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부터 매일 밤 피켓·기자회견 등 시위 진행
2018년부터 건물주와 계약 문제로 갈등 본격화
만선호프, 주변 가게 인수하며 10호점까지 확장
최수영 대표 “시민과 만든 거리, 자본 독식 막아야”
전문가 “정부, 단순 지정 아닌 실질적 대책 마련 우선”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서울 중구 지하철 3호선 을지로3가역에서 내려 조금 걷다 보면, 십여개의 주점이 모여있는 ‘노가리 골목’을 만날 수 있다. 노가리골 목에 진입하면, 음주를 즐기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가득한 골목이 드러난다. 그곳에는 저마다 오늘의 회포를 풀며 화기애애한 사람들로 가득한데, 그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보이는 공간이 있다. 시끌벅적한 주점 한복판, 불이 꺼진 채 철문으로 닫힌 가게 앞에는 눈물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위 참여자들은 철문 마냥 굳은 얼굴을 한 채 피켓을 들고 44일째 ‘상생’을 외치고 있다. 그들은 왜 주점 골목 한복판에서 시위를 진행하게 된 것일까.

을지OB베어 최수영 대표가 강제집행된 가게 앞에서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을지OB베어 최수영 대표가 강제집행된 가게 앞에서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지난 4월부터 을지OB베어 최수영 대표는 만선호프 여러 호점이 즐비한 거리 가운데에서 피켓과 현수막 등을 설치하며 가게를 지키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 최 대표는 이미 닫힌 가게에 간이 천 간판을 달아 이곳이 을지OB베어임을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최 대표는 “매일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노가리 골목에서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며 “착잡한 마음이지만 아직은 시위를 멈출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1980년 12월 문을 연 을지OB베어는 OB맥주 전신인 동양맥주가 모집한 프랜차이즈 점이다. 생맥주가 생소하던 과거, 을지OB베어는 냉장숙성 생맥주와 노가리를 하루에 정해진 양만 판매하며 손님을 끌어 모았다. 이후 을지OB베어 주위로 다른 가게들이 하나둘씩 개업하며 자리를 채웠고, 지금의 노가리 골목이 탄생했다. 인근 철물점, 공장 근로자들만 이용하던 노가리 골목은 어느새 ‘레트로’ 열풍을 타고 젊은 세대까지 많이 찾아오는 명소가 됐다.

이에 서울시는 을지OB베어의 가치를 인정해 지난 2015년 을지OB베어를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했다. 또한 지난 2018년에는 호프집 최초로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인증 ‘백년가게’로 지정되며 우수성과 성장가능성을 높게 평가 받았다. 

을지OB베어 투쟁 선포 기자회견. ⓒ투데이신문
을지OB베어 투쟁 선포 기자회견. ⓒ투데이신문

하지만 많은 사랑은 오히려 독이 됐다.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민생경제연구소 등이 속한 을지OB상생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에 따르면 을지OB베어는 지난5 4월 21일 새벽 건물주와 입주자의 갈등으로 인해 강제 철거됐다. 지난 2018년부터 을지OB베어는 건물주와 임대료·보증금 인상 문제로 마찰을 빚어왔다.

을지OB베어 측이 “계약조건 맞춰줄 수 있다”, “임대료 2배도 감수하겠다” 등의 의견을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임대인은 “다른 곳과 계약했다”, “커피숍 등으로 영업할 예정이다” 등의 이유로 임대계약 연장 불가 의사만 전달했다. 이에 을지OB베어 측이 거절 의사를 내비쳤다. 

퇴거 요구는 갈수록 심해졌다고 한다. 올해 1월 을지OB베어 건물의 지분 62%가량을 만선호프 사장 A씨가 인수하면서 부터다. 새로운 건물주가 된 A씨는 현재 을지OB베어 위치에 화장실을 건축하고 싶다며 을지OB베어에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후 임대계약 연장을 두고 건물주가 명도소송을 제기했고, 을지OB베어는 1, 2심에서 ‘개인 재산권’을 이유로 패소했다. 결국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하면서 을지OB베어는 가게를 문 닫아야 할 처지가 됐다.

이후 지난 2020년 1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5회에 걸쳐 강제집행 시도가 일어났지만 을지OB베어 측과 시민단체 등의 완강한 저지로 무산된 바 있다. 그러자 A씨와 을지OB베어 측은 지난 3월 대화를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 당일이 되자 상황은 반전됐다. 약속 당일인 지난 4월 21일 새벽 3시경 용역 70여 명이 을지OB베어에 찾아와 야간 강제집행을 진행했다. 이들은 내부 집기, 용품 등을 꺼냈고 간판도 강제로 내렸다. 이를 본 창업주 가족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격하게 저항했으며, 그 과정에서 몸싸움이 일어나 가족 중 1명이 다치기도 했다. 오랜 시간 동안 시도에만 그쳤던 강제 집행은 여섯 번째 시도 끝에 완료됐다.

철거가 됐음에도 을지OB베어 창업주 가족을 포함한 공대위는 매일 밤 노가리 골목을 찾고 있다. 시민들 사이로 들어간 이들은 간절한 목소리를 외치고, 피켓을 들고 행진한다. 이들이 장사했던 공간에서는 더 이상 주문을 받고, 계산하는 소리가 아닌 살려달라는 외침만이 가득한 상태다. 

