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 살해·유기 연달아 발생하자 칼 빼 든 정부
‘출생통보제’ 법사위 통과…30일 본회의 앞둬
당정 “보호출산제와 동시 시행해야 우려 해소”
“익명 출산 권고하는 부작용 생겨” 반대 의견도

지난해 8월 서울 중구 한 유치원 앞에서 보호자가 자녀와 함께 등원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해 8월 서울 중구 한 유치원 앞에서 보호자가 자녀와 함께 등원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출생이 미신고된 영아 살해·유기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자, 장기간 국회에 계류돼 있던 ‘출생통보제’ 입법에 속도가 붙고 있다.

하지만 산모가 익명으로 아기를 낳을 수 있게 하는 ‘보호출산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는 지난 28일 출생통보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다.

출생통보제는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서류상 존재하지 않게 돼 아동이 미등록자로 지내지 않도록 부모가 아닌 의료기관이 출생 사실을 국가기관에 우선 통보하는 제도다.

법사위 국민의힘 간사인 정점식 의원은 “이번 개정안은 의료인이 진료기록부에 출생 신고에 필요한 출생 정보를 기재하도록 하고, 의료기관장이 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 통보하도록 한 것이 주요”라며 “심평원은 이를 시읍면장에게 통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평원 통보를 받은 지자체장은 출생일로부터 한 달 안에 출생신고가 되지 않을 시 모친에게 7일 내 신고하도록 연락해야 하며, 이후에도 신고 조치가 없을 경우 법원의 직권 허가를 받아 지자체장이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한다.

의료기관에서 출생 통보를 하지 않을 경우 이뤄지는 처벌 조항은 이번 개정안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정 의원은 “지금도 건강보험료 신청을 위한 절차가 의료기관장을 거쳐야 하므로 출생 정보 통보를 회피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의료기관 종사자들의 부담은 크지 않을 것이고,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 등과도 협의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법안은 29일 법사위 전체회의를 거친 뒤 오는 30일 본회의에서 입법을 완료될 예정이다. 이후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의 출생정보 등록 시스템 구축을 거쳐 공포일로부터 1년 후에 시행된다.

지난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출생통보제 도입을 위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심사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출생통보제 도입을 위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심사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뒤늦은 ‘입법 속도전’

출생통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된 바 있다.

출생통보제는 지난 18대 국회부터 현 21대까지 15건 발의돼 왔지만, 번번이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의료계에서 거세게 반대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신생아의 분만 진료비를 청구하는 과정에서 심평원에 이미 출생 사실을 통보하고 있다며, 지자체에 통보하는 책임까지 이중으로 의료기관에 부여하는 것은 행정적으로 부담이 있다며 반발해 왔다.

앞서 지난 4월에는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개최된 아동정책조정위원회에서는 ‘윤석열 정부 아동정책 추진 방안’이 확정됐는데, 당시 정부는 출생통보제를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로부터 약 두달 가량이 흐른 뒤에도 입법 절차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던 지난 21일 경기도 수원에서 A씨가 지난 2018년 11월 넷째 딸, 2019년 11월 다섯째 아들을 병원에서 출산한 뒤 각각 집과 병원 근처에서 살해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가구 내 냉장고에 시신을 보관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 22일에는 울산 남구 소재 모 아파트 단지 내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남자 영아 시신이 발견됐으며, 지난 24일에는 지난 2021년 12월 서울 소재 한 병원에서 아기를 출산하고 유기한 B씨가 검거되는 등 영아 살해 및 유기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이에 더해 감사원이 지난 3월부터 보건복지부 대상으로 실시한 정기감사 과정에서 지난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의료기관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미신고 영유아가 2236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영아 살해·유기 사건이 여러차례 발생하고 감사원의 감사 결과까지 나오자, 아동 보호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며 출생통보제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에 여야는 출생통보제 입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하고 신속한 도입에 공감대를 이루게 됐다.

서울시내의 한 산부인과 입구의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서울시내의 한 산부인과 입구의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보호출산제’ 우려는 잔재

당정은 출생통보제에 이어 병원 밖 출산이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를 보완하기 위해 ‘보호출산제’도 동시에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호출산제는 일반적인 출산이 어려운 임산부를 위해 익명으로 의료기관에서 출산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출생신고와 입양신청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당정 등은 영아의 생명권을 존중하고 이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야 국가가 보호할 수 있다며 도입 찬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일부 시민단체와 야당 등에서는 아동의 알 권리 침해, 양육 포기 조장 등의 우려가 있다며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법안을 발의한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은 전날 법사위 회의가 끝난 뒤 “법안은 가장 사회적 약자이고, 말로도 표현 못하고 스스로 의사 표시를 못하는 아기들의 목소리를 듣자는 것”이라며 “아기들은 태어나자마자 끔찍하게 죽임을 당하는데 외면해도 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보호출산제가 도입되지 않으면) 위기 임산부들은 은폐된 곳을 찾아다는 등 더 사각지대로 내몰리는 꼴”이라며 “보호출산제의 취지는 산모의 자기 결정권과 건강권을 지키고 아기의 생명권을 지키자는 것이다”고 꼬집었다.

보호출산법시민연대도 같은 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지금도 어딘지 모르는 원룸, 화장실, 모텔, 고시원에서 위태로운 목숨이 태어나고 있다”며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위기 임신·출산·양육 과정에서 공적 지원 강화가 우선돼야 한다”며 “보호출산제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쟁점에 대한 충분한 숙의와 논의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국가가 먼저 인프라를 구축하기도 전 보호출산제를 시행하면, 익명 출산을 권고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신 의원의 설명이다.

시민연대체인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는 성명을 내고 “(보호출산제는) 오히려 아동의 뿌리를 알고 정체성을 가질 권리, 양육과 보호의 청구권을 영구히 박탈하는 것”이라며 “어떤 임신과 출산은 은폐돼야 할 일로 전제한다는 점에서 여성에 대한 모욕과 차별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어 “익명출산제가 사실상 시행되는 국가에서도 영아살해, 아동유기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현재는 보편적 출생등록제를 어떻게 완비할 것인지 논의해도 부족할 시간”이라고 덧붙였다. 

찬반 의견 충돌이 거세지자, 국회 법소위에서 출생통보제와 함께 논의된 보호출산제 법안은 소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로 인해 해당 법안에 대한 논의는 다음 달로 연기됐다. 

이에 현재 보건복지부는 제도의 부작용을 고려해 ‘원가정 우선’ 원칙을 추가하는 등 기존 국회에 발의된 김미애 의원과 조오섭 의원안을 검토한 뒤 수정해 새로운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또한 감사원 감사 과정에서 확인된 임시신생아번호로 남아있는 아동의 출생신고 여부와 소재 및 안전 확인을 위한 전수조사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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