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 저감·정제마진 의존도 탈피 요구 직면 ‘변화 시도’

SK이노베이션 김준 부회장이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이나주 새너제이에서 열린 ‘SK이노베이션 글로벌 포럼’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 김준 부회장이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이나주 새너제이에서 열린 ‘SK이노베이션 글로벌 포럼’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SK이노베이션]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국내 정유사들이 기존 정유사업을 넘어 친환경 및 화학사업으로의 전환에 점차 속도를 내고 있다. 탄소배출을 줄여야 하는 시대적 요구와 정제마진 의존도가 높은 수익구조를 바꿔야하는 사업적 필요를 모두 충족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는 상황이다.

28일 정유업계에 의하면 4대 정유사 모두 기존 정유 중심의 사업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친환경 및 화학분야 사업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지속으로 업황이 개선되지 않는 가운데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사활을 거는 모습이다.

배터리·재활용 사업 등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3일 이사회에서 1조18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추진 안전을 의결했다. 당장의 주주가치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겠지만 건실한 재무구조를 확보해 향후 신사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구상이다.

SK이노베이션 김준 부회장은 2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카본 투 그린 전략의 실행을 통해 2021년 스토리데이에서 밝힌 2025년 그린 자산 비중 70% 목표를 조기에 달성하겠다”라며 “무탄소·저탄소 에너지, 자원순환 등 그린 포트폴리오를 확대해 오는 2062년까지 올타임 넷제로(All Time Net Zero)를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카본 투 그린 전략 실행을 위해 배터리, 분리막 사업을 중심으로 한 ‘그린 앵커링(Green Anchoring)'과 기존 탄소 발생 사업을 그린 사업으로 전환하는 ’그린 트랜스포메이션‘을 추진 중이다. 최근에는 암모니아, 폐기물 자원화 등의 영역을 확장하는 ’뉴그린 앵커링‘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배터리 자회사인 SK온은 지난해부터 5조원 규모의 재원을 확보해 당초 목표를 24% 웃도는 투자를 유치했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 거는 성장 기대감과 SK온이 지닌 발전 가능성이 대규모 투자 유치로 증명됐다는 평가다.

SK온은 현재 중국, 헝거라 등에 신규 배터리 공장을 확충하고 있으며 포드 및 현대자동차그룹 등 완성차업체와의 배터리 합작공장도 추진 중이다. SK온은 신규 투자를 발판으로 2025년까지 연간 생산능력을 최소 220GWh로 확대할 계획이다.

SK지오센트릭은 폐자원 재활용 사업을 통한 유럽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에는 프랑스 수자원 및 폐기물 관리기업인 수에즈, 재활용 핵심기술을 보유한 캐나다 루프사와 함께 유럽 내 플라스틱 재활용 공장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들 3사는 약 4억5000만유로를 투자해 2027년까지 프랑스 생 타볼 지역에 연간 약 7만톤 규모의 재활용 공장을 세울 예정이다.

앞서 SK지오센트릭은 2019년에는 프랑스 폴리머 업계 1위 석유화학업체인 아르케마로부터 고기능성 폴리머 사업을 3억3500만유로에 인수하기도 했다. 고기능성 폴리머는 패키징, 접착소재 등에 활용되고 있다.

에쓰오일이 지난 3월 9일 울산시 울주군 울산공장에서 샤힌 프로젝트 기공식을 열고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에쓰오일]
에쓰오일이 지난 3월 9일 울산시 울주군 울산공장에서 샤힌 프로젝트 기공식을 열고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에쓰오일]

국내 석유화학 최대 규모 ‘샤힌 프로젝트’ 

에쓰오일(S-OIL)은 대주주인 글로벌 종합 에너지·화학기업 아람코로부터 총 14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받아 정유사업에서 석유화학산업으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특히 국내 석유화학 역사상 최대 규모인 9조2580억원을 투입하는 ‘샤힌(SHaheen. 아랍어 ’매‘) 프로젝트’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에쓰오일은 지난 3월 9일 울산시 울주군 울산공장에서 샤힌 프로젝트 기공식을 진행했다. 이날 기공식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해 “한-사우디 경제협력의 대표 성과인 샤힌 프로젝트의 출발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에쓰오일과 울산시의 새로운 도약을 응원한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는 오는 2026년 6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완료되면 에쓰오일의 석유화학 비중은 현재 12%에서 25%로 2배 가량 올라가게 된다. 주요 시설로는 스팀 크래커, TC2C 시설, 폴리머 시설과 저장탱크 등이 있다. 