좁고 인파가 많은 골목에서 벌어지는 시위다 보니, 공대위는 매일 밤 시민들의 따가운 눈총과 혹은 동정의 시선을 감내하며 시위를 이어나가고 있다. 노가리골목을 자주 찾는다는 B(27)씨는 “예전에 퇴근하고 자주 골목을 찾았지만 요즘에는 가기가 망설여진다”며 “사람이 너무 많아진 것은 물론 시위까지 진행하고 있어 정신이 없고,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을지OB베어 투쟁 선포 기자회견. ⓒ투데이신문
을지OB베어 투쟁 선포 기자회견. ⓒ투데이신문

공대위는 △건물주 만선호프 측과 을지OB베어의 상생 △서울시와 중구청의 사태 해결 △중소기업벤처기업부의 백년가게 보존 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더불어 이들은 약 한달 넘게 건물주 만선호프 규탄 피켓선전전, 현장 예배 등을 통해 을지OB베어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공대위는 “우리는 이 골목이 ‘을지OB베어의 골목’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며 “우리는 단지 이 문화의 시작이자 일부로서, 전통과 철학을 계승하고 발전시켜가며 손님을 맞이하고 싶다 말했을 뿐이다”라고 호소했다.

이어 “강제집행으로 쫓아내고, 간판을 떼고 그 자리에 만선호프 간판을 붙인다 한들 이곳은 ‘만선호프 골목’ 이 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을지OB베어와 같은 노포들이 자본에 밀려 사라지면 공공성이 훼손된다는 것이다.

을지OB베어와 대립하고 있는 건물주이자 만선호프 사장인 A씨는 지난 2014년부터 노가리골목 내 가게를 인수해 본점, 만선스카이라운지, 을지로 만선 등 총 10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만선호프 측은 을지OB베어의 주장과 달리 이들이 리모델링 요구를 거절해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와 중소벤처기업부 측도 법적 판결이 나온 이상 정부가 적극 개입할 수 없는 입장이다. 

서울시 측은 서울미래유산은 ‘을지로 노가리골목’이지, 특정 가게를 단독으로 지정한 것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 상황에 대해 인지하고 있지만 강제 집행 등은 법원 판결에 따른 것이지 시 차원에서 개입할 법적 근거가 없으며, 을지OB베어 측의 요청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 시민들의 자부심을 높이고, 시 홍보 효과를 위해 미래유산을 선정해왔던 것이지, 문화재와 같은 획일적 보전을 위한 규제 장치를 마련한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을지OB베어를 ‘백년가게’로 선정했던 중소벤처기업부 지역상권과 관계자도 대법원 판결이 나온 상황이라 개입하는 것이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다만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기존에는 시설이나 홍보 등에만 지원 및 관리를 해왔지만 추후 더 보완해 백년가게의 존속과 보호를 위한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을지OB베어 투쟁 선포 피켓 시위. ⓒ투데이신문
을지OB베어 투쟁 선포 피켓 시위. ⓒ투데이신문

이번 을지OB베어 사례를 두고 소상공인의 장기 존속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장은정 연구위원은 지역을 위해서라도 ‘백년가게’와 같은 곳은 오래 가져가는 것이 맞으나 명도 소송 등은 개인 재산권에 따른 권리 행사이기 때문에 정부 개입에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짚었다. 

장 연구위원은 “장수 소상공인의 존속 및 육성을 위해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대한 개정을 통해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면서 “장기적인 관점으로는 정부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과 소상공인 관련 법제화와 그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안까지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인하대 이명운 경제학과 교수는 “백년가게, 미래유산 등으로 선정돼도 자본주의 경제로 인해 철거하게 된 사실이 매우 안타깝다”며 “정부는 백년가게 등으로 이름만 지정만 해 놓고 이러한 곳의 육성이나 존속, 성장에는 정작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서울시, 문화재청 등은 생색내기식이 아닌 실질적인 책임을 지고, 대책을 보안해 시민들이 찾는 명소의 역사를 이어가야 한다”며 “시위 등을 전개하는 시민단체와 인근 지역주민단체도 같은 목적을 향해 달려 나가는 등 협력해야 하고 이 또한 정부가 이끌어줘야 한다”고 첨언했다.

 

을지OB베어 최수영 대표와의 일문일답

Q. 시위를 진행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오래된 가게라 살려달라”라는 의미는 아니다. 노가리골목은 도심 한복판에 저희 가게를 시작으로 여러 가게들이 입점하며, 40년이 넘게 골목의 역사를 이어왔다. 우리는 과거부터 동네 소상공인들과 함께 지금의 노가리골목을 천천히 만들어 왔다. 그런데 불과 지난 2014년에 들어온 만선호프가 지금까지 총 10개의 가게를 운영하면서 골목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역사와 정이 있는 골목에 자본으로 밀고 들어와 망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이렇듯 한 사람의 독식을 막기 위해 시위를 진행하게 됐다.

Q. 시위 시작 이후 만선호프 측과 어떠한 대화를 주고받았는지. 

시위 시작 이후 만선호프 측과 소통한 적은 없다. 대화를 하고자 연락처도 주고받았는데도 이후 강제집행이 이뤄졌다. 현재 만선호프 측이 인터뷰 등도 협조하고 있지 않는 상황이라 대화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Q. 일각에서는 소음, 이동 방해 등으로 문제를 제기하는데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인지.

집회를 할 경우, 소음 기준치에 맞게 진행하고 있다. 또한 공간은 일정 구간만 활용하고 있다. 최대한 합법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혼잡도, 소음도를 매일 확인하고 있다.

Q. 추후 어떠한 계획이 있는지.

현재는 저희의 메시지를 꾸준히 전달하는 것이 목표다. 기존에 진행하던 시위를 이어갈 생각이다. 다만 더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추가적으로 진행할 생각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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