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뱅킹·간편 송금 악용…악성 앱 링크 보내는 수법 등장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자 수 1만2816명 기록…환급률 26%
마약 범죄도 연관…정부 “대국민 홍보 강화·대책 마련할 것”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1. A씨는 휴대전화로 결혼식 초대장 링크가 포함된 문자를 받아 별다른 의심 없이 초대장 링크를 클릭했다. 그러자 악성 앱(파일명: 모바일초대장.apk)이 설치돼 휴대전화에 보관하고 있던 개인정보, 금융정보 등이 사기범에게 전송됐다. 사기범은 악성앱을 통해 탈취한 개인정보를 이용해 피해자 명의로 비대면 대출을 받는 등 자금을 편취했다.
#2. 물품대금을 계좌로 이체받기 위해 계좌번호를 매장 내에 게시하고 있는 소상공인 B씨의 계좌에 신원 미상의 송금인이 30만원을 입금했다. 그날 저녁 은행에서 B씨 통장이 보이스피싱에 연루됐다며 계좌 전체를 지급정지했다. 이후 사기범이 B씨에게 연락해 편취한 보이스피싱 금액을 B씨 통장에 넣었다며 지급정지를 풀고 싶으면 합의금 수백만원을 보내라고 협박했다.
5월 가정의 달을 앞두고 결혼식, 돌잔치 등을 빙자해 사기를 치는 등 보이스피싱 수법이 갈수록 다양, 교묘해지고 있어 금융 소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은 25일 그간 빈번하게 접수된 보이스피싱 관련 주요 민원사례를 바탕으로 금융소비자가 알아야 할 유형별 대응요령 및 유의사항을 안내했다.
금감원은 “최근 국내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거리두기 해제 이후 가정의 달을 앞두고 결혼식 또는 돌잔치를 빙자한 보이스피싱이 빈발하고 있다”며 “문자메시지 내 초대장 링크(URL) 클릭을 유도해 악성앱을 설치하고 탈취한 개인정보를 이용해 자금을 편취하는 수법”이라고 밝혔다.
금감원이 지난 21일에 발표한 ‘2022년 보이스피싱 피해현황 및 주요 특징’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자 수는 1만2816명으로 집계됐다.
또한 보이스피싱 피해액이 1450여억원에 달했지만 환급률은 26%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코로나19 사태 직후에는 사기 범죄도 위축되면서 피해금액은 지난 2019년 6720억원 이후 크게 줄었지만, 감소율은 지난 2020년 65%, 2021년 28.5%, 2022년 13.7%로 둔화하는 추세다.
이에 금감원은 △출처가 불분명한 URL주소 클릭 금지 △통장협박을 받은 경우, 사기범의 합의금 요구에 절대 응하지 말 것 △개인정보가 노출됐을 경우 추가 피해 예방조치를 취할 것 △물품 거래 시 보이스피싱에 연루되지 않도록 유의할 것 △사칭 전화 신고 △피해금이 인출되거나 입금된 금융회사에 피해구제 신청 △전기통신금융사기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 수사기관에 신고할 것 등을 당부했다.
독이 된 ‘간편 금융거래’
오픈뱅킹·간편 송금 등 금융거래의 간편성을 악용한 신종 사기 피해가 발생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가족, 공공기관 등을 사칭하는 사칭형 보이스피싱이 78.6%(1140억원)로 과반을 차지했다. 특히 메신저, SNS 등 비대면채널 이용 증가로 가족, 지인 사칭 메신저피싱 비중이 지난 2020년 15.9%에서 지난해 63.9%로 급증했다.
메신저피싱이란 메신저로 피해자에게 접근해 신분증 사본, 은행계좌 비밀번호 등을 보낼 것을 요구하거나, 악성앱 설치를 유도 후 핸드폰을 원격 조종해 개인정보를 탈취하는 신종 범죄 수법이다. 금감원은 증가 원인에 대해 코로나19 이후 메신저를 활용한 비대면 소통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사기범이 오픈뱅킹을 통해 피해자의 다수 계좌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짐에 따라 1인당 피해 규모가 지난 2019년 이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전체의 피해규모가 감소하는 것 대비 인터넷전문은행 계좌를 통한 피해규모도 증가하고 있다. 피해금액 비중은 지난 2021년 7.7%에서 지난해 20.9%로 늘은 것으로 조사됐다.
비대면 금융거래의 편의성으로 인해 인터넷전문은행의 계좌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많이 활용됐다는 것이 금감원의 설명이다.
또한 가상계좌를 사용한 신종 보이스피싱 사기 사례도 있었다. 지난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양정숙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보이스피싱에 자주 이용되는 가상계좌가 시중은행에 92억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범죄 예방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가상계좌는 실물 통장이 아닌 계좌번호를 고객의 이름으로 부여받아 주로 각종 공과금 등을 납부하는 데 쓰인다.
