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압박하는 ‘망 사용료’…국내외 업계 갈등 심화
“비관세 장벽 논란 지속될 것…규제 근거 재확보해야”

지난해 4분기 국내 인터넷 트래픽 점유율에서 구글이 31.2%를 차지했다. 유튜브의 국내 이용률은 93.2%에 달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4분기 국내 인터넷 트래픽 점유율에서 구글이 31.2%를 차지했다. 유튜브의 국내 이용률은 93.2%에 달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투데이신문 최주원 기자】 미국이 한미 통상협상에서 디지털 무역장벽으로 규정해온 ‘망 사용료’ 문제가 향후 한국의 디지털 정책 방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국내 인터넷 트래픽의 40% 이상을 미국 기업들이 국내 통신망을 이용하는 구조를 둘러싼 갈등이 지속되면서 관련 제도 개선을 위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6일 업계에 따르면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달 31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온라인플랫폼법과 인공지능(AI) 반도체 구매 요구는 이번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당초 주요 쟁점으로 거론됐던 디지털 규제 이슈가 협상 테이블에서 빠진 셈이다.

그럼에도 ‘망 이용 대가’ 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쟁점으로 남아있다. 넷플릭스, 유튜브, 메타 등 글로벌 콘텐츠 제공업체 대부분이 미국 기업인 만큼 미국 정부는 이들에게 추가 부담을 지우는 규제를 비관세 장벽으로 규정하며 폐지 압박을 가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EU와의 협상에서도 미국은 망 이용료 철폐를 핵심 요구사항으로 내세웠다.

한국 역시 미국과 관세 인하에는 합의했으나 망 이용료와 온라인플랫폼법 등 민감한 현안들이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어 협상 종료를 낙관하기 어렵다. 국회 안팎에서는 외국 기업이 국내 인터넷망을 무상으로 활용하면서 정작 국민이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를 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회 과방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우영 의원실 관계자는 “정치적·외교적 접근이 국내 인터넷 이용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망 이용 관련 제도 개선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며 “각계 전문가와 이용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디지털 정책의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국내에서는 이미 SK브로드밴드, KT, LG유플러스 등 통신사와 글로벌 콘텐츠 업체 간 갈등이 장기화되고 있다. 통신사들은 CP 측의 초고화질 영상 확산으로 트래픽이 폭증하고 있어 네트워크 투자 비용을 콘텐츠 업체도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5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한·미 통상현안 전문가 좌담회’에서 피터슨 국제경제정책연구소(PIIE) 제프리 쇼트(Jeffrey J.Schott) 선임 펠로우와 화상연결을 통해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지난 5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한·미 통상현안 전문가 좌담회’에서 피터슨 국제경제정책연구소(PIIE) 제프리 쇼트(Jeffrey J.Schott) 선임 펠로우와 화상연결을 통해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과기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4분기 국내 인터넷 트래픽 점유율에서 구글이 31.2%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넷플릭스 4.9%, 메타 4.3%가 뒤를 이은 반면 국내 최대 업체인 네이버는 4.9%에 그쳤다. 유튜브의 국내 이용률은 93.2%에 달해 해외 사업자의 시장 지배력이 절대적임을 보여준다.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가 법정 분쟁 끝에 제휴 체결로 일단락된 사례도 있지만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법률은 여전히 공백 상태다. 국회에 ‘망 이용계약 공정화법’ 등 관련 법안이 계류 중이지만 통상 마찰 우려로 진척이 더딘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망 중립성이라는 개념이 글로벌 콘텐츠 기업들의 책임 회피를 위한 정치적 수사로 악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국내 망을 이용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구조로 인해 통신사의 망 투자 동력이 위축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성균관대 글로벌융복합콘텐츠연구소 이종명 교수는 “공정한 비용 부담 원칙 정립을 위해 망 이용 대가 산정의 투명성 확보와 분쟁 조정 메커니즘 제도화를 통해 망 이용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이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책임 있는 성장과 이용자 중심의 질서 재편을 위한 필수적 조치”라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5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한·미 통상현안 전문가 좌담회’에서는 이번 협상 결과에 따른 영향과 향후 대응방향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 통상 전문가들은 비관세 장벽 문제가 트럼프 정부는 물론 향후 어떤 정부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재민 원장은 “온라인 플랫폼 현안을 포함한 비관세 장벽 문제는 앞으로도 한미 논의에서 계속 불거질 것”이라며 “비관세 장벽의 상당 부분은 적극적인 설명과 오해 불식을 통해 해결할 수 있지만 일부는 우리가 전향적으로 검토해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어 이 원장은 “한국 정부 규제 조치들의 과학적 근거를 재확보하고 합리성을 재점검한 후 조정·철폐·설명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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