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문영서 기자】 돈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정말로 돈이 없는 사람과 저축을 비롯해 꼭 필요한 안전자금 외의 가용금액이 없다는 의미에서 돈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
그렇다면 별안간 전재산의 17%만 남게 되는 경우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0%가 아니니 돈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 해서 안전하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최근 한미 간 관세 협상 타결 후 미국이 요구하는 3500억달러 규모의 투자 문제는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이다. 이 투자액은 우리나라 전체 외환보유액의 약 83%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으로, 통화스와프 같은 안전장치 없이 이 거액을 현금으로 미국에 투자하게 되면, 1997년 IMF 외환위기와 유사한 금융 위기에 직면할 위험이 크다.
실제로 이재명 대통령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통화스와프 없이 이 요구를 전액 수용할 경우 한국은 다시 IMF 상황을 마주할 것”이라고 직설적으로 우려를 표했다.
미국이 일본에 요구한 5500억달러 투자는 일본의 막대한 외환보유액과 상설 통화스와프가 뒷받침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한국은 통화스와프와 같은 금융시장 안정장치가 전무한 상태에서 대규모 달러가 유출되면 환율 급변동과 신용등급 하락 등 국가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런 현실을 간과한 채 미국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오히려 미국에 3500억 달러를 투자하는 대신, 국내에서 관세 피해를 입은 기업들에 대한 지원과 투자를 강화하는 편이 경제적으로도 훨씬 효과적이다. 수출 현장에서 직접 타격을 받고 있는 기업들이 회복되어야만 우리 경제 전반의 경쟁력이 유지되고 일자리도 지켜질 수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CEPR)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딘 베이커 역시 한국과 일본은 트럼프 대통령보다 자국 수출업체에 돈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한국은 미국에 1320억달러어치의 상품을 수출했으며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7.3%에 해당한다. 만약 15%의 세금으로 수출이 5% 감소한다면 수출액은 1250억달러로 줄어든다. 여기에 트럼프의 25% 세금으로 추가로 10%가 감소하면 125억달러가 줄어들어 GDP의 약 0.7%에 해당한다. 트럼프는 이 125억 달러어치의 수출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이 3500억 달러를 자신에게 지불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미국 조지아주의 현대차-LG 배터리 공장 근로자 300여 명 구금 사태 또한 매우 부당하고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 이 사건은 과잉 집행이라는 점을 넘어 양국 협력과 신뢰에 금이 가는 중대한 외교 문제다. 한국 정부가 미국에 적절한 사과와 해결책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법원에서 위법 판결을 받았을 뿐더러 최종 판결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3500억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일방적으로 감행하는 것은 옳지 않다. 게다가 미국에서 발생한 구금 사태와 같은 과잉 진압, 불공정한 처사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그들의 요구만 무조건 수용하는 행태는 외교가 아니라 굴복에 불과하다. 국민 경제와 주권을 지키는 현명한 대응과 협상이 절실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