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겉보다 중요한 건 작동 방식이다. 정치는 말과 행동으로 움직이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고유한 ‘문법’이 존재한다. 법과 제도의 언어, 권력의 계산, 대중의 심리, 미디어 전략과 정치 언어 등이 어떤 타이밍에 움직이며, 무엇을 감추고 드러내는지는 단순한 논쟁 너머의 작동 규칙을 따른다.

〈정치문법〉은 한국 정치의 핵심 이슈와 정국 전개를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닌 정치 구조, 전략, 심리, 제도 작동 방식의 측면에서 분석해본다. 정치를 이해하고 싶다면, 정치의 문법부터 파악하라.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과 윤희숙 혁신위원장이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긴급의원총회에서 대화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br>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과 윤희숙 혁신위원장이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긴급의원총회에서 대화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애경 발행인】정치는 숫자와 말, 명분과 감정이 얽힌 종합예술이다. 특히 혁신은 정치의 정당성을 검증받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지금 국민의힘에서 벌어지는 혁신위-지도부-중진 간 내홍은 단순한 인적쇄신을 둘러싼 내부 다툼이 아니라, 보수 정치가 과연 변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다구리’로 불린 혁신안, 극한충돌로 치달아

“다구리(몰매)였습니다.”

윤희숙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자신이 발표한 쇄신안에 대한 당 지도부의 반응을 요약한 한마디는, 이 혁신안이 얼마나 격렬한 반발을 불러왔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여러 진통 끝에 출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회와 지도부, 그리고 윤석열 탄핵에 반대했던 몇몇 중진 의원들 간의 내홍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윤희숙 혁신위원장은 지난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송언석 비대위원장과 나경원, 윤상현, 장동혁 의원을 ‘1차 쇄신 대상’으로 공개 지목하며 사실상 불출마를 요구했다. 하루 뒤 SNS를 통해 “2004년 한나라당이 ‘차떼기 사건’으로 존폐 위기에 몰렸을 때, 중진 37명이 불출마로 당을 살렸다”며 중진 정치인의 책임 있는 ‘퇴장’을 촉구했다.

윤 위원장의 이 같은 혁신안에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싹 갈아엎는 느낌으로 대대적인 혁신을 하지 않으면 우리 당은 살아남기 어렵다”며 지지했다.

윤희숙 혁신위에 앞서, 지난 2일 혁신위원장에 임명되었다가 불과 5일 만인 7일에 전격 사퇴한 안철수 의원 역시 인적쇄신을 혁신안으로 내세웠다. 당시 안철수 의원은 권영세 전 비대위원장과 권성동 전 원내대표의 출당 등 당내 인적 쇄신을 요구했다.

안 의원은 “인적 청산에 대한 부분이 먼저 행동으로 보여야 혁신의 진정성이 의심받지 않고, 우리 당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송언석 비대위원장은 합의되지 않은 혁신안 구성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안 의원이 사퇴한 후 혁신위원장에 임명된 윤희숙 전 의원은 1차 쇄신 대상에 안 의원이 직격한 이른바 쌍권(권영세·권성동)은 포함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윤 위원장은 1차 대상은 당장 깊이 연관된 사람만 명시했다며 추가 쇄신안을 예고하기도 했다.

윤 위원장이 말한 인적쇄신은, 단지 ‘몇몇 의원의 거취’를 넘는 정치적 제안이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계엄과 탄핵 이후 위기를 맞고 있는 ‘보수당의 생존 조건’으로서 과거 기득권 세력과의 단절, 젊은 정치 공간의 확보, 정체성 재정립을 내세우고 있다. 그의 ‘명분’은 혁신이지만, ‘방식’은 정면충돌에 가까운 대수술이다.

“우리가 주적인가?”…정치언어로 본 반발의 문법

반면 윤 위원장의 쇄신 대상으로 지목받은 중진 의원들의 반응은 단순한 불쾌감 이상의 정치적 언어를 쏟아냈다.

나경원 의원은 “국민의힘의 주적이 민주당이 아니라 동료 의원과 지지층이냐. 민주당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인사들을 불출마시켜도 내란당 프레임은 없어지지 않는다”며 윤 위원장의 혁신안에 대해 “소신 없는 자기부정이며 당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행위다”고 반발했다. 여기엔 보수 정당 내부에서 반복돼온 ‘내부총질’ 프레임과, 진영 간 정체성 경계 허물기에 대한 경계심이 담겨 있다.

