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이 특별한 이야기였던 시절이 있었다. 텔레비전 뉴스나 외국 영화에서나 접하던 단어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중·고등학생이 필로폰에 손을 대고, 유명 연예인이 마약으로 뉴스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세상이 됐다. 우리는 지금 ‘마약이 일상처럼 스며든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상황이 됐을까. 마약의 확산은 단지 범죄자 몇 명의 문제가 아니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외로움, 공허함, 그리고 통제되지 않는 욕망의 그림자가 보인다. 마약은 단지 환각이 아니라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인간의 마음이 투사된 거울이다.
그렇다면 마약이 우리 사회에 퍼지고 있는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삶의 고통과 허기를 견디는 방식으로 마약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현대인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 몸과 마음을 갈아 넣는다. 경쟁과 비교, 고립된 인간관계는 정신적 공허함을 남기고, 마약은 그 공허함을 잠시라도 채워주는 유혹이 된다.
둘째, 마약의 접근성은 과거보다 훨씬 쉬워졌다. 이제 마약은 SNS, 텔레그램, 다크웹 등을 통해 청소년들에게도 손쉽게 닿을 수 있다. 최근에는 ‘신종 마약’이라는 이름으로 카페, 사우나, 파티룸에서도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있으며, 포장 또한 젤리, 음료, 향수, 전자담배 등의 형태로 위장돼 사람들은 거부감 없이 자신도 모르게 중독에 빠진다. 거래방식 또한 ‘던지기’ 수법 등을 통해 매우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셋째, 우리 사회는 마약 문제에 대해 ‘처벌’에만 집중하고 있다. 마약은 범죄이자 동시에 질병이다. 그러나 여전히 처벌 중심의 시선이 지배적이고, 회복을 중심에 둔 시선은 매우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마약을 끊고 돌아오고 싶어도 손 내밀 곳이 거의 없다.
넷째, 마약은 손쉬운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국내 유통되는 마약 대부분은 해외에서 밀수돼 들어온다. 이 과정에서 ‘고소득 알바’로 위장돼 불법 유통되고 있으며, 이러한 행위가 명백한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많은 이들이 빠져든다.
대학가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최근 마약 및 중독 예방센터 DAPCOC(답콕)의 박상규 사무총장은 충격적인 사실을 전했다. 대학가에는 ‘도파민 파티’라는 모임이 존재하며, 이는 단순한 사교 파티가 아니라 실제 마약류 또는 유사 중독 물질을 사용하며 쾌감의 정점을 추구하는 모임이다. 2024년 SKY대학 재학생들이 주축이 된 ‘명문대 마약 동아리 사건’은 마약이 청년들에게 얼마나 가까이 스며들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특정 집단의 일탈이 아니라, 청년 세대가 느끼는 고립, 압박, 탈출 욕망이 집단화된 위험 징후다.
대검찰청 발표에 따르면, 대한민국 인구 중 약 300만명이 마약에 노출돼 있으며, 그중 약 60%가 청소년 및 청년층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대한민국 전역에 마약 전문 치료 병원이 단 5곳뿐이라는 사실이다. 예방과 재활 어느 하나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이제는 예방에서 회복까지를 연결하는 통합 모델이 시급하다.
마약은 단지 개인의 인생만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다. 그 여파는 가정 해체, 학교 중단, 직장 상실, 범죄로의 전락 등으로 확산되며 사회적 신뢰를 갉아먹는다. 한 사람이 무너질 때, 그 사람을 중심으로 한 삶의 원이 함께 무너지는 도미노 현상이 벌어진다. 더 큰 문제는 마약을 죄의식 없이 소비하는 문화가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두 번쯤은 괜찮지 않을까’, ‘요즘 다들 한다는데’ 하는 생각이 마약의 문턱을 점점 낮추고 있다. 우리는 점점 죄책감 없는 사회, 감각만을 좇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예방교육의 방식과 메시지를 바꿔야 한다. 단순히 ‘금지’라는 언어가 아니라, 마약이 왜 위험한지, 그것이 어떻게 사람의 삶을 파괴하는지 체험과 이야기 중심으로 전달해야 한다. 정서적 공감 없는 교육은 공허할 뿐이다.
둘째, 재활과 복귀 시스템이 절실하다. 실패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사회, 다시 설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 그들을 낙인찍는 것이 아니라 질병으로서의 중독을 치료하고 돌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셋째, 따뜻한 연결의 사회적 관계망이 회복돼야 한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존재하며, 연결된 사람은 무너지지 않는다. 고립된 사람은 결국 무언가에 기대고 싶어진다. 우리는 더 많은 ‘마음의 연결’을 만들어야 한다.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가정폭력과 방임 속에서 자랐고 십대 중반에 마약을 접했다. 여러 번 교도소를 드나들며 절망 속에 살아가던 그에게 한 상담사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단지 길을 잃은 거야. 다시 찾으면 돼.” 그날 이후 그는 달라졌고 지금은 청소년 마약 예방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사람은 말 한마디, 관계 하나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예방은 정책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따뜻한 말에서 시작된다.
마약이 만연한 세상, 이는 단순히 법의 문제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얼마나 사람을 이해하고 품어주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가를 묻는 질문이다. 이제는 개인, 공동체, 국가 모두가 함께 나서야 한다. 예방부터 재활까지 이어지는 통합 대응, 사회적 낙인을 넘는 포용, 그리고 사람을 다시 세워주는 연결의 힘이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관심과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돌아오는 길이 될 수 있다. 마약과 싸우는 것은 제도만이 아니라 결국 사람의 따뜻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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