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를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이 한창이다. 4일 현재 시각 청원 동의자 수가 100만을 넘어섰다. 탄핵 이야기는 지난 제22대 국회의원총선거에서 범야권이 압도적 승리를 거둔 직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것은 탄핵을 주도할 힘을 가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탄핵 관련 발언을 조심하고, 탄핵을 막아야 할 국민의힘 의원이나 당원들은 ‘특검 저지를 통해 탄핵을 막겠습니다!’라는 형태로 아무렇지도 않게 탄핵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 역시 지난 총선 이후인 지난 4월 27일 칼럼에서 탄핵을 언급한 바가 있다.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탄핵 논의 과정을 듣다 보면, 필자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을 때가 있다. 바로 “탄핵은 한국 정치의 불행”이라는 방식의 주장을 들을 때다. 과연 탄핵은 한국 정치의 불행일까?
탄핵을 한국 정치의 불행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근거는 ‘헌정질서 중단’이다. 여기서 ‘헌정(憲政)’이란 헌법에 의한 통치 혹은 정치를 뜻한다. 그러나 대통령을 비롯한 “법률이 정한 공무원”의 탄핵은 ‘헌법’에 명시돼 있다. 헌법 제65조 1항에는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라고 적혀있다. 이것은 탄핵 역시 헌법에 명시된 절차 중 하나라는 뜻이고, ‘헌정질서 중단’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잘못됐다는 의미다. 오히려 시민들의 요구를 국회가 받아 안아서 절차에 맞게 탄핵 과정을 수행하는 것은 헌법 질서 안에서 이루어지는 현상이다.
차라리 “국민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논지 역시 한계가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윤석열 당시 후보가 획득한 득표율인 48.56%보다 훨씬 낮다. 이것은 기존에 윤석열 후보에게 표를 준 국민들 역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는 의미다.
진정한 ‘헌정 중단’은 한국 현대사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대통령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대통령은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박근혜 등 총 다섯 명이다. 이승만은 대통령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 원인을 되짚어 보면 헌정을 파괴한 것이 이승만 스스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승만은 1960년 4월 26일 시민대표단과의 면담에서 시민대표단의 하야 요구를 받았고, 이것을 수용해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시민대표단이 구성되고 이승만과 면담한 이유는 4·19혁명 때문이고, 4·19혁명은 3·15 부정선거, 그리고 이것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여했던 김주열 열사가 변사체로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고, 4월 15일 고려대 학생들의 시위를 깡패와 경찰을 동원해 진압하면서 시작된 것이었다. 부정선거, 시위를 경찰과 깡패를 동원해 무력 진압한 것, 4.19에서 발생했던 경찰의 발포와 시위대의 사망 등은 모두 헌정질서의 중단이자 파괴다.
윤보선 대통령도 헌정 중단과 헌법 질서 파괴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즉 박정희와 정치군인들에 의해서 발생한 쿠데타로 인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것이다. 헌정을 중단시키고 헌법 질서를 파괴하면서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면서 18년 동안 독재를 자행하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암살당했다. 물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박정희 암살 역시 (잘못된) 헌정 중단이었다.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최규하 국무총리가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간접선거로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러나 12·12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이 최규하 대통령의 사퇴를 종용했고, 최규하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이것 역시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에 의한 헌정 중단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오는 23일에 있을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AI로 역대 대통령을 등장시킬 계획이 있는데, 그 대상 중 이승만과 박정희가 있다는 점이다. 헌정과 민주주의를 파괴한 대통령의 존재, 그리고 그들에 대한 향수를 재생하려는 수구 정당 정치인들이 한국 정치의 불행 아닐까?
헌법 체계 아래에서 질서있게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사람이 박근혜였다. 박근혜의 경우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을 비롯한 다양한 헌법과 현행법 위반으로 탄핵됐고, 헌법재판소에 의해 대통령직에서 파면됐다. 이 과정에서 박정희, 전두환의 사례와 같은 헌정 파괴나 민주주의 질서의 파괴는 없었다. 오히려 외국에서는 박근혜 탄핵이 시민들에 의한 민주주의 질서 수호라는 칭찬이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요구는 민주주의의 한계와 이 한계의 극복 양상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득표율 2위를 차지한 이재명 당시 후보와의 득표율 차이가 0.73%에 불과하지만, 윤석열 후보는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윤석열 후보에게 표를 던지지 않은 51.44%의 시민들도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부려야 하는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 그 피해는 지난 제22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시민들도 함께 짊어져야 한다. 윤석열 후보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그나마 윤석열 후보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지지를 철회하고 탄핵을 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긍정적인 모습이다. 사람이, 그것도 쉽게 변하지 않는 기성세대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윤석열 대통령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탄핵은 헌정 중단이 아니다. 탄핵은 헌법에 명시돼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에 의한 탄핵은 정치적 불행이 아닌 정치적 성숙을 입증할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논의는 말만 무성할 뿐 시작되지도 않았다. 향후 특검을 비롯한 다양한 방법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현행법과 헌법 위반 여부를 공정하게 검증하고, 그 결과 윤석열 대통령의 현행법과 헌법 위반 사안이 드러나면 그때 다시 헌법과 법률에 따라서 탄핵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상병의 죽음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외압 의혹을 수사하기 위한 특검을 반대하면서 탄핵을 운운하는 여당 정치인들과 탄핵을 국민적 불행이라고 이야기하는 수구 평론가들의 모습은 논리적이지 않은 모습이고, 탄핵이 진짜 일어날까봐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국민들의 탄핵 청원만 있는 현 상황에서 탄핵을 “헌정 중단”, “한국 정치의 불행”이라고 규정하는 평론가들, 정치인들, 언론인들의 자유민주주의 이해 정도가 심히 의심스럽다. 이들에게는 오히려 조선중앙텔레비죤, 조선로동당, 로동신문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