰아주기 규제서 벗어나
하지만 여전히 일감몰아주기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오너일가의 사익편취, 시장의 공정거래 기회 박탈이라는 폐해를 주는 상황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위와 같은 총수일가 친족기업의 경우 일감몰아주기 규제 사각지대 놓인 대표 사례로 꼽히고 있다.
친족기업은 총수 배우자와 6촌 이내 혈족, 5촌 이내 인척이 지배하고 있는 기업을 말한다.
따라서 원칙상으로는 친족기업은 대기업집단에 편입돼 공정거래법 등을 통한 각종 제제와 감시의 대상이 된다.
현행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재벌 총수일가, 즉 대주주와 그의 친인척으로 구성된 특수관계인과의 거래 제한에 집중돼 있다.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 총수 일가가 지분 30%(비상장 20%) 이상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를 규제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들 계열사의 내부거래액이 200억 원 또는 연 매출액의 12%를 넘어설 경우 대주주는 처벌 받고 계열사는 과징금을 물어야한다.
하지만 친족기업이라도 신고를 누락하거나 아예 독립경영 요건을 충족시켜 ‘친족분리’ 과정을 거쳐 계열사 자격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규제를 받지 않게 된다. 친족분리란 기업대표가 친인척이지만 별개로 경영되는 독립법인으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
친족분리는 모그룹이 분리대상 기업의 지분 비중이 상호 3% 미만을 보유(비상장기업의 경우 각각 15%와 10%)하고 임원 겸임, 채무보증, 자금대차관계가 없으면 가능하다.
특히 1999년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과정에서 ‘최근 1년간 회사별 매출입 상호의존도 50% 미만’이어야한다는 조항이 빠지면서 친족분리 문턱이 낮아졌을 뿐 아니라 일감몰아주기 논란에서도 자유로워지게 됐다. 결국 친족기업이 공정위의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해가는 수단으로 악용될 여지를 열어놓게 된 셈이다.
겉으로는 지분관계가 얽혀있지 않은 독립기업인 만큼 일감몰아주기 규제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단지 친인척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대기업과의 거래를 통해 안정적인 매출과 수익을 얻는다는 일감몰아주기의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친인척 주주의 이익으로 직결되는 사익편취 문제는 물론 중소업체의 대기업의 거래 기회를 박탈, 시장 질서를 왜곡시킬 우려가 크다.
더욱이 이들 친족기업 대부분이 중소‧중견기업이 주로 영위하는 업종에 진출해 경쟁 없는 거래로 함께 경쟁해야할 중소업체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물론 신생 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는 폐해를 안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삼성은 회장 누나, 현대차는 사돈
LG 구씨, GS 허씨 친족기업 끈끈
국내 주요 대기업 상당수가 이 같은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지난해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이 시장에서의 정보와 공시 등을 토대로 의혹을 제기한 사례만 5개그룹 16건에 달했다.
이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경우 이건희 회장의 누나인 이순희씨(13.0%)와 그의 아들 김상용씨(76.1%)가 지배주주로 있는 알머스(구 영보엔지니어링), 또 이 회사가 지배주주(93%)로 있는 애니모드가 의심사례로 꼽히고 있다.
알머스의 경우 휴대폰 배터리팩 제조를 사업목적으로 하고 있는 기업으로 90%에 달하는 거래가 삼성전자나 삼성전자 중국현지법인과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애니모드 역시 삼성전자 스마트폰 케이스 등 휴대폰 액세서리 제조를 주요 사업내용으로 하면서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디자인을 제공해 사업기회를 선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2위인 현대차그룹도 총수 사돈기업으로 알려진 삼표와의 관계가 끊임없이 의혹을 받고 있다. 삼표그룹은 현대차그룹의 정의선 부회장의 장인인 정도원 회장이 이끄는 기업이다. 때문에 장인인 정도원 회장과 처남인 정대현, 처인 정지선씨와 계열회사가 주요주주로 지배하고 있는 삼표, 삼표산업, 남동레미콘(주), (주)남동레미콘 등은 지난 2011년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한 이후 거래가 확대됐다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LG그룹의 경우 한국에스엠티가 의심을 받고 있다. 한국에스엠티는 LG그룹의 구본무 회장의 5촌 당숙인 구자민(40%), 구본근(40%) 등 가족이 100%지분을 보유한 기업이다. 이 기업은 LG디스플레이의 협력업체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롯데그룹은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의 장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의 아들 장재영씨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비엔에프통상과 장씨가 89% 지분을 보유한 유니엘이 거론되고 있다. 비엔에프통상은 롯데백화점과 롯데면세점 등에 명품 브랜드를, 유니엘은 포장지와 쇼핑백 등 납품을 통해 성장해왔다. 신 이사장은 실제 근무하지 않는데도 자식들을 두 회사 임원으로 등록해 급여명목으로 47억원대의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GS그룹의 허씨 일가 회사와의 거래 인연도 끈끈하다. GS그룹 허창수 회장의 삼촌인 허승효 회장 일가가 지배하고 있는 알토와 창조건축사무소는 허창수 회장이 대표이사로 있는 GS건설과의 내부거래가 의심받고 있다.
