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수애 아빠’ 송창순(46)씨는 아이를 홀로 기르며 겪는 어떤 어려움 보다 아이에게 남들 다 있는 주민등록번호를 만들어 줄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 원망스럽다고 했다.

출생신고에 대한 고민은 미혼부에게는 흔한 일이다. 현행법상 미혼부의 출생신고 요건은 매우 까다롭다. 관계 기관을 찾아 화내고 호소도 해보지만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려되기 일쑤다.

2015년 ‘사랑이법’을 통해 그 절차가 일부 간소화됐지만 여전히 많은 미혼부들이 출생신고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미혼부 출생신고에 관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움직임은 계속돼 오고 있으나, 이것이 자칫 가족관계법의 근간을 흔드는 상황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에 부딪혀 쉽사리 바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뉴시스
ⓒ뉴시스

생모 이름도 몰라야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하 가족관계등록법)에서는 혼인 외 출생 자녀의 출생신고와 관련해 ‘모’를 신고의무자로 하되, 그것이 불가능할 때는 모의 동거친족 등에게 신고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다만, 혼인 외 관계에서 자녀를 출생한 부가 ‘모의 이름·등록기준지·주민등록번호를 알지 못할 경우’라는 요건을 충족하면 출생신고 의무자가 아닌 출생신고 적격자로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즉, 자녀 생모의 이름·등록기준지·주민등록번호를 몰라야만 출생신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증명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나라는 민법상 ‘친생자추정’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민법 제884조에서는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할 것’, ‘혼인이 성립한 날로부터 200일 후에 출생한 자녀는 혼인 중에 임신한 것으로 추정할 것’, ‘혼인관계가 종료된 날부터 300일 이내 출생한 자녀는 혼인 중에 임신한 것으로 추정할 것’이라고 정한다.

즉, 친생자추정은 혈연의 개연성, 법률혼을 전제로 한 법률상의 친생자 관계를 의미한다. 사실혼 상태의 생물학적 의미의 친생자 관계는 요건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쉽게 말해, 자녀의 생부가 따로 있을지라도 생모의 법적 혼인관계의 남편을 생부로 추정하는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 허민숙 조사관은 “미혼모가 자택 혹은 목격자가 없는 상태에서 출산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엄마라는 사실이 확실하기 때문에 별도로 확인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미혼부는 유전자 검사 결과가 있을지라도 친생자추정을 받을 수 있는 아이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라며 “민법상 혼인 중 낳은 아이는 생부가 별도로 있더라도 친생자추정 규정에 의해 현 남편의 아이로 추정된다. 이러한 이유로 유전자 검사 결과가 있더라도 출생신고를 받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련 법 규정이 이러하다 보니 미혼부의 출생신고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고자 2015년 미혼부 출생신고 절차가 간소화한 년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 이른바 ‘사랑이법’이 마련됐다.

사랑이법은 생모의 인적 사항을 모를 때 유전자 검사서를 제출함으로써 가정법원으로부터 생부임을 확인을 받으면 출생신고가 가능토록 했다.

허 조사관은 “상식적으로 이름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친자를 낳았다는 사례가 드물기 때문에 가령 아이 생모의 이름·등록기준지·주민등록번호를 알더라도 모른다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경우도 있고, 판사에 따라 이 요건을 유연하게 해석해 주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사랑이법 시행 이후 미혼부의 출생신고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계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평가된다. 가정법원이 생모의 이름·등록기준지·주민등록번호를 알지 못하는 사정으로 인정할만한 요건들이 현재로서는 매우 예외적이며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부성 창설·친생자추정 완화

해외의 경우는 미혼부의 출생 규정을 어떻게 두고 있을까. 

일부 국가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친생자추정 규정이 있더라도 예외의 경우를 인정하거나,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미혼부의 출생신고가 가능하도록 정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미혼부가 일부 요건을 충족하면 부성 창설을 통해 출생신고가 가능한데, 요건은 주별로 차이를 보인다. ‘오하이오주’는 양육비이행관리기관에서의 유전자 검사 결과나 법원 결과를 통해 부성 창설이 확정된다. ‘로드아일랜드주’는 가정법원에 문서 형태의 친부 인정서 혹은 유전자 검사 결과를 제출하면 친생자로 추정해 부성을 창설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미국은 ‘일률친자법’을 통해 아동 출생 시점을 기준으로 2년 동안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며 자녀로 받아들였을 경우에도 친생자추정을 적용한다.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민법상 친생자추정 규정을 두고 있긴 하나, 자녀 출산 전과 당일, 후 신원증명과 최근 3개월 미만 주소지 증명을 시청에 제출하면 친자관계를 확인받아 미혼부의 출생신고가 가능하다.

뉴질랜드는 원칙적으로 부모가 함께 자녀의 출생신고를 하도록 정하고 있지만 모 또는 부가 사망, 미상, 실종 등 이유로 행위가 불능하거나 주소지가 불분명한 해외 체류, 신고인 및 그 자녀에게 위험을 초래하는 등의 사정이 있을 때 모나 부의 단독 출생신고를 허용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다양한 가족 구성권 인정돼야

미혼부의 출생신고 요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자, 국회에서도 다양한 법안을 제안했다.

2017년 당시 국민의당 김수민 의원, 2019년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미래통합당 이찬열 의원, 올해 초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까지 20대 국회에서만 4건의 가족관계등록법 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현재 모두 계류 중으로,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허 조사관은 관련 법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한 이 같은 문제는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 조사관은 “친생자추정 요건 때문에 생부가 원하지 않아도 법적인 아버지가 되고, 양육을 원하는 생부가 가족 구성원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DNA 기술이 없을 때, 과학적으로 친자 증명이 불가능할 때 만들어진 게 친생자추정이다. 지금은 아주 쉽게 자식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데 이 같은 요건 때문에 출생신고가 어렵다는 게 과연 타당한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생부에게 출생신고 권한을 주느냐, 안 주느냐가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다. 친생자추정 요건을 손보지 않으면 미혼부모의 출생신고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외국처럼 친생자추정을 번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보호해 줄 수 있는 부모 밑에서 아이가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출생 미등록 기간 동안에 보장받을 수 있는 복지 제도를 마련하고 이를 당사자들에게 제대로 적시해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 조사관은 “뉴질랜드에서는 출생신고를 하러 갔을 때 아이가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무엇이 있는지를 안내한다”며 “우리나라도 출생 후 1년 내에 출생신고가 완료되지 않았더라도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는 제도 등이 마련돼 있지만 몰라서 못 받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복지 방안이 있음에도 정작 현장에서는 아무도 모른다. 아이가 급하게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실무진이 몰라서 못해주는 일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며 “실무진과의 연계를 통해 관련 복지에 대한 안내가 잘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데도 공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