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지난 광복절을 전후해 윤석열 정부의 역사 인식과 그와 관련된 정책에 많은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역사 인식과 관련된 정책은 단일한 기조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우선 윤석열 정부의 역사 인식은 인사 문제에서 나타났다. 일제강점기와 독립운동에 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대거 역사 관련 기관의 장(長)으로 임명됐다.(자세한 내용은 지난 회차 칼럼을 참조해 주시길 바란다) 이렇게 임명된 인사들 중 한 명인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국회에서 ‘1945년은 광복인가?’라는 말에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서울의 지하철에 전시돼 있던 독도 모형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광복절 새벽 공영방송인 KBS에서는 오페라 ‘나비부인’이 상영되었고, 그 바람에 기미가요가 송출됐다. 광복절 다음날 김태효 국가안보실장은 속칭 “중일마”, 즉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라고 발언했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의 역사 인식 수준은 광복절 기념사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번 광복절 기념식은 이종찬 광복회장과 야당이 불참한 반쪽짜리 기념식이었다. 더 어이없는 것은 매년 시행하던 독립기념관의 광복절 기념식이 취소됐다는 것이다. 정부 차원의 광복절 기념식은 이렇게 누더기가 됐다. 그리고 국민의힘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의 광복절 기념사와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가 큰 물의를 빚었다. 예를 들어서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1948년 건국” 발언으로 독립운동 단체와 시민들의 비판을 받았다. 국민의힘 시·도지사 협의회(회장 유정복 인천시장)에서는 광복절 이후 이종찬 광복회장의 사퇴를 요청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광복회 등 독립운동 관련 단체가 불참한 광복절 기념식에서 매우 위험한 광복절 기념사를 남겼다.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에서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에 대한 헌정,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과 재무장 움직임을 향한 경고는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오히려 “사이비 지식인”, “반국가세력” 운운하면서 “반자유세력”, “반통일세력”을 언급했다. 그리고 “북한 주민들이 자유 통일을 강력히 열망하도록 배려하고 변화시키는” 것이 광복절을 맞이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주장했다. 이미 한국의 문화와 경제 수준이 많이 퍼져있는 북한의 상황에서 뭘 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역대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에서 한반도 문제에 관한 언급이 나오기 마련인데,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기념사에 담긴 윤석열 대통령의 대북관은 매우 위험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광복절을 전후한 현 정부의 각종 인사, 대북 정책, 외교정책에 대해 비판해 왔다. 이번 회차 지면을 빌어서 필자는 조금 다른 얘기를 해보고 싶다. 방송에 출연한 평론가들은 현 정부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내년이 ‘한일수교재개 60주년’이라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일수교 60주년’이라고 말하지만, 정확히 얘기하면 조선 말 강화도조약 이후 맺어진 일본과의 근대적 외교 관계가 일제의 대한제국 강제병합으로 무효화됐고, 해방 이후 다시 체결된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이것을 전제로 한 비판의 대체적 논지는 다음과 같다.
한일수교재개 60주년을 기념해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과 과거 김대중-오부치(小渕恵三) 선언과 비슷한 수준의 외교적 성과를 내고자 그 장애물을 치우고 있다는 것이다. 일련의 인사, 독도조형물 철거 등은 모두 장애물을 치우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나아가서 이것의 최종 목표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일 삼각 동맹을 맺고,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중국 견제의 전위부대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한국 육군과 해병대가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대만에 모종의 사태가 있을 때 한국군이 대만에 투입될 수 있다.
이러한 예상대로라면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일본이 과거 한국의 식민지 지배와 각종 범죄를 반성하지 않고 끊임없이 재무장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일본과 군사동맹을 맺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 또한 중국은 한국의 경제 파트너이자 이웃 국가이며 한반도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할 상대국인데, 중국과의 사이가 지금보다 더 벌어진다면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침략전쟁을 부정한 헌법 정신에도 맞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우리의 혈맹이라는 이유만으로 큰 손해를 보면서 우리가 중국 견제의 전위부대가 된다는 것은 옳지도 않고 이득 될 것도 없다.
이렇게 심각한 문제지만 필자는 이러한 우려에서 내세워야 하는 더 중요한 명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일수교재개 60주년’보다 더 중요한 ‘광복 80주년’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시기고, 한반도 분단을 비롯해 다양한 사회적 모순을 가지고 온 일제강점기가 끝난 ‘광복 80주년’은 ‘한일수교재개 60주년’보다 훨씬 가치 있다. 또한 ‘광복 80주년’이라는 명분 앞에서, 평론가들의 예상은 현실적이고 우려스럽긴 하지만, 자극적이고 가치는 떨어진다. ‘광복 80주년’을 앞둔 상황에서 현 정부는 한일수교재개 60주년이 더 중요한가? 현 정부의 정책은 역사, 선조,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일이고 헌법 위반 사항도 많다는 국민의 분노와 지적이 쏟아진다. 현 정부는 퇴진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그럼에도 방송에서 이러한 내용으로 평론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평론가들의 머릿속에 ‘광복 80주년’은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해는 된다. 시청자나 청취자들에게 좀 더 와닿고 좀 더 현실적이고, 명분보다는 자극적인 내용이 더 잘 통하는 방송판에서 평론가들은 이런 말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방송에 더 많이 섭외하는 것이 ‘방송판의 생리’다. 그리고 필자는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이 광복 80주년을 한일수교재개 60주년보다 가치 없게 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평론가와 제작진이 형성한 ‘방송판의 생리’가 못내 아쉽다. 자극적인 것에만 몰두한다면, 거악과의 싸움에서 한계가 드러날 것이다. 필자는 2025년이 ‘한일수교재개 60주년’이라서가 아니라 ‘광복 80주년’이라 현 정부의 인사와 외교를 비판한다. 아무도 내년이 광복 80주년이라는 것을 주목하지 않고, 심지어 방송 출연자와 제작진 일부가 자극적인 소재만 좇는다는 것이 개탄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