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의 1심 판결이 20일 내려졌다.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에 연루된 국민의힘 전현직 의원들은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나경원 의원 등은 1심 판단이 3심까지 유지돼도 의원직이나 지자체장 직을 잃을 가능성은 사라졌다.
일반 형사사건에선 금고 이상의 형이, 국회법 위반 사건에선 벌금 500만원 이상이 선고돼야 직을 상실한다. 재판부는 나 의원의 국회법 위반 벌금을 ‘4백만원’으로 싸게 끊어줘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재판부는 ‘벌금 할인’의 이유에 대해 “다만 피고인들은 이 사건 문제점을 지적하고 부당성을 공론화하려는 정치적 동기로 범행에 나아갔다. 사건 발생 이래 여러 차례 총선과 지선을 거치며 피고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정치적 판단도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도대체 어떤 국민들이, 어떤 정치적 판단을 후하게 해줘 재판부가 벌금을 싸게 끊어줬는지 쉽게 납득은 되지 않지만 전 국민들이 폭력과 무질서가 난무하는 국회의 난장판을 고통스럽게 목도한 결과 치고는 너무도 어이가 없다. ‘국회 난장판 안 본 눈 삽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이번 판결은 어느 정도 예견돼 있었다. 재판부가 ‘국회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무더기 징역형을 때려 의원직 상실까지 이르게 할 법 지식이 없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감히’ 국회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사법부가 일반 회사나 기관에서 있었던 일과 ‘동일하게’ 처리한다면 그건 금배지들의 고매하고 위대한 정치 행위의 성역을 건드리는 ‘불경’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2019년 4월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 당시 실제로 벌어진 폭력과 불법적 행위는 보는 시각에 따라 ‘그럴 수도 있다’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빠루’(쇠지렛대)와 해머로 문짝을 뜯어내고, 의원을 불법 감금하고, 회의를 하지 못하게 스크럼을 짜서 막고, 서로 옷을 뜯고 싸우고 넘어뜨리고, 욕설을 퍼붓는 등 난장판이 이어졌다. 부상자도 다수 발생했다.
이를 정치라고 용인하는 것을 ‘정무적 행위’라고 넘어가는 국민들의 관성적 관용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그런데 사법부마저도 엄정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는 것은 ‘재량’을 넘어 골치 아픈 정치판과 엮이지 않겠다는 다분히 무책임한 외면과 방기에 가깝다. 사법부는 정치보복 시비와 정쟁 개입 비난을 피하려는 자기보호 본능 때문에 정치사건 앞에서 늘 머뭇거린다.
더 큰 문제는 국회의원들이나 ‘국회’에서 일하는 관련자들도 ‘법대로’ 이 일이 처리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빠루로 문짝을 뜯어낼 때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반 시민이라면 감히 생각지도 못할 불법 행위가 ‘국회’라는 정치적 공간에서는 감금이 ‘의원실 점거’가 되고, 폭력이 ‘정치적 항의’가 되고, 난동이 ‘투쟁’으로 변주된다. 여기에 사법부도 그 오랜된 관행과 미화에 대한 ‘공범’이 된다.
문짝을 때려부수면서도 속으로는 “이건 불법이지...하지만 판사들이 설마 우리한테 실형을 때리겠어? 여기가 국회인데?”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정치인들은 자신들도 ‘법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외면한다. 오로지 ‘법과 단죄의 주체’라는 착시와 특권 속에서 살아간다.
더구나 카메라만 꺼지면 여야 의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기쁨 충만의 악수를 나누고 동지적 유희에 빠져든다. 국회나 대통령실의 권력만이 향유하는 그들만의 폐쇄적 동지의식은 법도 국민도 우습게 보는 특권의 세계로 이어진다.
국회라는 공간은 오랜 세월 스스로를 치외 법권지대로 만들어왔다. 동료 의원끼리 고성을 질러도, 회의장을 점거해도, 심지어 물리적 충돌이 벌어져도 그곳에선 언제나 ‘정치’라는 이름의 포장지가 준비돼 있었고 그것을 과감하게 뜯을 주체는, 지금 대한민국에 없다.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정치적 판결’은 단순히 법 앞에 평등이라는 경구를 위반한 것에 머물지 않는다. 사법부의 이 모호한 관용은 정치권의 무책임을 바로잡고 견제하기보다 오히려 그들의 오만을 방조하는 역할을 한다.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해야 할 순간마다 사법부가 한발 물러선다면 정치의 폭력, 불법의 관행은 언제나 그 빈틈을 파고들 것이다.
이번 판결에 대해 시민들이 느끼는 혼란은 단순한 법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인이 저지르는 범죄는 왜 정치로 이해되고, 시민이 저지르는 범죄는 왜 범죄로만 남는가. 이 권력과 시민 사이의 차별적 이중 구조가 사라지지 않는 한 한국 정치는 한 발짝도 국민 편으로 나아갈 수 없다.
정치인의 특권과 사법부의 ‘오도된 재량’이 교차한 이번 판결은 시민에게 정의도, 법 앞의 평등도 돌려주지 못했다. 또한 정치인의 특권의식을 ‘관행’으로 여긴 우리의 타성도 성찰하지 않는다면 ‘나경원의 벌금 400만원’은 영원히 반복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