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EDF 제치고 체코 원전 건설 우협대상자 선정
가격, 품질, 납기 3박자 갖춰…“거부할 수 없는 제안”
유럽각국, 신규 원전 계획…국내 건설사 수주전 한창
“정치권이 안정적인 원자력 산업 육성 정책 합의해야”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을 중심으로 한 ‘팀 코리아’가 체코 신규 원전 사업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며 관련 산업에 활기가 감돌고 있다. 유럽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으면서 원전 사업이 한국의 신성장동력으로 급부상하는 모습이다. 다만 정부가 바뀌면 원전 정책도 냉온탕을 오갔던 만큼, 원자력 산업 육성과 일관된 에너지정책을 위한 정치권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UAE 원전 이후 15년만…가격‧납기에 강점
체코 정부가 지난 17일 한수원을 두코바니 신규 원전 2기 건설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자 산업통상자원부, 주체코 한국대사관, 한수원에서는 환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2022년 3월부터 프랑스 EDF,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치열한 경쟁을 벌인 2년 4개월여간의 수주전이 ‘팀 코리아’의 승리로 확정된 순간이었다.
한수원은 한전기술, 두산에너빌리티, 대우건설, 한전연료, 한전KPS 등과 ‘팀 코리아’를 구성해 유럽 원전 시장 진출의 교두보인 두코바니 원전 수주전에 임했다. 올해 들어 체코전력공사가 입찰 규모를 1기에서 최대 4기로 늘리며 수주 경쟁은 EDF와의 2파전으로 좁혀졌다.
당초 유럽 원전사업에 경험이 많은 EDF가 유리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으나 체코는 예상을 뒤엎고 한수원을 선택했다. 한수원은 50여년간 축적한 세계적 수준의 건설능력과 UAE 바라카 원전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경험을 토대로 가격, 품질, 납기 3박자를 모두 갖춘 사업계획을 제안해 이번 수주전에서 우선협상의 지위를 확보했다. 주어진 예산으로 적기에 공급하겠다는 한수원의 ‘On Time Within Budget’ 구호가 유럽 원전 시장으로 가는 교두보를 연 셈이다.
두코바니 원전 건설사업 수주는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이후, 한국이 설계‧조달‧시공(EPC) 등 전 건설 과정의 수주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번에 공급할 원전 모델은 한수원이 체코 맞춤형으로 개발한 APR1000(설비용량 1000㎿)으로 지난해 3월 유럽사업자요건(EUR) 인증을 취득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원자로, 증기발생기, 냉각 펌프를 포함한 1차 계통 핵심 주기기를 제공한다. 원전에 들어가는 증기터빈 등 2차 계통 핵심 주기기는 두산에너빌리티의 체코 자회사인 두산스코다파워가 공급한다. 두산에너빌리티 관계자는 “최종 계약까지 차질 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팀코리아의 일원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대우건설은 시공주관사로 각종 인프라건설과 주설비공사의 건물시공 및 기기설치를 맡게 된다. 대우건설은 신월성 1‧2호기 등의 상용원전 대표사로 참여한 바 있으며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1, 2단계 공사수행, 상용원전에 대한 설계인증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월성1호기 해체공사 및 공정설계 용역을 수행하며 원자력분야 토탈솔루션을 보유한 회사로 평가되고 있다.
체코 정부에 따르면 총 예상 사업비는 원전 2기에 약 24조원이지만 사업자와의 계약금액을 뜻하지 않는다. 최종 계약액은 협상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체코 현지 언론에서는 “한수원이 덤핑에 가까운 가격으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세계원자력협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수원의 원전 건설 단가는 1㎾당 3571달러다. 이는 EDF 원전 건설 단가(1㎾당 7931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우리는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시했다. 우리가 지닌 노하우로 수익을 남길 수 있는 적정선에서 입찰을 했다”라며 “EDF는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공기를 지키지 못한 경우가 많다. 체코 정부가 그런 부분을 고려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내부적으로 내년 3월 최종협상을 대비해 조직을 꾸릴 텐데 아직 상세계획이 나오지는 않았다. 앞으로 발주처와 프로젝트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협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추가 원전 수주 이어질까…SMR 사업도 주목
최근 유럽의 원전시장은 에너지가격 불확실성이 대두되면서 원자력발전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는 추세다. 때문에 신규 원전과 그에 관련한 발주도 늘어나는 분위기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30여개 국가가 신규 원전 건설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이 중 상당수가 유럽국가다. 이밖에 미국도 SMR(소형모듈원전) 부문에서 중요한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영국은 시즈웰, 월파, 무어사이드 등 2~6기 가량의 원전 건설을 추진 중이며 네덜란드도 2기의 신규 원전을 통해 원자력 발전비중을 3%에서 13%로 상향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 외에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핀란드, 스웨덴 등도 신규 원전 도입을 모색하고 있다.
국내 건설사들도 유럽 원전 시장 진출에 공을 들이고 있다. 대우건설은 한수원과 ‘팀코리아’를 구성해 폴란드 퐁트누프 원전 2기 건설 사업 수주를 추진 중이다. 앞서 2022년 10월에는 원전 개발계획 수립을 위한 한국-폴란드 정부부처간 양해각서(MOU)와 한수원-폴란드 전력공사(PGE)‧민영 발전사 제팍(ZE PAK)간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했다.