스팀 크래커는 원유를 정제하면서 발생한 나프타와 부생가스 등을 에틸렌, 프로팔렌 등 석유화학 공정에 필요한 기초유분을 생살하는 설비다. 에쓰오일은 TC2C 기술을 통해 원유와 중질유를 석유화학 원료로 전환해 스팀 크래커에 연료로 공급할 계획이다. 이로서 화학 제품 수율을 높여 생산 효율 향상과 탄소 저감 등을 기대할 수 있다.

에쓰오일은 지난달 새 대표이사 CEO에 아람코 아시아 사장을 역임했던 안와르 알 히즈아지 사내이사를 선임해 샤힌 프로젝트의 키를 맡겼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알 히즈아지 CEO는 사힌 프로젝트의 성공적 건설을 통한 석유화학 확장과 포트폴리오 고도화, 저탄소 수소경제 진출, 2050년 탄소중립 실현 로드맵 추진 등 다가오는 에너지 전환의 시대에 대비한 회사의 전략적 성장에서 우수한 성과를 이끌어낼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HD현대오일뱅크는 3단계 로드맵으로 화이트 바이오 사업을 육성할 계획이다. [자료제공=HD현대오일뱅크]
HD현대오일뱅크는 3단계 로드맵으로 화이트 바이오 사업을 육성할 계획이다. [자료제공=HD현대오일뱅크]

블루수소, 친환경 화학·소재, 그리고 화이트 바이오

HD현대오일뱅크는 미래성장동력으로 블루수소, 친환경 화학·소재와 함께 차세대 화이트 바이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화이트 바이오란 광합성으로 생성된 다양한 식물자원을 원료로 각종 에너지원과 화학소재를 생산하는 탄소저감 사업이다.

현대오일뱅크는 3단계 로드맵으로 화이트 바이오 사업을 육성할 계획이다. 1단계는 올해까지 대산공장 1만㎡ 부지에 연산 13만톤 규모의 차세대 바이오디젤 제조 공장을 건설하고 내년까지 대산공장 내 일부 설비를 연간 50만톤 규모의 수소화 식물성 오일(HVO) 생산설비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어 2단계로는 HVO를 활용한 차세대 바이오 항공유를 생산해 글로벌 시장 진출에 나선다. 국내뿐 아니라 원료 조달이 용이한 인도네시아 등 해외 현지에 화이트 바이오 제조 공정을 건설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마지막 3단계에서는 2026년까지 글리세린 등 화이트 바이오 부산물을 활용한 바이오 케미칼 사업을 추진해 2030년까지 연간 100만톤에 달하는 화이트 바이오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포부다.

화이트 바이오 사업에 투입되는 원료로는 기름찌꺼기, 폐식용유, 땅에 떨어진 팜 열매 등 비식용 자원을 활용해 기존 방식과 차별성을 둘 예정이다. 현대오일뱅크 주영민 사장은 “기존 정유 공정의 기술력과 원가경쟁력을 접목해 화이트 바이오 사업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겠다”라며 “2030년까지 화이트 바이오, 블루수소, 친환경 화학·소재 등 신사업 이익 비중을 70% 수준으로 늘리겠다”고 말했다.

