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 편집 영상·모델 없이 방송 이끌어가는 라방 쇼호스트
재미없으면 나가버려…관심 끌기 위해 허위정보 쏟아내기도
“신생 채널 성장도 좋지만 최소한의 규제 마련돼야” 한목소리
라방 업계 “관련 교육 강화와 지원으로 소비자 피해 방지”
바야흐로 라이브커머스, 즉 라방의 시대다. 소비절벽 가운데서도 매출 잭팟을 터뜨리며 유통가 전 방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라방은 강자와 약자의 구분이 없는 혼전을 거듭하며 순위를 가릴 수 없다는 점에서 마치 춘추전국시대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소상공인부터 대기업까지 너나 할 것 없이 새로운 쇼핑의 매개체로서 활용되고 있지만, 형식이 자유롭고 규제가 전무하다시피 한 만큼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투데이신문>은 유통계 신흥 강자 ‘라방’의 현주소와 구조적 한계,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짚어보기로 했다.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는 소비와 유통에도 낯선 바람을 몰고 왔다.
옷 한 벌 사야 한다면, 생활용품이 똑 떨어졌다면 자연스레 상점이 아닌 핸드폰을 켜서 쇼핑을 한다. 이제 세상은 어느덧 당연하게 비대면으로 물들어 있다.
틱톡 등 동영상 콘텐츠 기반 플랫폼이 인기를 끌고 언택트 소비가 각광받는 가운데, 두 가지가 결합된 라이브커머스(라방)의 폭발적 성장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 모른다.
초기 라방이 인플루언서를 중심으로 한 SNS 상에서 주로 이뤄졌다면 코로나19 영향으로 비대면 쇼핑이 활성화된 지금은 유통업체를 비롯해 대형 포털까지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다.
‘라이브 스트리밍’과 ‘커머스’가 합쳐진 라방은 모바일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제품을 소개하고 판매한다. 홈쇼핑 방송과 그 형태가 유사해 친밀도가 높지만, 단순 상품 설명을 넘어 판매자와 시청자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라방 핵심은 진행자, 올바른 정보전달 중요”
기존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과거에 출시된 전통 미디어)라고 볼 수 있는 TV홈쇼핑은 라방의 어머니라고도 볼 수 있다. 판매자가 카메라 앞에서 상품을 소개하는 방식부터, 정해진 시간 내에 주문을 독려하는 두 방송의 모습은 꼭 닮아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화려한 제품 편집 영상과 제품을 직접 사용하는 전문 모델 컷 등 우리에게 익숙한 포맷은 홈쇼핑에서만 만나볼 수 있다.
진행자가 잠시 숨을 돌리며 재정비할 수 있는 홈쇼핑과는 달리, 라방의 쇼호스트는 방송 내내 시청자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상품 설명과 소통, 어느 것 하나 모자람 없이 진행해야 한다.
한국쇼호스트협회 평생교육원 대표이자 현직에서 20년간 홈쇼핑 방송을 진행해 온 조윤주 쇼호스트는 “홈쇼핑에서는 쇼호스트가 나오는 시간을 디테일(detail), 나오지 않는 시간을 콜 투 액션(Call To Action)이라고 한다. 즉 쇼호스트의 설명 외에도 업체에서 제작한 브랜드 소개 등 여러 가지 편집된 영상을 틀면서 진행한다”며 “그렇지만 라방은 쌩(生)라이브다. 처음부터 끝까지 카메라가 나를 비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쇼호스트 장벽이 정말 누구나 할 수 있을 정도로 낮아지다 보니 일부 판매자들은 소통에만 치중해 정작 상품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홈쇼핑이나 라방이나 결국 본질이 판매라는 점에서는 같기에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본다. 인기있는 쇼호스트라도 상품정보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과장하는 멘트를 한다면 결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홈쇼핑과 라방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베테랑 쇼호스트가 ‘올바른 정보전달’에 대해 강조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무심코 한 상품설명이 심각한 소비자 피해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10월 국내 5개 라이브커머스 플랫폼 송출 방송 120개를 조사해 그 중 30건에서 발견한 부당광고 의심 표현들을 살펴보면 아찔한 소비자 피해사례를 체감할 수 있다.
먼저 위반 사례 30건 중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14건은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소지가 있었다. 석류즙을 소개하면서 ‘갱년기 증상, 혈액 순환장애, 빠른 노화와 치매 예방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하는 식이었다.
보디 크림과 미스트에 대해 ‘가슴이 커진다’, ‘부기와 셀룰라이트를 없애주고 탄력을 올려준다’는 식으로 화장품법 위반 소지가 있는 광고가 6건, 별다른 근거 없이 최저가라는 표기를 하는 등 표시광고법을 어긴 사례가 6건 발견됐다. 이밖에도 마사지기가 ‘노폐물을 빼준다’고 주장하거나 찜질기가 ‘노화 방지, 신진대사 촉진, 성인병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소개해 일반 공산품을 의료기기로 오인하게 하는 광고도 4건 적발됐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 또한 “라방은 쇼호스트의 역량에 따라 매출이 확확 차이가 난다. 재미있게 한다고 능사가 아니라 적재적소에서 구매유도를 하는 것이 호스트의 역할이기 때문이다”라며 “이렇게 쇼호스트의 역할이 중요해진 만큼 소비자들은 진행자의 말 한마디에 자칫하면 피해를 입을 수 있기에 올바른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
소비자 보호 사각지대 ‘라방’…업계 “자구책 마련해 대응 중”
수많은 기업들이 상품 판매를 위해 라방 콘텐츠 활용에 적극 나서고 있다. 콘텐츠가 흥미를 끌게 된다면 제품에 소비자들의 시선이 한 번 더 머무르게 되고, 이는 소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노골적으로 판매에만 치중하거나 ‘재미’가 없다면 시청자들은 가차없이 나가기 버튼을 누른다. 관심이 즉 매출의 뿌리가 되기에 다급해진 일부 판매자들은 본의 아니게 허위·과장 광고를 하게 되기도 한다. 시청자의 관심을 받기 위해 크림을 바르기만 해도 살이 빠진다, 단순 건강식품이지만 먹기만 하면 혈액순환이 된다는 등의 과대 홍보에 나서는 것.