윤상현 의원은 “쓴소리를 했다고 사상 검증하느냐”고 반문했고, 장동혁 의원은 “자기 소신으로 탄핵을 반대한 게 죄냐”고 반문했다. 이들의 공통된 방어 기제는 ‘소신’과 ‘정당 내 다양성’이다. 그러나 이 반박이 당의 정체성 위기를 해소하지는 못한다. 윤 위원장의 직설은 일종의 ‘정치 시험지’였고, 중진들의 응답은 과거 정치 문법에 머물러 있다.

전한길 강사가 지난 3월 27일 경남 거제시 고현매립지에서 열린 국민의힘 박환기 거제시장 후보 집중유세에서 지지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br>
전한길 강사가 지난 3월 27일 경남 거제시 고현매립지에서 열린 국민의힘 박환기 거제시장 후보 집중유세에서 지지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혼란의 극대화…‘극우 이미지’ 전한길 입당

상황을 더욱 꼬이게 만든 건 극우 성향의 역사 유튜버 전한길씨의 입당이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부정선거 주장을 퍼뜨려온 인물로, ‘윤 어게인’ 깃발을 들고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혁신위원장이 ‘윤과의 단절’을 외치는 와중에, ‘윤의 복권’을 외치는 인사가 입당한 셈이다.

전씨는 지난 14일 ‘윤 어게인(YOON Again)’ 인사들이 주축이 된 리셋코리아 국민운동본부 발대식에 참석해 “국민의힘 당원 가입을 했다”며 “윤과 단절해야 된다, 내란과 단절해야 된다는 것은 누구의 주장이냐? 이재명과 민주당의 주장 아니냐?”며 국민의힘이 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김용태 전 비대위원은 “즉각 출당하라”고 주장했고, 한동훈 전 대표도 “국민이 어떻게 보겠냐”며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당 지도부에서는 입당을 거부할 제도가 없다는 입장이다. 

송 위원장은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전한길 씨가 지난 8일 서울시당에 본명으로 온라인 입당하였음을 어제 알게 됐다”며 “원칙적으로 제명이나 탈당 전력이 없다면 일반 개인의 입당에 자격심사는 의무사항도 아니고 일일이 확인하기도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 개인의 입당에 호들갑 떨 것 없다”며 “국민의힘의 자정 능력을 믿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윤 위원장도 이날 “(전씨의 입당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그런데 개인의 목소리를 크게 증폭하는 것은 정치인의 몫이고, 그 정치인들의 행위가 우리 당을 더 위태롭게 만든다”고 우려했다.

이는 국민의힘이 정체성의 양극단 사이에서 길을 잃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혁신과 보수의 극단이 동시에 당 안에서 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혁신은 전쟁이 아니라 설득이다

윤 위원장의 혁신안은 사실상 ‘기득권 청산론’이다. 그러나 당 지도부와 일부 의원은 이를 ‘숙청’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지점에서 충돌은 불가피하다. 혁신이 되기 위해선 누가 누구를 자르는가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미래를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공감이 전제돼야 한다.

윤 위원장의 발언이 지나치게 전투적이고 일방통행처럼 들린다면, 당 지도부의 반응은 지나치게 수동적이고 방어적이다. 어느 쪽도 진정한 정치적 문법, 즉 ‘합리적 설득과 구조적 전환’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금 가장 치열한 ‘정체성 투쟁’을 벌이고 있다. 외부의 압박보다 내부의 분열이 더 큰 위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혁신위는 ‘과거의 청산’을 외치고, 지도부는 ‘현실의 방어’를 택하고 있다. 정치의 본질이 ‘갈등의 해소’라면, 지금 국민의힘에 필요한 건 특정인의 퇴진을 넘어선 구조적 변혁과 성찰이다.

윤 위원장이 제시한 길이 변혁과 성찰의 진정한 신호탄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내분의 불씨만 지피다 사라질지 두고볼 일이다.

하지만 혁신은 적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길에 동행할 이들을 설득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윤 위원장이 진정한 혁신을 말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중진을 제거하는 ‘리스트’가 아니라, 보수의 내일을 제안하는 ‘비전’이어야 한다.

정치는 문법을 따른다. 지금 필요한 건 더 강한 언성이 아니라 더 정교한 문법이다. 국민의힘이 해체되지 않으려면, 먼저 그 문법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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