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한 후보자들 “나 여기 있어요”
드루킹 특검 등 굵직한 이슈 잇달아
중앙 정치 이슈에 지역 이슈 묻혀
각 정당 후보들, 중앙 이슈에 계산기 두들겨
지선 하루 앞두고 열릴 북미정상회담도 난감
6.13 지방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언론은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아니라 중앙 정치 이슈에 초점이 맞춰진 상황이다. 총선과 달리 지방선거는 중앙당의 지원뿐만 아니라 후보 자신의 역량도 상당히 발휘해야 하는 선거다. 하지만 굵직한 중앙 정치 이슈에 가려져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선거운동은 벽에 부딪히고 있다. 아무리 자신을 부각시키려해도 유권자들은 중앙 정치 이슈에 매몰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방선거 출마자들은 얼마 남지 않은 선거를 앞두고 초조한 모습이다.
【투데이신문 홍상현 기자】 자유한국당은 지난 2010년 지방선거의 악몽을 잊지 못한다. 당시 천안함 폭침 등 굵직한 안보 이슈가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다 당시 한나라당의 승리를 예측했다. 안보 정당을 내세웠던 한나라당이 천안함 폭침으로 부각된 안보 이슈로 이슈 몰이를 하면서 대대적인 여론전에 나서 승승장구했다. 때문에 당시 야당은 지선에서 몰살당할 것이라는 비관적 분석이 이어졌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왔다. 한나라당이 패배한 것이다.
이후 패배 원인에 대한 여러 가지 분석이 나왔다. 물론 정권심판론이 작동한 부분이 있었지만 중앙 정치 이슈가 각 지역 후보들을 부각시키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오히려 당시 진보진영 김상곤 경기교육감 후보의 무상급식 공약이 부각되면서 야권은 모두 무상급식 공약을 내걸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이 ‘안보’라는 중앙 정치 이슈를 전면에 내건 반면, 야권은 ‘무상급식’이라는 개별적 공약을 걸어 각 후보를 부각시키는데 초점을 맞췄던 것이다. 그 결과 한나라당은 패배했다. 당시 야권 승리의 원동력 중 하나는 한나라당이 중앙 정치 이슈를 너무 부각시키다보니 유권자들의 피로감이 상당히 쌓였다는 점이었다.
이와 비슷한 양상이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도 벌어지는 모습이다. 중앙 정치 이슈에 가려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면면이 언론에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드루킹 특검과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등이 연달아 이어지면서 언론은 연일 중앙 정치 이슈를 쏟아내면서 지방선거 출마자들보다는 중앙 정치 이슈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수도권 모 지역에 출마한 모 정당 소속 후보자는 “하루가 초조하다. 중앙 정치 이슈가 모든 이슈를 잡아먹으면서 후보인 나를 알리는 것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지방선거는 총선과 달리 중앙과 지방이 적절한 조화를 이뤄야 치를 수 있는 선거다. 왜냐면 광역의회 후보나 기초의회 후보의 경우, 유권자는 중앙당을 보고 선택하는 경우가 다반사기 때문이다. 워낙 많은 후보들이 난립하기 때문에 후보들을 꼼꼼히 따지고 투표하는 경우가 드물다. 때문에 대개 광역단체장이나 기초단체장 후보를 선택하면 같은 소속 정당의 광역의회나 기초의회 후보를 선택하는 이른바 ‘줄투표’ 현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광역단체장이나 기초단체장 후보의 경우는 다르다. ‘중앙당’의 면모도 따지지만 인물도 따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광역단체장이나 기초단체장 후보는 최대한 자신을 알려야 한다. 그러자면 중앙 정치 이슈 대신 지역 이슈가 크게 부각이 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야권은 ‘무상급식’이라는 지역 이슈를 부각시켜 승리를 거머쥐었던 것이다.
