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유찬 칼럼니스트】갑작스러운 개성공단 폐쇄로 한반도에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DJ정권시절 햇볕정책의 구체적 정책 산물이었던 개성공단은 그동안 국내외적으로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었다.북한 수뇌부입장에서는 짭짤한 캐시 카우 역할을 하던 두 축(다른 한 축은 금강산관광사업) 중 한 축이 계속되는 미사일발사로 날아 가버린 것이다.사실 이러한 국면은 서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남북 양측에 의해 충분히 예상됐었다.핵을 머리에 이고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한국입장에서는 달라 현금을 매달 꼬박꼬박 임금형태로 북측에 제공
【투데이신문 김유찬 칼럼니스트】최근 역사 교과서 논쟁으로 온 나라가 쪼개질 듯 양분돼 있다. 보수우파는 좌파정권이 지난시절 좌편향시각으로 왜곡시켜 놓았던 굴곡진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며 ‘국정교과서’를 만들겠다고 하고 진보세력은 보수우파 집권세력이 ‘독재와 친일을 미화’하려고 한다며 사생결단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한 사회가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역사논쟁을 벌이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그 사회가 그만큼 건강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사회가 현재 치르는 치열한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은
【투데이신문 김유찬 칼럼니스트】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은 40년간 권력과 돈을 독점했던,이른바 TK천하시대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했다.재야학자로 알려진 리영희 교수는 의 1998년 1월17일자 칼럼에서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을 두고 4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전라도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사회적 벽 즉 전라도 출신이라는 벽에 막혀 기를 못 펴고 살다가 갑자기 그 벽이 허물어진 형국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전라도 출신들은 지난 40년간 대한민국에서 3등 국민의 처지였고, 내국식민지의 멸시를 당해야만 했다고 썼다. 정말 그랬다
한국정치사상 최초의 좌파정권이 탄생했다. 해방이 후 한국정치사는 극한적인 정쟁과 이데올로기 대립의 역사였다. 그 속에는 항상 분단이라는 구조적인 모순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강대국의 논리에 따라 그어진 그 통한의 분단선은 그 후 7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민족을 남북으로 동서로 갈라놓았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진행형이다. 【투데이신문 김유찬 칼럼니스트】제15대 대통령선거가 막 끝난 직후인 1998년 봄. 서울지방법원 한 형사합의부 법정 재판부를 중심으로 좌측에는 검사석이, 우측에는 변호인단이 자리하고 빽빽이 들어선 방청객 사이로
【투데이신문 김유찬 칼럼니스트】요즘 한창 그리스 국가부도사태로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이고 있다.홍콩 항셍지수 등 각 나라 증시지표가 곤두박질을 치고 깡통 계좌가 속출하는가 하면 당사국인 그리스는 연일 민중들의 생존을 위한 데모가 온 CNN TV화면을 뒤덮는다.1997년 11월 17년 전 우리 대한민국의 긴박했던 상황이 바로 유럽 그리스에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세계경제가 하나의 지구촌 경제체제로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지구 어느 한 곳의 사건과 사고가 결코 그곳에만 머무르질 않고 이처럼 세계 곳곳에
【투데이신문 김유찬 칼럼니스트】국민들은 김영삼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 자신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6.25전쟁 이래 가장 큰 경제적인 고통을 안겨준 기억하기 싫은 형편없는 대통령으로 기억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혹자는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가 큰 인물로 그나마 점수를 부여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또 다른 이들은 그의 얼굴에 교만과 아집이 가득 차 있고, 자신과 같은 야당 정치인이자 민주화의 동지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 인물이라고 기억하는 국민들도 있겠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수상자로