대우건설은 이외에도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3, 4호기 신규 건설사업에도 입찰 참여를 추진하고 있다. 루마니아가 SMR 건설도 타진하면서 루마니아 시장에 적극 진출한다는 방침이다.
현대건설은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전 신규 건설공사 수주에 집중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달 25일과 26일(현지시간) 불가리아 소피아에 위치한 힐튼 소피아 호텔에서 현대건설 불가리아 원전 로드쇼 2024를 열고 원전 시공역량을 홍보했다. 현대건설은 지난 2월 입찰자격심사(PQ)를 단독 통과했으며 이후 엔지니어링 계약을 앞두고 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코즐로두이 원전 공사 수주는 무리없이 올해 안에 결론이 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현대건설은 국내외 한국형 대형원전 34기 중 22기의 시공 주관사로 참여한 포트폴리오를 토대로 SMR, 원전해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등의 원전 밸류체인 전반으로 역량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SMR 사업에서는 2021년 미국 원자력기업인 홀텍 인터내셔널과 개발 및 사업 동반 진출을 위한 독점계약을 체결하고 차세대 원전 개발에 나서고 있다. 현대건설과 홀텍이 개발 중인 SMR은 미국 펠리세이드 원전 부지에 첫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도 차세대 원전기술인 SMR 시장 선점을 위해 미국 뉴스케일파워에 7000만달러를 투자했다. 뉴스케일파워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설계인증을 받았으며 세계 최초로 2029년 준공을 목표로 미국 아이다호주에 SMR 프로젝트를 건설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6월 루마니아 원자력공사를 비롯해 이인프라, 노바파워앤가스, 미국 뉴스케일, 미국 플루어 등 5개사와 루마니아에 SMR을 건설하는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협약을 맺었다. 이 사업은 루마니아 도이세슈티 지역의 화력발전소를 SMR로 교체하는 내용으로 오는 2029년 상업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나증권 유재선 연구원은 “(체코 신규 원전은)최종적인 체결 가격을 확인할 필요가 있겠으나 현재 시점에서 수익성 측면에서의 우려는 제한적일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유럽 진출 가능성이 실제로 확인된 가운데 후속 수주에 대한 기대감들이 존재한다. 우선 가시성 높은 건으로는 폴란드와의 공급의향서 체결 건이 실제 계약으로 구체화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외교 지원‧정치권 합의 방안 마련해야
정부는 이번 성과가 추가 원전 수출로 이어지도록 원전수출 전략을 고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8일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다시 원전 산업을 회복시켜서 우리 산업 전체가 큰 혜택을 보게 할 것”이라며 “앞으로 세계 원전 시장에 교두보를 마련해 우리 경제가 발전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도록 정부도 잘 관리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산업부는 신규 원전 수주와 함께 원전설비 수출을 병행해 종합 원전수출 강국으로 도약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50 원전산업 로드맵을 수립하고 원전산업 지원 특별법 제정을 추진해 관련 지원체계 강화에 나설 방침이다.
무엇보다 원전 수주 경쟁이 국가 대항전으로 확대되고 있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양국간 전방위적인 경제협력 확대를 추진하는 ‘경제협력 패키지’ 등 외교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산업부에 따르면 이번 체코 신규 원전 수주에서도 두산과 대우건설이 150여개 현지업체와 파트너쉽 행사를 열고 원전 건설을 한국 기업과 체코 기업이 함께 짓는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지난해 3월에는 한-체코 직항로가 재개됐고 올해 4월엔 무역투자촉진프레임워크에 합의하며 경제교류의 폭을 넓히기도 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체코 원전 수주를 계기로 유럽 원전 시장진출을 확대하려면 일관된 원자력 발전 진흥 정책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특히 원자력 정책이 탈원전과 원전 진흥이란 냉온탕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권의 합의가 필수라는 지적이다.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정범진 교수는 “여야가 안정적으로 원자력 산업을 육성할 정책을 제시하고 탈원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약속이 필요하다”라며 “외국에서는 우리나라가 다시 탈원전으로 후퇴할까 우려하는 반응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인 정 교수는 “원전 수출을 위해 산업부를 넘어 기획재정부, 외교부도 함께하는 범정부적인 지원체계도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건국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문영환 교수는 “독일이 탈원전을 추진했는데 오히려 석탄화력발전의 비중이 높아졌다. 그래서 유럽에서 탈원전으로는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라며 “원전은 탄소배출이 적으면서도 경제성도 좋고 전력 공급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어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원전 기술을 보유한 나라는 몇 개국에 불과하다. 그런데 정권교체 때마다 정책이 달라지면 원전 생태계가 죽을 수 있다”라며 “국제 기준에 부합하면서 원자력 에너지와 신재생 에너지의 밸런스를 맞추는 일관된 에너지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주요기획: [청년정책], [탈서울 인지방], [2023 전국동시조합장선거], [좋은주택 만들기], [건설산업 선진화], [농민권리를 외치다]
좌우명: 지난이진(知难而进) 다른기사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