과거 지선 살펴보니
이를 위해선 지방선거가 한 달여 남은 시점에서 중앙 정치 이슈가 아닌 지방 이슈가 부각돼야 한다. 예를 들면 동남권 신공항 건설 문제 등 지방 이슈가 최대한 부각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부각되고 있는 것은 드루킹 특검,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등 굵직한 중앙 정치 이슈다. 지방선거 출마자로서는 애가 탈 노릇이다. 지방 이슈를 통해 후보 간 경쟁을 해야 하는데 현재 상황은 중앙 정치 이슈로 지역 후보 간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 기초단체장 후보는 “후보들 간의 특색 있는 공약 등으로 경쟁해야 하는데 후보는 보이지 않고 중앙당만 보이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제시하는 공약이 이슈가 되면서 상대 후보와 차별화를 보여야 하는데, 현재 상황에서 상대 후보와 차별화를 보이는 것은 소속 정당이 다르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다.
역대 지방선거를 살펴보면 중앙당의 지지율과 지역 후보의 지지율이 다른 결과를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는 중앙당의 지지율과는 상관없이 지역 이슈를 갖고 상대 후보와 경쟁해 승리한 경우다. 그런데 이번 지선은 중앙당 지지율이 지역 후보들의 지지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방 이슈가 실종됐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자신을 알리기 위한 노력은 허탈해질 수밖에 없다.
최근 경기지사 재선을 도전한 자유한국당 남경필 후보는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라는 중앙당의 슬로건에 반기를 들었다. 남 후보는 ‘민생’을 부각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중앙당은 결국 슬로건을 ‘경제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로 변경했다. 자유한국당 중앙당은 ‘안보’ 이슈를 최대한 부각시키려고 했지만 지방선거 후보자들은 민생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홍준표 대표가 남북정상회담 폄훼 논란에 휩싸이면서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결국 홍 대표도 당분간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발언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는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중앙 정치 이슈로 인해 자신들의 이미지가 제대로 부각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민주당 후보들의 운명
이 같은 현상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예외는 아니다. 민주당 소속 후보들도 중앙 정치 이슈 때문에 후보 본인들이 제대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높은 지지율에 묻혀 자신들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상황이기에 아직까지 크게 불만을 갖지는 않고 있지만, 만약 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이 급락할 경우 자신들의 운명이 어찌 될지 모르니 초조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북한이 북미정상회담이 싫다면서 핵실험을 한다거나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도발행위를 한다면 문 대통령이나 민주당의 지지율이 급락할 수 있다. 때문에 후보 자신의 이미지를 최대한 부각시켜야 하는데 워낙 강력한 중앙 정치 이슈로 인해 그럴 수 없는 상황은 야권 후보들과 매한가지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역시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거대 양당이 이슈를 잡아먹으면서 이들 소수정당은 크게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연일 홍준표 대표가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막말에 가까운 발언을 쏟아내고, 김성태 원내대표가 단식 농성을 이어가는 등 드루킹 특검이 모든 이슈를 잡아먹으면서 소수 정당의 존재감은 더욱 약해지고 있다. 이들 정당들도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후보를 배출한 지역은 후보가 돌아다니면서 자신과 당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후보를 내지 않은 지역에서 소수정당의 존재감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지방선거 비례의원 출마자들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당이나 자유한국당과 같이 존재감이 강한 거대 정당이면 모르겠지만, 현 정국에서 소수정당의 존재감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에 후보자 스스로 정당을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이며 소수정당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지방선거 출마자들에게 더 큰 악재가 들려왔다. 오는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린다는 소식이다. 6월 13일이 지방선거 투표일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하루 전인 12일 북미정상회담이 열린다는 것은 악재 중의 악재다. 오는 지선이 그야말로 중앙 정치 이슈로 시작해 중앙 정치 이슈로 끝나는 상황이 조성됐기 때문에 지선 출마자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제대로 알리지도 못하고 선거를 마무리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인 것이다. 각 당 소속 후보들은 북미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그 희비가 엇갈린다는 측면에서 이번 지선의 최대 변수는 북미정상회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예상을 뛰어넘는 합의를 도출할 경우 한반도 평화는 안착된다. 그럴 경우, 여당에게는 상당히 유리한 이슈가 되지만 야당에게는 불리한 이슈가 된다. 거꾸로 만약 북미정상회담에서 협상이 결렬되거나 생각보다 별다른 합의도출이 없다면 여야의 유불리는 바뀐다. 결국 이번 지선의 최대 변수는 북미정상회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중앙 정치 이슈가 지방선거의 시작부터 끝까지 작동하면서 지역 후보들은 애가 탈 수밖에 없다.