【투데이신문 김유찬 칼럼니스트】2015년 4월, 요즘 대한민국은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완전히 함몰돼 온 국민의 입이 걸어지고 분노와 허탈감으로 모든 게 정지된 느낌이다.‘경제대통령’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등장한 이명박이 정권재임기간 중 국책사업이랍시고 26조6000여억 원의 국민혈세를 토목공사비로 강바닥에 퍼붓다 시피하며 4대강을 파헤쳐 자연이 복원능력을 상실할 정도의 회복불능 상태로 국토를 결딴내더니, 이번엔 “내가 해봐서 아는데….” 어설픈 개인적인 경험을 앞세워 해외자원개발을 한답시고 어처구니없게도 47조원
【투데이신문 김유찬 칼럼니스트】20세기 후반 2차대전 종전 후 국제질서를 견고히 지배해 오던 냉전체제가 붕괴하려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1985년 미국은 레이건 정부 집권 2기를 맞이했고, 그해 3월 소련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개혁과 개방을 기치로 한 이른바 신데탕트 체제로의 전환 움직임이 가속화됐다.소련의 개혁 개방정책은 70년간 지속되어온 사회주의 경제정책의 대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냉전체제의 붕괴는 곧 자본주의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냉전체제가 붕괴되는 거대한 역사적인 격변기에 당시 노태우정권은 비교적 신속하
【투데이신문 김유찬 칼럼니스트】노태우가 6.29선언이라는 극적인 정치이벤트를 통해 일약 국가의 존망을 결정지을 대한민국 국가최고 지도자급 리더로 급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전임 전두환의 치밀한 전략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정말 전두환은 노태우를 ‘관리’했다. 이러한 추론이 가능한 것은 당시 전두환의 언급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1980년에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전두환은 당시 친구인 노태우 장군에게 “잘하면 내 다음에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언질을 준 바 있고 그 뒤 실제로 전두환은 노태우가 대통령
【투데이신문 김유찬 칼럼니스트】흔히 노태우를 “가발 쓴 전두환”이라고 평하곤 한다. 그 권력의 뿌리가 같다는 해학적 표현이다.자칫하면 정권의 이양과정에서 숱한 국민의 피를 부를 뻔했던 전두환 시대의 종언은 1987년 6.29선언이라는 극적인 정치이벤트를 통해 평화적인 정권교체의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선을 보였다.12.12 사태 이전부터 철저히 전두환의 후임보직자리를 이어받은 노태우는 이제 대통령자리마저 물려받게 되기에 이르렀다.전두환은 자신의 후임이 자신의 퇴임 후를 보장해주길 바랬다. 보복이 일상화된 후진적인 한국정치행태를 볼 때
【투데이신문 김유찬 칼럼니스트】2002년 한국대통령 평가위원회에서 분야별 역대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내린 바 있었다.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등 6명 대통령 중 전두환 대통령은 종합순위 5위를 기록했다. 특히 이 평가에서 전두환 대통령에 대해 국민들은 민주성과 도덕성 부분에 있어서 그를 매우 혹독하게 평가했다.그의 재임기간 중 실시된 일련의 정책들 즉 교복자율화 정책이나, 통행금지 해제 등은 당시 많은 국민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86아시안게임이나 88올림픽게임의 유치 등도 비교적 호평을 받았던 정책들
【투데이신문 김유찬 칼럼니스트】전두환 정권에 의한 정책은 우선 집권과정의 비정통성 문제를 물가안정을 통한 지속적 경제성장의 기반구축과 이를 바탕으로 한 국운개척노력으로 요약할 수 있다.그러나 전두환정권의 가장 큰 치적으로 평가되는 물가안정정책은 사실 빛과 그림자 모두를 만들어 냈다.전두환 대통령 자신의 권위주의적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는 자신이 신뢰한 경제수석에게 과도한 권한을 부여한 나머지 경직된 경제정책을 전개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한 꼴이 됐고 그렇게 함으로써 여타의 경제분야 예컨대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 등에는 상대적으로
【투데이신문 김유찬 칼럼니스트】정통성확보를 위한 몸부림헌정사에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불법적으로 권력을 찬탈하고 헌정을 장악한 이들 신군부가 직면한 최대의 과제는 이른바 부당하게 권력을 찬탈한 자신들의 집권과정의 불법성과 권력의 정통성 결여 문제를 여하히 극복할 것인가였다. 바로 전 정권이었던 박정희정권이 집권초기 직면했었던 바로 그 문제가 반복된 것이다.물론 전두환은 형식적으로는 일정한 요건을 갖추어 권좌에 오르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그의 불법적인 권력 찬탈 과정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
【투데이신문 김유찬 칼럼니스트】역사는 끊임없이 흐른다. 시간이 흐르기 때문이다.요즘 뉴스를 통해 가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세간에 끝없는 뉴스거리와 장탄식을 자아내게 하는 권력형부패의 주인공 전직대통령 전두환.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아 검찰이 전담 TF TEAM을 구성해 미납추징금을 강제로라도 납부케하기 위해 불을 켜고 찾는다는 씁쓸한 소식이 들려온다. 박근혜정부 들어서서 보다 강력해진 이 추징금 환수 조치로 결국 그의 장남과 처남 소유로 위장돼 있던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게 되었다는 때늦은 숨바꼭질 이
