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화력발전소서 비정규직 노동자 또 사망
고 김용균 사건 이후 여러 노력에도 참사 반복
노동계 “사측 2인 1조 근무 등 호소 듣지 않아”
서부발전·한전KPS 사과…“재발 방지에 최선”

지난 3일 충남 태안 한국서부발전 본사 앞에서 진행된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입장발표 기자회견’의 모습. [사진제공=태안화력 故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
지난 3일 충남 태안 한국서부발전 본사 앞에서 진행된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입장발표 기자회견’의 모습. [사진제공=태안화력 故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또 목숨을 잃었다. 이에 노동계와 유족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경찰은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4일 경찰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지난 2일 오후 2시 40분경 충남 태안군 원북면에 위치한 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내 한전KPS 기계공작실에서 협력업체 소속 50대 근로자 故(고) 김충현씨가 공업용 선반 기계 근처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김씨는 평소 선발을 통해 발전설비의 부품을 가공하는 업무를 맡아왔다. 사건 발생 당시 선반이 작동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방재센터가 현장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사고를 당한 김씨를 발견하고 이를 신고했다.

김씨는 한전KPS 하청업체의 비정규직으로, 실제 태안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서부발전의 2차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였다. 사고가 일어난 곳은 서부발전이 한전KPS에 임차한 공간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사고 당시 현장 폐쇄회로(CC)TV를 바탕으로 김씨가 절삭기계 작업을 하던 중 회전하는 작업물에 맞아 숨진 것으로 보고 있는 상황이다. 사고 당시 김씨는 정비에 사용하는 길이 40㎝가량, 지름 7~8㎝ 쇠막대를 가공 중이었다.

이번 사고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가 숨진 사고가 일어난 지 6년여 만에 발생하면서 논란이 됐다. 김용균씨의 사망을 계기로 안타까운 사고를 막기 위해 일명 김용균법인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제정하는 등 노력이 이어졌음에도 비슷한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목소리다.

이에 노동계는 아직까지 위험의 외주화가 여전하다며 비판하고 있다. 앞서 김용균씨는 2018년 12월 11일 오전 1시께 태안화력 9·10호기 발전소에서 근무하던 중 컨베이어벨트 이상을 확인하다 기계에 몸이 끼여 목숨을 잃었다.

이에 대해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와 태안화력 故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등은 전날 진행된 서부발전 본사 앞에서 진행된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또 한 명의 김용균,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김충현씨가 일하다 죽었다”며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외쳤던 ‘일하다 죽지 않고 싶다’, ‘안전인력 충원하라’, ‘2인 1조 근무 보장하라’, ‘발전소폐쇄에 따른 대책을 마련하라’라는 목소리를 아무도 듣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이어 “비상정지 장치나 발판 브레이크가 있었지만 2인 1조가 아닌 단독으로 일했기에 비상정지 버튼을 눌러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며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회사 측은 고인이 ‘임의로 작업’했다며 책임을 고인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김용균 노동자 사망 사고 당시 ‘왜 그곳에 있었는지 모르겠다’라고 하던 원청의 발언과 똑같다”고 규탄했다.

사측, 정부 등을 향해 요구사항을 발표하기도 했다. 요구사항에는 △철저한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유족과 노조 참여 진상조사위원회 구성, 관련 기업(서부발전, 한전KPS, 한국파워오엔엠)의 공식 사과 및 배상, 동료 노동자에 대한 심리치료 및 생계대책 마련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화: 한전KPS 하청 노동자의 직접고용 정규직화, 연료·환경설비 운전 및 정비 분야의 직접고용 이행 △안전 인력 충원: 위험업무의 2인 1조 원칙 법제화, 발전소 폐쇄 전까지 현장 인력 충원 △발전소 폐쇄 관련 대책 마련: 전체 특별근로감독 실시, 총고용 보장, 공공 재생에너지 전환 확대 등이 포함됐다.

지난해 12월 6일 충남 태안 한국서부발전 앞에서 고 김용균씨 추모 6주기를 나흘 앞두고 김용균재단,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등 관계자들이 추모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해 12월 6일 충남 태안 한국서부발전 앞에서 고 김용균씨 추모 6주기를 나흘 앞두고 김용균재단,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등 관계자들이 추모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이번 사고와 관련해 아직 입건된 사람은 없다. 경찰은 안전 수칙 등의 준수 여부를 파악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고용노동부 역시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있는 상태다. 

서부발전은 사고 당일 공식 입장을 내고 “한전KPS 종합정비동에서 발생한 사고로 인해 소중한 생명이 희생된 데 대해 깊은 애도의 말씀을 드리며 고인과 유가족분들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며 “현재 정확한 원인에 대해 관계기관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한전KPS와 함께 이에 성실히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사고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재발 방지를 위해 필요한 개선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한전KPS도 같은 날 별도 설명자료를 통해 “(김씨가 수행한 작업은) 작업 오더에 포함되지 않았던 사항으로 사고의 정확한 경위를 파악 중에 있다”며 “다만 저희 기관에서는 명확한 사고원인 파악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조사 기관의 사고원인 조사에 성실히 임할 예정”이라며 “향후 조사 결과에 따라 재발방지 대책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덧붙였다.

이후 4일 공식 홈페이지에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게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한전KPS는 깊은 슬픔 속에서 고인의 삶을 기리며 유사사고 재발방지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김용균씨의 어머니이자 김용균재단 김미숙 대표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7년 전 아들 김용균의 빈소 옆에 다시 김충현씨의 빈소가 차려진 모습을 보고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며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제가 겪었던 경험과 극복했던 방법을 전해줬지만 그조차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2인 1조 작업 원칙이 왜 아직도 지켜지지 않는지, 언제까지 사고의 책임을 노동자 개인에게 돌리는 거짓말로 사건을 덮으려 할 것인지 묻고 싶다”며 “앞으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반드시 강화돼 모든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양질의 일자리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책위는 고인을 추모하고 책임자 처벌, 직접고용, 인력충원 등을 요구하는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추모문화제’를 이날부터 오는 5일까지 양일간 오후 7시 태안 버스터미널 앞 도로변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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