결국 진행자의 순간적인 잘못된 발언으로 인해 소비자는 상품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 없이 제품을 구매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라방 특성상 소비자가 해당 영상을 녹화하거나 보존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결국 소비자원에 분쟁 조정을 신청할 때에도 증거가 없어 고생하기 일쑤다.
이에 지난 3월 10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양정숙 의원(무소속)은 라이브 커머스 사업자(통신판매중개업자)가 방송 영상을 녹화 등의 방법으로 보존하고, 소비자가 해당 영상을 열람·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할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의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밖에도 방송통신위원회에선 올해 안으로 라이브 커머스 이용자 피해 예방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했지만 라방에 대한 뾰족한 규제수단이 당장은 전무한 상황이다.
이는 사업자 재승인, 방송 표현, 사회적 책임 등 엄격한 책무를 가진 홈쇼핑과는 대비되는 대목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라이브커머스에도 허위·과대 광고나 환불·교환 등 소비자 피해를 방지하는 최소한의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남영준 OTT활성화지원팀 과장은 “인터넷 기반 방송 서비스인 OTT 서비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기존 TV를 중심으로 한 방송산업에 혼란이 온 적이 있다”며 “라이브방송 또한 OTT 서비스처럼 새롭게 등장한 채널이기에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면 어떻게 기존 사업자인 홈쇼핑과의 형평성을 맞출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규제가 전무한 라이브커머스에 대해 소비자 보호제도라는 최소한의 책무를 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TV홈쇼핑협회 황기섭 실장도 “지난 2015년 ‘가짜 백수오 사건’이 있었을 때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백수오를 유해하다고 판단하지 않았지만 TV홈쇼핑은 국가 승인 사업자로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소비자에게 수백억원을 환불한 바 있다”며 “요즘은 소비자가 라방 자체를 홈쇼핑으로 인식하는 만큼, 판매자 연대 책임 등 소비자 관련 규제만큼은 라방에도 동등하게 적용돼야 소비자의 외면을 받지 않는 방송으로 성장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라방을 운영하는 플랫폼 기업들은 소비자 보호를 위해 여러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진입장벽이 낮아 일반 사업자들도 자유롭게 라방에 나설 수 있는 네이버의 경우 판매자 교육에 특히 중점을 두고 있다. 네이버 쇼핑라이브는 온라인을 통해 라이브커머스 플랫폼 사업자 판매자 교육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라이브 진행 시에는 유의사항 필수 알림을 제공하고, 판매자 보호 및 원활한 라이브 진행 환경을 위해 금칙어 설정과 댓글 신고 접수 라이브 담당자들의 실시간 모니터링으로 방송을 관리하고 있다. 부적합 콘텐츠가 적발되면 방송 중단 및 삭제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카카오 쇼핑라이브의 경우 라이브커머스 전담팀이 자체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방송을 송출하고 있어 방송에 대한 모니터링이 용이하다. 외형은 작지만 고효율의 방송을 추구하는 만큼 방송 하나하나의 완성도에 신경 쓰고 있다.
인플루언서나 진행자 위주의 플랫폼 또한 라방 진행자 역량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전문성을 가진 방송 인력을 육성하는데 매진하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자체 라이브커머스 에스아이라이브의 전문 진행을 맡게 될 ‘퍼스널 쇼퍼’를 선발해 1기 출범식을 가졌다. 롯데백화점은 올해 상반기부터 업계 최초로 ‘라이브크루’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해 파트너사 직원들을 상대로 한 라이브 방송 노하우를 전수했다.
익명을 요구한 라이브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플랫폼 내에 소비자와 판매자의 분쟁을 조정하는 채널을 마련하고 있으며, 부적절한 방송 내용을 신고 시스템을 활성화할 뿐 아니라 자체 모니터링 인력을 운영하고 있다”며 “특히 진행자가 악의가 없더라도 방송을 미숙하게 진행할 경우 소비자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관련 교육 또한 적극적으로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소비자들의 우려는 결국 라방에서의 홍보가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이 되는 부분일텐데 이는 결국 판매자들이 잘 해야 하는 것”이라며 “라이브커머스와 관련된 다양한 교육들을 모은 사이트를 오픈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관련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외부에서 봤을 때는 규제가 없다고 느낄 수 있지만 라방 안에서도 여러 가지 신고 기능이나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을 운영 중이며, 이런 일련의 조치들은 라방 시장을 대하는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주요기획: 김효인기자의 내맘대로 레트로 시리즈, 물티슈의 배신 시리즈, 젠더 이코노미 시리즈
좌우명: 盡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 다른기사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