【투데이신문 김유찬 칼럼니스트】대한민국 건국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네 한국정치와 정치인들에 대한 온갖 비난과 부정적인 평가가 시대적인 대세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이제는 어엿한 세계10위권 안팎의 무역강국이자 준선진국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박정희 시대에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개인 혹은 단체나 그 가족들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었던 반체제 성향의 인사들과 최근 한국 내에서 강력한 체제비판세력으로 자리잡고 있는 진보계열의 열성인사들 빼고는 대부분의 한국민들은 박정희식 경제발전모델의 성공적인 결과와 한국경제에
【투데이신문 김유찬 칼럼니스트】박정희 대통령 집권기간 중 그의 부국강병정책은 오랜 기간 가난 속에 허덕이던 한국인들에게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를 열었다. 국가적으로 보아 절대빈곤층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세계 최빈국 언저리에서 머물던 대한민국은 어엿한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섰다. 그러한 의미에서 논자에 따라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펼친 부국강병정책은 세계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부국강병정책의 교과서로 평가받을 만하다.그러나 그의 집권기간 중 ‘유신체제’로 일컬어지는 집권 후반부는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
【투데이신문 김유찬 칼럼니스트】미국은 대한민국 정부탄생의 산파역할을 한 우리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근현대 역사 속에 ‘운명적 동반자’ 관계이다. 최근에는 흔히 ‘전략적 동반자관계’나 ‘혈맹관계’라는 표현이 이를 대신하곤 한다. 과거 노무현 정권시절에는 이러한 대미관계가 요동치는 상황까지 갔었지만 지난날 대부분의 보수정권들은 정권안보와 국가안보차원에서 미국과의 밀월관계를 유지해왔다.대한민국 정부출범 직후 한국의 국방력은 그야말로 보잘 것없는 수준이었다. 해방과 동시에 진주한 미군 군정당국은 대한민국의 국방력을 초기 국내치안유지가 가능
【투데이신문 김유찬 칼럼니스트】‘한강의 기적’은 정치,경제,사회적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이고도 상승적으로 작용해 이뤄졌는데 경제개발5개년계획과 함께 주목할 말한 일은 바로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시작된 새마을 운동이다.지역사회개발운동으로써의 농촌새마을 운동의 시작은 1970년 4월 22일 개최된 지방장관회의에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의욕적인 젊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부락민의 협력과 이러한 노력과 협력을 위해 일선 행정책임자들의 사기진작방안 연구와 지원을 도모토록 하고 이런 운동은 새마을 가꾸기 운동이라고 해도 좋고 알뜰한 마을 만들기
【투데이신문 김유찬 칼럼니스트】박정희 대통령 시절 즉 60년대 초반부터 그의 급서거 시기인 70년대말까지 한국경제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그야말로 세계경제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초고속 성장을 했다. 요즘은 3% 전후의 저성장으로 여기저기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노정되고 불협화음이 들려와 격세지감을 느끼지만 그의 집권기간 중 이룩한 눈부신 경제성장 지표는 두고두고 한국민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고 그때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인구에 회자가 되고 있다.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박근혜 후보에 대한 상당수 국민들의 지
【투데이신문 김유찬 칼럼니스트】 박정희 시대에 대한 평가는 대한민국을 오늘날 경제적 성장의 반석을 마련한 위대한 지도자라는 평가와 함께 그의 장기집권과 민주화에 대한 폭력적인 억압에 대한 격렬한 비판 등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역사상 한 인물에 대한 그리고 한 시대에 대한 평가가 이처럼 극명한 예는 그 선례를 찾기 힘들다.보는 이의 각도와 시각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수 있기 마련이지만 극명한 평가의 이분법적 논리는 박정희시대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 작업을 어렵게 만드는 것 같다.필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러한 극명한 차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