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겉보다 중요한 건 작동 방식이다. 정치는 말과 행동으로 움직이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고유한 ‘문법’이 존재한다. 법과 제도의 언어, 권력의 계산, 대중의 심리, 미디어 전략과 정치 언어 등이 어떤 타이밍에 움직이며, 무엇을 감추고 드러내는지는 단순한 논쟁 너머의 작동 규칙을 따른다.

〈정치문법〉은 한국 정치의 핵심 이슈와 정국 전개를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닌 정치 구조, 전략, 심리, 제도 작동 방식의 측면에서 분석해본다. 정치를 이해하고 싶다면, 정치의 문법부터 파악하라.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임명장 및 위촉장 수여식을 마치고 참석자들과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nbsp;<br>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임명장 및 위촉장 수여식을 마치고 참석자들과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애경 발행인】지난 한달 동안 정치권은 강선우 여성가족부장관 후보자 임명을 두고 소란스러웠다. 지난 23일 강 후보자가 전격 사퇴하면서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여전히 정치적 후폭풍은 현재진행형이다.

강 후보자가 자진사퇴를 한 배경에는 여론의 압력이 가장 크게 차지했다. 대통령실은 인사청문보고서 재송부를 요청하며 임명 강행 메시지를 보냈고, 강 후보자 본인도 전문성을 내세워 끝까지 버티려는 의지를 보였으나, 결국 국민의 눈높이를 넘지 못했다.

이번 사퇴는 단순한 개인의 결단이 아니라, 이재명 정부의 인사 시스템 한계를 드러낸 사례다. ‘명분’에만 집중하고 ‘논란거리’를 간과한 검증 시스템, 그리고 정치적 대응의 무리수는 결국 이재명 정부와 강 후보자를 옹호했던 더불어민주당에 부정적 인상을 남겼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도덕성 붕괴’ 프레임을 전방위로 확산하며 연일 공세를 펼치고 있다.

&nbsp;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의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br>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의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강 후보자의 ‘갑질’ 의혹에서 사퇴까지

강선우 후보자에 대한 논란은 지난 14일 인사청문회에서 본격화됐다. 청문회에서 여러 야당 의원들은 강 후보자가 국회의원 시절 다수의 보좌진과 갈등을 빚었으며, 부당한 업무 지시와 언어폭력 등 이른바 ‘갑질’ 의혹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일부 전직 보좌진의 진술에 따르면, 강 후보자는 퇴근 후 단체 메시지를 통해 잦은 보고를 요구하고, 공개적인 질책과 강압적 언행을 일삼았다고 전해졌다.

이후 TV조선을 통해 강 후보자가 성균관대 겸임교수 시절, 대선 활동으로 수차례 무단 결강했다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되며 비판 여론은 급속히 확산됐다. 당시 강 후보자는 별도의 대체 강의 조치나 수업 조율 없이 장기간 결강한 것으로 보도됐고, 이에 대해 학교 측도 정확한 출결기록과 조치 내역을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22일 청문보고서 재송부 요청을 하며 임명 강행을 염두에 둔 듯 보였다. 여당 지도부 역시 “보좌진과 의원 관계는 일반 직장과 다르다”거나 “갑질 여부는 주관적”이라는 발언으로 여론을 무리하게 방어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여론의 반발을 키웠고, 여당 내부에서도 “정무적 부담이 크다”는 우려가 커지기 시작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23일 오후 2시경 대통령실 김현지 총무비서관이 강 후보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진사퇴를 권유했고, 30분 뒤 강 후보자는 강훈식 비서실장을 통해 대통령에게 사퇴 의사를 전달했다. 형식상 자진사퇴였지만, 사실상 대통령실의 판단과 조율로 이뤄진 정무적 결단이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사퇴에 이르는 이번 흐름은 결국 구조적인 문제를 보여준다. 단순한 인사 실패가 아니라, 인사 검증 시스템의 부재와 정치적 판단 미숙, 대응 전략의 오류가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였다.

강유정 대변인이 지난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사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br>
강유정 대변인이 지난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사퇴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반복되는 인사 실패, ‘명분’만 본 결과

이번 인사 실패는 단지 강선우 후보자 한 명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전날 사퇴한 강준욱 전 국민통합비서관의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강준욱 전 비서관은 과거 SNS를 통해 12·3 내란을 정당화하고 극우적 견해를 공공연히 드러낸 인물임에도 ‘국민 통합’ 명분으로 임명됐다. 이 역시 ‘명분’에만 몰두하고 ‘논란거리’를 검토하지 않은 검증의 결과였다.

이 같은 흐름은 이재명 대통령이 인사 검증을 성남시장 시절 측근들에게 의존해 온 구조와도 연결된다. 이재명 정부는 인수위 없이 출범했고, 초반부터 민정수석실 폐지 등으로 인사 검증 기능이 약화돼 있었다. 대신 성남시장 시절부터 함께해 온 일부 측근들이 인사 추천과 검증을 사실상 전담하는 구조가 지속돼 왔다.

이처럼 검증 시스템이 부족한 상황에서 ‘통합’, ‘여성 국무위원’ 등 명분에만 집중하는 것은 오히려 정권의 도덕성과 기준을 흔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따라서 정당성이나 철학의 다양성 확보라는 ‘명분’ 중심이 아닌 ‘논란거리’를 구조적으로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시스템 없는 인사는 실패

역대 민주정부는 인사수석실 또는 인사검증위, 공직기강비서관실을 통한 제도 기반의 인사 검증을 지향했다. 반면 보수정부는 자의적·비공식적 경로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다. 민주정부에서조차 인사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스템의 작동 여부에 따라 상식과 신뢰의 기반은 크게 달라졌다.

그에 비해 이재명 정부는 인수위원회 없는 출범, 민정수석실 부재, 측근 의존형 검증 등 현재까지도 인사 구조가 임시방편에 가깝다. 인사에 대한 최소한의 제도화 없이는, 정권의 인사 기준이 객관성을 잃고 반복되는 실패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제 이재명 정부는 민정수석 부재와 인수위 없이 출범한 한계를 극복할 제도적 인사검증 시스템을 서둘러 정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후 수습만 반복하는 구조가 될 것이다.

'인사 실패'를 넘어서야 할 과제

강선우 후보자의 사퇴는 정치적으로는 수습의 성격이지만, 제도와 시스템이 없으면 또 다른 실패가 반복될 수 있다. ‘여성가족부를 여성가족부답게’ 운영할 후임자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야 할 것은 인사 시스템의 재정비와 갑질 등 논란에 대한 철저한 검증 등 구조에 대한 제도적 해소다.

정치는 결국 ‘명분’보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적임자를 더 예민하게 감지해야 하는 기술이다. 무엇을 놓쳤는지, 왜 실패했는지를 돌아볼 수 있을 때, 다음 인사는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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