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의 합작사인 현대케미칼은 플라스틱 순환경제 구축을 본격화한다. 현대케미칼은 지난해 5월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원료로 도입해 친환경 석유제품과 친환경 플라스틱 생산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현대케미칼은 연간 최대 3만톤의 친환경 플라스틱을 생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현대케미칼은 지난해 10월 충남 서산시에 중질유 기반 석유화학설비인 HPC를 준공하고 친환경 화학소재 사업 진출도 본격화했다. 이 HPC공장은 태양광 패널 소재 EVA 생산 능력은 30만톤으로 단일 라인 기준 국내 최대 규모다. 현대오일뱅크는 서산 HPC를 통해 미래 친환경 화학소재 사업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각오다. 

현대오일뱅크가 100% 출자한 현대E&F는 천연가스뿐만 아니라 대산공장에서 생산한 블루수소를 30%까지 투입할 수 있는 친환경 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이다. 2025년 준공을 목표로 스팀 230톤/시, 전기 290㎿ 용량의  설비를 구축해 여기서 생산하는 스팀과 전기를 대산공장 내 현대오일뱅크 자회사에 공급할 예정이다.

GS칼텍스는 지난해 11월 11일 전남 여수2공장 인근에서 MFC시설을 준공했다. [자료제공=GS칼텍스]
GS칼텍스는 지난해 11월 11일 전남 여수2공장 인근에서 MFC시설을 준공했다. [자료제공=GS칼텍스]

MFC시설 기반으로 종합에너지기업 도약 시도

GS칼텍스는 지난해 11월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2조7000억원을 투자해 전남 여수2공장 인근에 올레핀 생산 시설(이하 MFC시설)을 건설했다. MFC시설은 에너지전환 및 ESG경영 추진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데 핵심 역할을 할 예정이다.

GS칼텍스는 MFC시설을 통해 연간 에틸렌 75만톤, 폴리에틸렌 50만톤, 프로필렌 41만톤, 혼합C4유분 24만톤, 열분해가솔린 41만톤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됐다. MFC시설은 나프타뿐 아니라 정유 공정에서 생산되는 LPG, 석유정제가스 등 다양한 유분을 원료로 투입할 수 있어 동일 생산능력을 가진 석유화학 시설 대비 에너지사용량이 10% 가량 줄어들 수 있다. 또, 부가적으로 수소도 생산해 LNG 사용량을 절감할 수 있게 돼 탄소배출을 연간 총 7만6000톤 줄일 수 있게 됐다.

GS칼텍스는 MFC시설이 비정유 부문 비중이 늘어나는 사업구조 전환을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GS칼텍스 허세홍 사장은 “MFC시설 준공으로 변동성이 높은 시장에서 다양한 제품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라며 “정유사업에 더해 석유화학사업, 친환경에너지, 자원 재활용까지 포괄하는 종합에너지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GS칼텍스는 신사업 전환을 위한 협업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GS칼텍스는 LG화학과 함께 지난해 7월 화이트 바이오 생태계 구축 및 친환경바이오 원료 상업화를 위한 실증플랜트 건설에 나섰다. 이 실증플랜트는 생분해성 플라스틱 등 친환경 소재의 핵심원료인 3HP(3-하이드록시프로피오닉산) 시제품을 생산하게 된다.

3HP는 친환경 발효 공정을 통해 생산되는 바이오 원료다. 양사는 올해까지 실증플랜트를 구축해 시제품을 생산한 뒤, 상업화를 통해 생분해성 소재 및 다양한 바이오 플라스틱 시장 진입에 속도를 내고자 한다.

GS칼텍스는 국내 대표선사인 HMM과도 친환경 바이오선박유 사업분야 협력을 통해 그린 트랜스포메이션 추진을 가속화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지난 4월 HMM과 친환경 바이오선박유 사업 업무협약을 맺고 HMM은 바이오선박유 수요 확보에, GS칼텍스는 HMM 선박에 바이오선박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데 협력하기로 했다.

바이오선박유는 화석연료 대비 온실가스 배출이 80% 이상 줄어든 폐원료 기반 바이오디젤과 기존 선박유로 생산한다. 기존 선박 엔진의 개조 없이도 사용할 수 있어 국제해사기구(IMO) 온실가스 저감 계획 이행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친환경 연료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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