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 폭염과 몰아치는 홍수·산불…‘재난의 상시화’ 현실로
보험사, 기후재난 보상과 고탄소 투자라는 모순적 역할 직면
“예방 중심 대응과 취약계층 보장 강화로 사회 회복력 높여야”

산불과 폭우, 폭염이 한 계절 안에 연쇄적으로 몰아치는 ‘기후채찍질’은 더 이상 미래의 경고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반도 곳곳에서 기후위기의 대가, 즉 ‘기후청구서’가 혹독하게 청구되고 있다.

10여 년 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보고서는 이미 이러한 복합재난의 위험을 구체적으로 경고했다. 폭염과 가뭄, 국지성 폭우가 짧은 주기로 반복되며 산불·홍수·산사태로 이어질 수 있고,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 사이 정책과 인프라 대응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실제 피해는 매년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특히 농촌과 지방 지역은 반복되는 재난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돼 있다. 재난 피해를 신속히 복구하고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는 데 핵심적인 보험 시스템조차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농작물재해보험과 풍수해보험 등 일부 안전망이 존재하지만, 가입률과 보장 범위는 제한적이며 취약계층 지원도 여전히 미흡하다.

이에 본 시리즈는 복합재난의 현장 피해 실태와 정책 대응의 한계, 그리고 해외 사례를 통해 보험을 포함한 통합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응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심층적으로 조명하며, 기후채찍질 시대에 우리 사회가 반드시 갖춰야 할 생존 전략을 모색한다. 

지난달 21일 오전 기록적인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충남 당진시 전통시장 현장 ⓒ투데이신문<br>
지난달 21일 오전 기록적인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충남 당진시 전통시장 현장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2025년 7월은 서울에서 118년 만에 가장 뜨거운 여름으로 기록됐다. 낮 최고기온이 35도를 훌쩍 넘기고, 공기는 습기로 눅눅하게 가라앉았다. 열대야가 스무 날 넘게 이어지는 동안, 남부지방은 기록적인 폭우로 농경지와 주택이 물에 잠겼다. 피해 복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폭염이 덮쳤고, 산불과 태풍이 엇갈리며 한 해가 재난 속으로 흘러갔다. 이른바 ‘재난의 상시화’가 현실화됐다.

과거엔 이런 재난이 ‘예측 불가능한 천재지변’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다르다. 국제기구와 기상학계, IPCC 6차 보고서는 폭염·홍수·산불의 빈발이 인류의 산업 활동과 온실가스 배출에 기인한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즉, 기후위기의 전반적 경향은 일정 부분 예측 가능하지만, 개별 사건의 발생 시기·규모·강도까지 100% 맞히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예상 가능한 위험’과 ‘순간의 불확실성’이 공존하는 시대가 된 셈이다.

‘재난 상시화’ 시대…시험대 오른 보험업계

그런 상황에서도 국내 보험업계는 여전히 과거 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폭염·홍수·산불 등 재난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보험 상품 설계와 대응 체계가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보험사는 오히려 고탄소 산업에 투자하며 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14일 기상청 기후정보포털 자료에 따르면, 한반도 평균기온은 지난 100년간 1.6℃ 상승했다. 특히 여름철 폭염일수는 1973년 7.7일에서 2018년 31.4일로 약 4배 증가했고, 겨울철 한파일수는 같은 기간 22.5일에서 6.6일로 급감했다. 재난이 더 이상 ‘이상기후’가 아닌 ‘신기후체제’의 일상임을 보여준다.

기후재난은 단발적 사고가 아니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자연재해 피해액만 9582억원, 인명 피해는 140명을 기록했다. 그러나 보험사들은 여전히 과거 30~50년 데이터를 기반으로 상품을 설계한다. 이로 인해 보험금 지급이 거부되는 사례가 많아지고, 피해자의 부담으로 전가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상시화된 기후재해 시대에 대비하려면 기초 체력부터 강화해야 한다”며 “농업재해보험 가입률과 실효성이 낮아 사회안전망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농작물재해보험 가입률은 전체 농업경영체 중 40% 수준에 불과했고, 피해 발생 시 5곳 중 1곳은 보험금 지급이 거부됐다. 풍수해보험의 전국 평균 가입률은 23.5%에 불과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보장만 문제?…보험사, 기후위기 가속화에도 ‘한몫’

보험사는 기후재난 피해를 보상하는 동시에, 고탄소 산업 투자자로서 위기의 원인을 키우는 모순적 구조 가운데 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에 따르면, 10대 손해보험사의 화석연료 보험 인수액은 2024년 6월 기준 약 183조원으로, 반년 사이 43조원 증가했다. 삼성화재 59.4조, 현대해상 35.8조, DB손해보험 23.1조, KB손해보험 18.2조 순이다.

반면 재생에너지 관련 보험 지원은 24.8조원에 그쳐 전체 대비 13.6% 수준에 불과하다. 투자 측면에서도 총자산의 15% 이상이 화석연료 관련 기업에 투입된다.

이는 보험사가 한 손으로는 기후재난 피해를 보상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위기의 원인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는 구조를 보여준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신규 화석연료 개발 투자를 중단할 것을 권고했지만, 국내 보험사들은 오히려 투자를 늘리고 있는 실정이다.

재무 안정성도 위협하는 기후위기…대책은?

한국은행의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기후변화 대응이 지연될 경우 2100년 손해보험사의 지급여력비율(RBC)은 43.9%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2050년까지 자연재해 관련 보험금 지급액은 현재 대비 2.5배 증가할 전망이다. 생명보험사도 폭염, 대기오염, 감염병 등으로 보험금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해외 사례도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산불 위험으로 주요 보험사가 주택보험 신규 계약을 중단했고, 플로리다에서는 허리케인 피해 증가로 시민보험회사의 적자가 누적되며 보험료가 급등했다. 독일 뮌헨재보험은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증가가 보험업계 최대 위험”이라며 2023년 전 세계 자연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의 62%는 개인과 정부가 부담해야 했다고 밝혔다.

한국 손해보험사의 자연재해 관련 보험금 지급액도 2019년 2847억원에서 2023년 5123억원으로 80% 증가하며 보험료 인상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내 보험시장은 여전히 소극적이지만, 빅데이터·AI·위성 이미지 분석 등 기술을 활용한 신속한 보상 상품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매개변수 보험(parametric insurance)’은 기상 조건 도달 시 자동으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손해 사정 과정을 간소화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들은 보험이 단순 위험 전가 수단을 넘어 사회 전체 회복력을 높이는 핵심 인프라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한 보험학과 교수는 “보험사는 사고 후 보상 중심에서 벗어나, 위험 예방과 사전 대응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며 “기후재난은 소득 수준에 관계 없이 발생하지만, 회복 능력은 경제력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저소득층은 재난 이후 회복이 어렵고 빈곤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이를 해결하려면 보험료 차등화와 정부 지원 확대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후변화로 등장하는 새로운 위험에도 대응해야 한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영구 침수, 극한 기온으로 인한 인프라 손상 등 기존 보험 상품으로는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 늘고 있다”며 “스위스재보험이 2023년 도입한 ‘기후적응 보험’처럼 장기적인 기후영향을 고려한 보상 체계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기상청장을 지낸 남재철 서울대 특임교수도 “기후대응을 위해서는 분산된 관리 체계를 통합하고, 예방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하며 이를 평가·감독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보험 또한 과거 정의에 갇혀 있기보다, 위험을 줄이고 사회 전체 회복력을 높이는 생존 인프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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