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정 양립, 양육, 주거 3대 핵심 분야 주력 필요
사각지대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정책 설계해야

지난 5월 30일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개최된 ‘제40회 대구 베이비&키즈 페어’를 방문한 관람객들이 유아용 의류를 구경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br>
지난 5월 30일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개최된 ‘제40회 대구 베이비&키즈 페어’를 방문한 관람객들이 유아용 의류를 구경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지난해 정부가 저출생 대응 예산으로 약 47조원을 투입했지만, 그중 절반은 문제 해결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과제에 투입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저출산 해결에 필수라고 꼽히는 일·가정 양립 예산은 2조원에 그친 반면, 주거 지원 예산이 21조4000억원에 달한 데 이어 정책 대상과 목적이 지나치게 포괄적인 사업에도 예산이 쓰여 재구조화가 시급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12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이하 위원회)에 따르면 위원회는 전날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공동으로 ‘저출생 예산 재구조화 필요성 및 개선 방향’ 세미나를 진행했다.

이번 세미나는 저출생 대응 예산의 현황을 냉정하게 점검하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향후 개선방안을 논의하고자 개최됐다. 이날 참석한 전문가들은 그동안 저출생 대응 정책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 원인으로, 해당 예산에 착시효과가 존재한다는 점을 꼽았다.

KDI가 자체 계량분석을 통해 지난해 저출생 대응 예산사업을 재구조화한 결과, 전체 예산 47조원(142개 과제) 가운데 저출생 대응 핵심직결 과제로 쓰인 예산은 23조5000억원(84개)으로 절반에 불과했다.

7조원 중 주거지원 예산이 21조4000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절반 가까이를 기록했다. 다만 주거지원 예산은 국제비교기준으로 통용되고 있는 OECD 가족지출에 포함되지 않는 항목이다.

저출생 핵심 직결과제를 분야별로 보면, 양육 분야에 87%(20조5000억원) 예산이 집중돼 있던 반면, 저출생 대응에 효과가 크고 정책수요자의 요구가 높은 일·가정 양립에 대한 지원은 8.5%(2조원)에 불과했다.

‘청소년 스마트폰 중독 예방사업’ 등과 같이 사업의 정책대상과 목적이 지나치게 포괄적인 사업들도 다수 발견됐다.

학교 단열성능 개선, 태양열 설비 설치를 지원하는 그린스마트스쿨 사업이 지난 2021년, 2022년 저출생 사업으로 분류돼 저출생 예산으로 2조 1000억원이 잡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청년과 기업, 정부가 공동으로 적립해 청년의 자산형성을 지원하는 청년내일채움공제 사업도 지난 2021년과 2022년 저출생 대책으로 포함돼 있었는데, 해당 사업에 투입된 예산은 2조7000억원이다. 더불어 내일배움카드사업, 웹툰창작·교육공간 조성사업 등 저출생과 연관성이 낮은 사업들이 대거 저출생 대응 사업으로 분류돼 있었다.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위치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현판. [사진제공=뉴시스]<br>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위치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현판. [사진제공=뉴시스]

이날 전문가들은 지출 구조조정 과정을 거쳐 부풀려진 저출생 과제와 그 예산을 정리하고 연관성이 높은 정책과제에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울대 홍석철 교수는 “경제규모와 초저출생의 시급성과 예산 제약 등을 감안할 때, 저출생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인식되는 일·가정 양립 지원에 보다 많은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보건사회연구원 이영숙 센터장은 “다양한 분야의 범부처 사업을 취합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사업기획부터 성과제고 및 재정운용까지 사업운용 전반을 책임지는 중앙정부 차원의 거버넌스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며 “중앙-지자체 사업 간도 상호 보완되는 방향으로 개선해 효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더해 서울대 이철희 인구클러스터장은 재구조화를 하면서도 미혼자나 자영업자 등 정책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설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원회 주형환 부위원장은 “저출생 대책과 직접 관련이 없거나 효과가 미흡한 과제는 과감히 도려내고, 효과 있는 정책에 집중해야 한다”며 “효과성이 없는 사업에 대해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정책 사각지대 분야에 대해서는 보완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실효성 있는 핵심과제 중심으로 재원을 집중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해 선택과 집중을 통해 일·가정 양립, 양육, 주거의 3대 핵심 분야에 주력할 것”이라며 “이들 사업 분야도 사업설계는 적절한지, 전달체계는 합리적인지, 유사·중복사업은 없는지, 정책수요자의 만족도는 어떠한지 등을 심층 평가해 지속적으로 구조 조정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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