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뉴질랜드에서 현지 직원을 성추행한 의혹을 받고 있는 외교관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으로 비판을 받자 “지금 시대의 성인지 감수성에 괴리된 점은 없는지 성찰하겠다”며 사과했습니다.
현직 외교관 A씨는 주뉴질랜드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지난 2017년 현지 직원을 세 차례에 걸쳐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피해자는 같은 해 12월 한국 외교부와 국가인권위원회에 피해사실을 알리며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에 외교부는 자체 감사를 진행해 지난해 2월 A씨에게 감봉 1개월 처분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A씨는 필리핀으로 근무지를 옮겨 계속 근무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달 말 문재인 대통령과 뉴질랜드 저신다 아던 총리 간 통화를 통해 문제가 제기되면서 논란이 커지자 외교부는 A씨에게 본국 귀임 명령과 함께 대기발령 조치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송 의원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이 같다는 이유로 가해자를 두둔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송 의원은 지난 19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A씨와 관련해 ”문화의 차이도 있다고 본다. 뉴질랜드는 동성애에 대해 상당히 개방적인 나라“라며 ”(피해자를) 여성으로 오해하고 있는 분들이 있는데, 180cm의 키에 덩치가 저만한 남성 직원이다. 가해자로 알려진 영사와 친한 사이였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우리는 그냥 같은 남자끼리 배도 한 번 씩 툭툭 치고, 엉덩이도 한 번 치고 그랬다는 것”이라며 “피해자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가 있다. 그래서 경고 처분을 받았고 나중에 감봉 처분을 했는데, 아무튼 이후 상황을 다시 한 번 체크해보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송 의원은 뉴질랜드에서의 재판을 위한 A씨의 현지 인도는 검토하지 않고 있느냐는 질문에 지나친 대응이라며 ‘오버’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그건 오버라고 본다. 뉴질랜드 총리와 문재인 대통령 간 통화 속에서 문제제기가 이뤄진 건 프로토콜(외교 의전)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문화의 차이’라며 동성애에 개방적인 나라라는 점을 언급한 점은 동성애와 동성 성추행을 구분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동성애는 성적 지향일 뿐입니다. 그리고 성추행은 피해자의 성별과 관계없이 범죄입니다. 애정과 폭력을 구분하지 못한 것입니다.
또 송 의원의 발언은 ‘딸 같아서’, ‘귀여워서’ 만졌다는 가해자의 변명과 다르지 않습니다. ‘성적 의도를 갖고 만진 것이 아니다’라는, 전형적인 가해자 중심적 발언입니다.
송 의원의 발언 이후 정치권에서는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정의당 조혜민 대변인은 송 의원의 발언 당일인 19일 브리핑을 통해 “한심하기 그지없다”며 “송 의원의 무지한 그 말 자체가 ‘오버’라는 걸 정녕 모르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상대가 이성이든 동성이든 성추행은 말 그대로 성추행”이라며 “상대가 원하지 않는 행위를 일방적으로 행한 폭력적인 행위”라고 지적했습니다.
조 대변인은 “문화적 차이를 운운한 그 자체가 성추행을 옹호한 행동”이라며 “성폭력에 무감각한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한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고 꼬집었습니다.
같은 당 류호정 의원도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의원을 비판했습니다.
류 의원은 지난 20일 “정의당 행사 뒤풀이에서 옆자리에 앉은 여성분이 제 등을 쓰다듬었다”며 “그 분에게 어떤 악의도 없다는 걸 잘 알기에 기분이 나쁘진 않았지만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허락 없이 이러시면 안 돼요’라고 말했다”고 자신이 겪은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이어 “동성 간이든 이성 간이든 원치 않는 성적 접촉은 성추행”이라며 “한 외교관의 성추행 추문에 대응하는 정부의 태도도 문제지만, 외교부를 소관기관으로 두고 있는 외통위 위원장의 인식은 더 충격”이라고 말했습니다.
미래통합당 황규환 부대변인도 같은 날 논평을 통해 “피해자에게 상처를 준 외교관을 질타하고, 안이한 대응으로 일관한 외교부에 목소리를 높여야할 국회 외통위원장이, 외려 여당소속이라는 이유로 막무가내 논리를 앞세워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정부 감싸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황 부대변인은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여당 국회의원의 왜곡된 인식이 한없이 황당하다”면서 “어떻게든 정부 편을 들어보려는 대한민국 외통위원장의 궤변이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다”고 질타했습니다.
이 같은 비판이 이어지자 송 의원은 20일 자신의 SNS를 통해 해당 발언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송 의원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대방의 동의 없는 신체접촉은 안 된다”며 “외교부가 초기에 엄격한 조사를 통해 제대로 된 처분을 했어야 하는데 ‘경고’라는 안이한 처분을 한 것에 대해 지적해왔고, 그러한 취지를 인터뷰에서 제대로 표현했어야 했는데 부족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2019년 2월 외교부 조사에서도 성추행 혐의를 인정해 감봉조치를 했고, 2018년 11월 시작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사건에 대한 조사에서도 지난달 30일 인용 결정이 내려져 현재 결정문을 작성 중이라고 한다”며 “인권위 조사결과를 포함해, 외교부에서 다시 한 번 철저한 사실관계 조사를 진행해 문제 해결을 하도록 촉구하겠다”고 습니다.
송 의원은 “스스로 지금 시대의 성인지 감수성에 괴리된 점은 없는지 성찰하겠다”며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킨 것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밝혔습니다.
‘피해자 중심주의’가 성범죄 판단에 있어서 중요한 척도로 자리 잡고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오늘날 송 의원의 ‘동성 간에는 그럴 수 있다’는 의도의 발언은 아직도 공고한 이성애 중심주의를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합니다.
이번 논란에 대해 송 의원이 사과했지만, 정부와 국회, 한국 사회의 이 같은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A씨에 대한 외교부의 처리 과정에 있어서 정부와 국회가 가해자에 온정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피해자의 편에 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