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국민 기본소득’ 꿈꾸는 청년국회의원 용혜인

창당 3개월 만에 원내진출···지방선거 후보 낼 것
기본소득은 시대정신···차기총선 목표는 비례 3석
평당원에서 대표까지···위성정당 합류 쉽지 않았다
‘가만히있으라’ 침묵시위, 숨 막힐 것 같아 시작해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투데이신문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윤철순 기자】 지난 21대 총선은 비례대표 의석을 놓고 벌인 제 정당들의 추악한 밥그릇 싸움이었다. 범여권은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을 매개로 공직선거법(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을 강행처리했고, 제1야당은 페이퍼컴퍼니(비례용 위성정당)로 맞섰다.

‘게임의 룰’ 같은 건 필요 없었다. ‘군소정당들의 의회진출 길을 터 비례대표제 성격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마저 무력화시킨 거대 당들은, 결국 ‘비례위성정당’이라는 괴물을 만들며 정당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의원 위장전입’ 꼼수로 수십억에 달하는 정당보조금까지 챙겼다.

한국의회정치의 끝판을 보여준 지난 총선의 위성정당 파동은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비례정당(더불어시민당)이 17석, 당시 제1야당이었던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비례정당(미래한국당)이 19석을 쓸어담으며 전체 의석(47석)의 76.6%(36석)를 강탈해가는 막장드라마로 끝났다.

특히, 미래통합당만의 비례대표 공천을 위해 신설된 미래한국당은 당시 ‘반란’, ‘가처분’ 같은 살벌한 단어가 난무하는 양 지도부 간 공천갈등으로 파행을 거듭했음에도, 유권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다.

‘친문’ 성향의 일부 대학교수들이 주도한 더불어시민당은 ‘플랫폼 정당’을 표방하며 민생·정의·녹색·미래당 등 범 민주세력과의 선거연대를 꾀하고자 했지만, ‘비례용 임시 가설정당(정의당)’, ‘명분 없는 선거연합(녹색당)’ 등의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그나마 ‘시대전환(당)’과 ‘기본소득당’의 참여로 구색을 갖추며 집권여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었지만, 결국 미래한국당보다 두 석 적은 17석을 얻는데 그치고 말았다. 기본소득당과 시대전환은 비례 5번과 6번에 배치되며 무난히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지난해 4월 28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1전시장에서 열린 ‘2021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뉴시스
지난해 4월 28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1전시장에서 열린 ‘2021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뉴시스

◇ 창당 석 달 만에 원내 진출 이뤄

당시, 기본소득당을 대표해 플랫폼정당에 참여한 용혜인 의원은 “선거연합 참여를 두고 당 내에서 치열한 토론이 있었다”며 “더불어시민당이 자체 후보를 내지 않고 모든 걸 참여 정당들과 논의해 결정하겠다고는 했지만, 당 차원의 합류결정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고백했다.

‘전 국민에게 매월 65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기본소득당은 지난 총선을 석 달 앞두고 만들어진 신생정당이다. 그러나 기본소득당은 당명에서 드러나는 선명성과 이념(메시지)을 바탕으로 창당 작업 3개월 만에 2만 당원을 끌어 모으는 파란을 일으켰다.

용 의원은 “2030 청년들이 대부분인 기본소득당원들은 대기업 등의 정규직 노조원이 아닌 비정규직, 알바생 위주로 구성돼 있는 청년정당”이라며 “이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소액 당비로 우리는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목표를 향해 전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용혜인 의원은 1990년생이다. 흔히 요즘 식 표현으로 ‘MZ세대 국회의원’이라 불린다. 기본소득당을 대표해 선거연합에 참여했던 2020년은 그의 나이 만 스물아홉 되던 해였다. 그해는 학교선배 손에 이끌려 고(故) 노회찬 당시 진보신당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를 도왔던 때로부터 10년째 되는 해이기도 했다.

용 의원은 노 후보 선거지원을 위해 생애 처음 대중정당의 당원이 됐다. 노회찬, 심상정 등 당대 최고의 노동운동 대가들이 포진했던 진보신당 평당원으로 등록했었지만, 6년 만에 노동당(진보신당 후신) 비례대표로 총선에 출마하기도 했다.

2019년엔 당 대표에 오르며 기본소득을 어젠더로 설정, ‘기본소득당’으로의 당명 개정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시대정신임을 확신한 그는 당시 집행부와 대규모 탈당을 감행, 2020년 1월 19일 기본소득당 깃발을 올리며 석 달 만에 원내에 진출했다.