또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의 차남 허자홍씨가 대표자로 있는 에이치플러스홀딩스(주)(43.08%)가 지배하고 있는 에이치플러스에코도 GS칼택스와 정유시설, 송유관, 주유소 건설 등 관련 거래가 상당하다. 채 의원실에 따르면 GS칼텍스와 매출비중이 지난 2012년 53.7%에 달했다. 2014년까지도 25% 이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허승효 회장의 바로 밑 동생인 허승표 회장 일가가 소유하고 있는 피플웍스커뮤니케이션과 피플웍스 또한 GS칼텍스와 LG그룹 계열사(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유플러스 등)과의 일감몰아주기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외에도 한진해운 부실 책임 논란 당사자인 최은영 전 회장의 유수홀딩스도 대표적인 친족기업 사례로 손꼽힌다. 한진해운 모기업이었던 유수홀딩스는 한진그룹이 한진해운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최 회장이 한진해운 지분을 3% 아래로 낮추며 작년 5월 한진그룹으로부터 분리됐다. 하지만 친족 분리 이후에도 한진해운 간판으로 선박운송을 주선하고 한진해운 사옥 임대료로 매출 상당수를 채우며 논란이 된 바 있다.

“제재 방도 없다” 규제 사각지대
진전 없던 법개정, 국회 추진 주목
문제는 이 외의 친족 독립법인 기업의 경우 제재할 방도가 현재로선 없다. 현행법상 상호간 지분 관계가 얽히지 않았다면 친족이 지배하고 있더라도 별개의 기업인만큼 거래상 문제될 것이 없다. 또 계열사 등 특수관계인으로 묶여 있지 않은 만큼 거래 대상과 규모를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친족기업의 수는 증가하는 추세다. 공정위에 따르면 친족 분리기업은 2010년 15개, 2011~2012년 38개, 2013~2014년 15개, 2015~2016년 31개로 지난해까지 99개에 달했다. 현시점에서 100개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채이배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해 의심사례로 꼽은 기업들의 상황은 올해도 마찬가지”라며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이 같은 일감몰아주기 사례는 더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친족분리 요건을 강화하는 한편 친족기업간 거래에 대해서도 규제에 나서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법 개정 과정에서 사라진 ‘매출액 상호 의존도’를 친족분리 기준에 다시 추가해 강화하거나 사후적으로 기업 간 거래를 규제할 수 있는 기준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올해 2월 대선을 앞두고 바른정당 후보였던 유승민 의원은 재벌총수 일가가 계열사 일감을 몰아받기 위한 개인회사 설립 규제를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현재 규제 대상을 확대하고 제재 수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논의가 진행 중이다. 대기업 총수일가 지분 기준을 기존 30%에서 20%로 낮추고 과징금 수준을 높이는 한편 규제 대상 기업 자산규모 기준도 지난달 기존 10조원에서 5조원 이상으로 낮춘데 이어 5조원 이하까지 확대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친족기업에 대한 규제 논의는 크게 주목받고 있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지금까지 정부 차원에서 본격적인 개선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지 않다. 다만 친족기업에 대한 규제 개선 문제 대해 일부 법안이 국회에 발의된 상황이지만 이 또한 큰 진전을 보이고 있지 않다.
지난해 8월 채이배 의원은 ‘자산 50조원 초과 기업 집단’이 친족 기업의 내부거래 등을 공개하도록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채이배 의원실 관계자는 “계속 논의 중인 상황”이라 “이번 회기 때 다시 논의 해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정권교체 전까지 정부의 반대가 극심해 논의가 진전되지 않았다”며 “법안 심사를 다시 하게 되면 정부 의견을 제출하게 돼 있는 만큼 오는 10~11월이 되면 (정부 입장을)알게 될 것 같다”고 밝혔다.
한편, 공정위 관계자는 친족기업에 대한 규제 개선에 대해 “국회에서 관련된 법안들이 제출돼 있다. 법안 심의과정에서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