수도권에 출마한 한 후보자는 “본격적인 선거전에 들어가면 그나마 유권자들이 후보들에게 집중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보였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올해의 경우 지선을 앞두고 워낙 강력한 중앙 정치 이슈가 많다 보니 지역 후보들의 존재감은 더욱 낮아지고 있다. 자유한국당 소속 일부 후보들은 아예 자유한국당이 연상되지 않게 하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명함에 자유한국당이라는 당명 대신 빨간색만 집어넣는 경우도 있다. 물론 기호를 받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당명을 집어넣어야 하지만 가급적 자유한국당이라는 이름이 유권자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소속 후보들은 거꾸로 민주당이라는 점을 최대한 강조하고 있다. 후보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어려운 바에는 중앙당의 높은 지지율에 기대가겠다는 입장이다. 정당 지지율이 널뛰기하지 않는 한 묻어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다.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소속 후보들 역시 자신들 나름대로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
울상 짓는 무소속 후보들
이런 상황에서 가장 고민되는 후보들은 역시 무소속 후보들이다. 정당 소속 후보들은 그나마 정당 지지율이 있기 때문에 후보들 존재감이 어느 정도 드러날 수 있지만 무소속 후보들의 경우, 기댈 정당이 없기 때문에 오롯이 자신들의 능력으로 유권자들에게 존재감을 알려야 한다. 그런데 현재와 같이 중앙 정치 이슈가 선거판을 덮고 있는 상황에서 무소속 후보들은 난감할 수밖에 없다. 무소속 후보들 입장에서는 중앙 정치 이슈가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다. 가뜩이나 유권자들은 무소속 후보에 대한 관심이 적은데 중앙 정치 이슈로 인해 그 관심이 더욱 적어지면 그만큼 득표가 어려워진다. 때문에 무소속 후보들끼리 연대해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최대한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 노력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 무소속 후보는 “앞으로가 걱정이다. 무소속 후보들은 중앙 정치 이슈에 치이고, 정당 소속 후보들에게 치여 자신들의 존재감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중앙 정치 이슈가 계속 연달아 예고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오는 22일 한미정상회담과 6.12 북미정상회담 때문에 무소속 후보들은 그 존재감이 더욱 없어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에게 존재감을 알리려 하지만 유권자들은 TV 브라운관에 갇혀 한미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만 시청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무소속 후보들은 여느 선거보다 더욱 어려운 선거를 치러야 할 가능성도 있다. 그야말로 무소속 후보들에게는 시련의 계절이다.
이처럼 중앙 정치 이슈가 지역 이슈를 잡아먹으면서 지역 후보들은 더욱 힘든 선거를 치르게 됐다. 이는 유권자들에게도 상당히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왜냐면 지방선거는 그 지역의 일꾼을 선출하는 선거인데 중앙 정치 이슈에 묻혀서 지방 이슈가 제대로 부각되지 못해 후보가 제대로 부각되지 못하면, 투표에서 인물이 아니라 소속 정당을 보고 선택하는 ‘묻지마 투표’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때문에 유권자들은 더욱 현명해져야 한다. 중앙 정치 이슈가 지방 이슈를 잡아먹는다고 해도 우리 동네 후보가 누가 나왔는지 철저히 따지고 검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진정한 우리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가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역 일꾼을 뽑는 것이 지방선거다. 아무리 굵직한 중앙 정치 이슈가 이어지더라도 지방선거는 지역 이슈가 우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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