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파 청년 활동가 찰리 커크의 암살은 충격이었다. 단순히 한 정치인의 비극이 아니라 정치 갈등의 해결 방식이 얼마나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총탄은 미국에만 날아든 것이 아니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민주주의에서 갈등의 해결은 점점 더 요원해지고 폭력과 극단적 투쟁만이 거리를 휩쓸고 있다.
진영 대결은 일상화되었고 혐오는 정치의 기본 언어가 됐다. ‘내 편만 믿고 본다’는 확증편향은 민주주의의 가장 위험한 무기로 부상했다. 정치적 불만은 토론과 대화로 해소되기보다 공격과 조롱, 폭압적 대결이라는 극단적 방식으로 표출된다.
이렇게 정치의 기능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세대는 청년들이다. 기성세대는 여전히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기득권 유지에 매달리지만 청년은 대안 없는 냉소 속으로 밀려난다. 그런데 미국과 한국의 청년 정치는 기성정치와 국민들의 소비 방식에서 묘한 차이를 보인다.
찰리 커크는 미국 보수 청년운동의 상징이었다. 그는 대학 캠퍼스를 무대로 보수 담론을 퍼뜨렸고 기독교 보수와 거대한 후원 네트워크에 기대어 조직을 키웠다. “친구 다섯 명만 투표장에 데려가도 세상은 달라진다”는 그의 발언은 단순한 선동이 아니라 실천의 정치학을 드러냈다는 평가도 있다.
그는 제도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대 진영이 만든 규칙조차 더 잘 활용하라는, 청년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의지를 강조했다. 이는 여전히 정치의 변방에 머물고 있는 청년들에게 진영을 넘어 귀 기울일 만한 전략적 조언이었다. 그래서 커크는 우파의 상징이자 ‘영웅’으로 소비됐다.
그러나 한국 청년 정치의 ‘얼굴’은 사뭇 다르다.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화제를 모았던 류호정 전 정의당 의원은 지금 목수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최근 일부 언론은 이를 ‘새로운 도전’으로 포장해 보도하기도 했다. 그 포장지 속에는 국회의원 출신도 목수 일에 도전한다는 ‘소탈함’이 그럴듯하게 들어 있다.
하지만 “정치에서 실패한 전직 의원이 먹고살기 위해 목공 기술을 배우는 중”이라는 ‘미담’은 그리 아름답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한국의 청년 정치인은 ‘정치 실패 후 취업 전선에 내몰리는 생계형 전직자’ 서사로 그려지며 가십으로 소비된다.
이는 ‘새로운 도전’이라는 희망과 재도전의 프레임이라기보다 한국 청년이 처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암울한 미장센’이다. 국회의원 출신이라도 재선에 실패하면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냉혹한 현실은, ‘정치인도 저런데 하물며 일반 청년은 어떨까’라는 패배 의식과 좌절감을 고조시킬 뿐이다.
우리 사회는 청년 정치인들을 담론과 실천의 주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가 만든 생존 경쟁 틀 속에서 실패할 경우 그들을 낙오자로 무자비하게 낙인찍어 버린다. 찰리 커크와 류호정 두 인물이 국민과 언론, 정치에 의해 소비되는 패턴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미국의 영웅 서사와 한국의 낙오자 프레임은 양국 간 청년 정치의 현실을 실사(實寫)하고 있다.
물론 찰리 커크와 류호정 사이에는 개인적 정치 역량과 정치적 업적 등에 있어 차이가 있다. 또한 목공은 류호정 개인의 선택이며, 목공의 삶이 실패도 아니다. 그러나 이 문제의 본질은 개인의 성패가 아니다.
미국과 한국에서 청년 정치가 소비되는 양식의 차이는 곧 청년 정치에 대한 양국 간 시각의 불평등을 의미한다. 미국 청년 정치의 서사에는 행동과 참여, 현실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와 신뢰가 살아 있다면 한국 청년 정치에는 높은 벽과 고립, 실패하면 낙오자라는 ‘패배자 프레임’이 지배하고 있다.
청년 정치인은 젊기에 실패할 자격이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그 실패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한 번의 실패는 곧 낙오로 낙인찍히고 재도전의 기회는커녕 치열한 생존 경쟁으로 내몰린다. 미국이 청년 정치인에게 따뜻한 신뢰와 격려를 보낸다면 한국은 그들에게 기성세대보다 더 혹독한 심판과 성과의 잣대를 들이댄다.
청년들에게 ‘낙오자 프레임’이 반복되는 사회에서 세대교체는 불가능하다. 청년 정치가 살아나려면 그들에게 ‘실패할 특권’을 주어야 한다. 그것 없이는 청년 정치에 영웅도, 미래도 없다. 오직 낙오자에 대한 냉소적 소비만 남을 뿐이다. 청년 정치인들에게 패자부활전을 허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