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기상캐스터로 근무한 고(故) 오요안나. [사진제공=오요안나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갈무리]<br>
MBC 기상캐스터로 근무한 고(故) 오요안나. [사진제공=오요안나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갈무리]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고용노동부가 MBC 기상캐스터였던 고(故) 오요안나씨에 대해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다만 고인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지는 않는다며 근로기준법에 있는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내놨다. 이를 두고 유족을 비롯한 노동계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울분을 토했다.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는 19일 오 기상캐스터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의혹에 대해 서울지방고용노동청·서울서부지청에서 MBC를 상대로 진행한 특별근로감독을 진행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노동부는 고인에 대한 괴롭힘 행위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노동부는 “고인은 2021년 입사 후 선배들로부터 업무상 수시로 지도·조언을 받아왔으나 단순히 지도·조언의 차원을 넘어 사회 통념에 비춰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행위가 반복돼 왔다”고 지적했다.

괴롭힘으로 인정된 행위는 오 기상캐스터가 MBC를 대표해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이하 유퀴즈)에 출연하게 되자 한 선배 기상캐스터가 “네가 유퀴즈에 나가서 무슨 말을 할 수 있냐”며 공개적인 장소에서 비난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노동부는 해당 행위들이 비록 고인의 실수나 태도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이뤄졌으나 △고인이 기상캐스터를 시작한 지 불과 1~3년 이내의 사회 초년생인 점 △업무상 필요성을 넘어 개인적 감정에서 비롯된 불필요한 발언들이 수 차례 이어져 온 점 △지도·조언에 대해 선·후배 간 느끼는 정서적 간극이 큰 점 △고인이 주요 지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유서에 구체적 내용을 기재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 해당 행위들이 괴롭힘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MBC 기상캐스터가 각각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가진 프리랜서 신분임에도 당사자들 간에 선·후배 관계로 표현되는 명확한 서열과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조직문화 속에서 선·후배 간 갈등이 괴롭힘에 해당하는 행위들로 이어진 측면이 크다는 게 노동부의 설명이다.

다만 노동부는 참고인 조사, 고인의 SNS, 노트북 등 포렌식 분석 등을 바탕으로 기상캐스터의 업무처리 실태를 면밀히 조사한 결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같은 법 제76조의 2에 따른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결론 냈다.

노동부는 “MBC와 계약된 업무 외에는 문화방송 소속 근로자가 통상적으로 수행하는 행정, 당직, 행사 등 다른 업무를 하지 않았다”며 “일부 캐스터는 외부 기획사와 전속 계약을 하거나 엔터테인먼트사에 회원 가입을 하고 자유롭게 타 방송 출연이나 개인 영리 활동을 해왔으며 그 수입이 전액 기상캐스터에게 귀속됐다”고 말했다.

이어 “기상정보 확인, 원고 및 CG초안 작성 등 주된 업무수행에 구체적 지휘·감독 없이 기상캐스터가 상당한 재량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했다”며 “취업규칙이나 복무규정에 적용을 받지 않고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으며 방송 시작 2~3시간 전 자유롭게 출근하고 방송이 종료되면 별도 절차 없이 자유롭게 퇴근해 온 점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오 기상캐스터에게 별도로 정해진 휴가 절차가 없으며 기상캐스터 간 상호 조율을 통해 업무 대체 후 휴가를 실시하고 방송 출연 의상비를 기상캐스터가 직접 코디를 두고 지불한 점 등을 들어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노동부는 이번 근로감독을 통해 조직 전반에 만연한 불합리한 조직문화가 있었음을 파악했다. 감독 기간 중 MBC 전 직원을 대상으로 조직문화 전반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총 응답자 252명 중 115명(51%)이 “직장 내 괴롭힘 또는 성희롱 피해를 입은 사실이 있거나 주변 동료가 피해를 입은 사실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입직 경로에 따른 부당한 대우, 무시 등 차별을 받았다는 응답도 일부 있었다.

노동부는 “고인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이 적용되지는 않았으나 위와 같은 조직 전반의 불합리한 조직문화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고 조직문화 전반에 대한 개선계획서를 제출받고 그 이행 상황을 확인하는 등 적극 개선 지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19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본청 앞에서 진행된&nbsp;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결과 규탄 기자회견의 모습. [사진제공=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노동자성연구분과]
19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본청 앞에서 진행된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결과 규탄 기자회견의 모습. [사진제공=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노동자성연구분과]

이 같은 결과가 나오자 이날 유족, 시민사회단체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본청 앞에서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결과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엔딩크레딧, 직장갑질119,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노동자성연구분과 등은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나서야 할 노동부가 노동자의 권리를 짓밟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오 기상캐스터는 방송 3시간 전까지 고정적으로 출근하며 근로시간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었고 연휴에도 사측이 기상캐스터들의 근무 일정을 배분하며 휴일과 근무일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며 “기상캐스터들이 작성하는 원고는 MBC 정규직 노동자를 통한 구체적인 지휘와 감독을 반드시 거쳐야 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수십 년간 노동부나 법원의 여러 판례를 거쳐 확립된 노동자성 판단 기준에 엄연히 해당하고 있었다”며 “그러나 노동부는 기상캐스터의 업무 도처에 산재한 노동자성의 요소를 전부 무시하는 비합리적인 결론을 내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 기상캐스터 어머니 장연미씨는 “노동부는 MBC가 시키는 대로 일했는데 노동자가 아니라고 한다”며 “노동부는 MBC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이런 결정을 한 것이냐. 유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결정을 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제가 그만두라고 했는데도 (오 기상캐스터가) 꿈이 있어서 끝까지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며 “그런데도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다. 노동자를 위한다는 노동부가 이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마당에 MBC가 책임지겠냐”고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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