지난 2월에는 4만7443개의 피해자 명의의 가상계좌를 개설해 범죄조직에 판매한 한 전자결제대행업체 임원이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마약+보이스피싱’…신종 범죄 탄생도
강남 학원가를 뒤흔든 ‘마약음료’ 사건이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이 반년 전부터 구상했던 신종 범죄였던 것으로 밝혀져 큰 파장이 일었다.
이번 사건은 마약과 피싱(phishing)이 합쳐진 신종 범죄로, 국내에서 이 같은 유형의 범죄가 파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지난 3일 경찰은 강남구 학원가 일대에서 무료 시음 행사를 연 뒤 ‘기억력과 집중력 강화에 좋은 음료수가 개발됐다’며 마약 성분이 든 음료수를 학생들에게 나눠준 일당 4명을 붙잡았다.
이들은 총 100병의 마약 음료를 제조한 뒤 2명씩 2개 조를 구성해 각각 강남구청역과 대치역 인근에서 나눠준 것으로 확인됐다.
아르바이트생들은 총 18병을 학생들에게 나눠줬으며, 그중 8병이 음용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조사 과정에서 음료를 마신 학생의 학부모들은 “자녀의 마약 복용을 신고하겠다”라며 현금 등을 요구하는 협박 전화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피해신고를 받은 뒤 폐쇄회로(CC)TV 분석 등을 통해 지난 5~6일 사이 강남에서 마약음료를 배부한 4명을 붙잡았다. 현재까지 경찰은 국내에 체류 중이던 일당 중 7명을 검거해 이중 3명을 송치한 상황이다.
또한 윗선인 보이스피싱 조직 총책이 중국에 있다고 보고 이들이 사용한 콜센터 및 합숙소 장소를 특정해 추적 중에 있다. 중국에 체류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모(25)씨와 박모(39)씨, 이모(32)씨 등 피의자 3명에 대해서는 국내 송환을 위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했다.
두 팔 걷고 나선 정부
보이스피싱의 유형이 점차 다양해지면서 피해도 커지자, 정부가 그 피해를 줄이기 위해 네이버·카카오 등과 협업해 예방수칙을 대대적으로 홍보할 방침이다. 이외에도 피싱의 신종 수법에 대한 맞춤형 대책도 추진한다.
국무조정실은 지난 19일 보이스피싱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통해 대국민 홍보 강화방안을 논의했다.
앞으로 정부는 보이스피싱의 예방 수칙, 대처 방안 등에 대해 네이버·다음 포털과 카카오톡 등 메신저 앱에서 손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한다. 더불어 KTX역 맞이방 대형모니터·지하철역 승강장 등에 피해예방 홍보영상과 문구를 주기적으로 송출하며 대형마트, ATM 등을 활용해 체험형 콘텐츠를 마련한다.
신종 사기 수법인 ‘통장협박’에 대한 피해 대책도 준비한다. 통장협박은 소상공인의 계좌에 소액을 송금한 후, 계좌 지급정지를 빌미로 금전을 요구하는 새로운 보이스피싱 유형이다.
정부는 ‘통장협박’의 피해자의 경우 피해 계좌가 보이스피싱과 무관하다고 확인되면, 분쟁소지가 있는 피해자 계좌 일부만 지급정지할 수 있도록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을 추진한다.
상대방 계정이나 전화번호 입력만으로도 송금이 가능한 간편 송금의 피해를 막기 위해 금융회사와 간편 송금업자 사이에 계좌정보를 공유해 범인 계좌에 대한 신속한 지급정지가 가능하도록 관련 법에 대한 개정에 돌입할 예정이다.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이하 통합위) 산하의 위원회도 구성된다. 통합위는 전날 사기 범죄를 뿌리 뽑겠다며 ‘민생사기 근절 특별위원회’를 출범했다.
앞서 통합위는 지난 2월 △사기 경로 사전 차단·대응체계 구축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의 피해 구제 △사기 대응 교육 홍보 등 예방 프로그램 마련 △재발 방지를 위한 처벌 강화 등을 전략 과제로 선정했다.
통합위 김한길 위원장은 “민생 사기는 누구나 예외가 될 수 없는 심각한 사회 문제”라며 “더 이상 피해자가 고통받지 않도록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 대안을 마련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논의를 거친 뒤 오는 7월 통합위는 사회적 약자와 청년 보호에 초점을 맞춘 정택 대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관련기사
주요기획: [남녀편견지사],[존폐 기로에 선 여가부], [내 이웃, 이주민]
좌우명: 꿈은 이루어진다 다른기사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