3개월짜리 신생정당을 원내정당으로 탈바꿈시킨 용 의원은 “우리 당은 모든 국민이 물가에 연동하는 최저생계비 수준의 기본소득을 매월 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게 목표”라며 “다음 총선 의석수가 많이 필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지난달 2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그를 만났다.

◇ 기본소득으로 사회구조 바꿀 수 있어

- ‘기본소득’을 처음 알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요.

“대학 다닐 때였어요. 2012년쯤인데, 사실 기본소득 개념은 심플하잖아요. ‘누구에게나 매월 일정금액을 조건 없이 준다’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저 역시 처음 시작은 아주 간결하고 선명했어요.

- 처음 접한 순간 ‘이거다’ 싶었나 봅니다.

“그런 것보다는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체험했다고 해야겠죠.”

- 체험이요?

“네. 당시 아버지 사업실패로 가정형편이 갑자기 힘들어졌는데, 학교 갈 버스비조차 없는 상황까지 벌어지더라고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경험을 생전 처음 하면서 알게 된 게, ‘갑자기 막다른 상황에 몰린다 해도 국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거였어요. 그때 ‘과연 내가 이 사회의 구성원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학교에선 국가의 복지제도가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역할을 한다고 배우긴 했는데, 막상 닥쳐보니 현실은 다르더라고요.”

- 어려운 상황에서 기본소득을 접했으니 특별하게 느껴졌을 수 있겠네요.

“그랬던 거 같아요. 경제적으로 엄청 어려웠을 때니까. 기본소득에 대한 반응은 보통 두 가지잖아요. ‘괜찮은 생각’이라는 것과 ‘어떻게 돈을 그냥 주냐’는. 당연한 얘기지만, 저는 이런 제도가 있으면 큰 도움이 되겠다는 쪽이었죠.”

- 그때부터 기본소득 전도사가 됐겠어요.

“당시엔 학생이었으니까, 그걸로 뭘 어떻게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고요. 경제적으론 어려웠지만, 그땐 그냥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만 했었어요.”

- 그럼 깊이 고민해본 시기는 언제부턴가요.

“세월호참사가 벌어진 후 진상규명 관련 활동에 참여하면서, ‘사회구조를 바꿔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기본소득은 사회변화를 위해 필요한 도구라는 생각이었고, 이후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됐죠.”

- 세월호 진상규명활동은 어떻게…

“대학졸업 해에 세월호참사가 발생했는데, 제가 안산에서 초중고를 나왔거든요. 부모님은 지금도 안산에 살고 계시고요. 당시 안산사람들은 한두 명만 거치면 유가족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는 그런 관계였어요. 예를 들면, 제가 다니는 성당의 아는 분 조카가 단원고 2학년 학생이라거나, 이런 식으로요. 그만큼 안산시민 모두에겐 엄청난 충격이었죠. 단원고는 또 제가 다닌 고등학교에서 길 하나 건너면 있어요. 그러다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된 겁니다.”

- 기본소득과 진상규명활동이 무슨 관계인가요.

“활동에 참여해보니 ‘이런 비극이 얼마든지 재발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구조적인 사회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은 거죠. 사후 규명이 아니라 예방을 위한 사회구조 변화가 필요하다는. 그럼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해선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자연스럽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고, 정치를 통해 바꿀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기본소득은 이를 위한 도구였고요.”

- 기본소득으로 사회구조를 바꿀 수 있다?

“기본적인 소득이 보장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최소한의 인간존엄성은 유지될 거고, 기업문화도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좀 더 설명이 필요하겠는데요.

“세월호는 사용해선 안 되는 배를 들여와 무리하게 개조해 운항했어요. 이게 이명박 정부 때의 규제완화 때문에 가능했는데요, 청해진해운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갔어요. 가장 중요한 안전교육비를 연간 56만원밖에 안 쓰면서 접대비는 6000만 원, 광고비는 3억원이나 집행했잖아요. 이것만으로도 우리사회의 구조적 문제는 다 드러난 거라 볼 수 있어요. 기업경영에서 안전은 비용이고, 접대는 투자라는 인식. 이런 건 지금도 사회 전반에 걸쳐 형성돼 있잖아요. 오로지 돈벌이가 경영의 최우선인 거죠. 이게 또 유능한 경영방식으로 인정되고. 그러면서 같은 사고는 다시 반복되고. 기본소득은 이런 사회구조를 바꾸는데 필수적인 도구입니다.”

세월호는 1994년 일본에서 건조돼 18년 간 운항하다 퇴역(2012년 10월)한 중고 선박을 청해진해운이 매입, 2013년 3월부터 인천-제주 항로에 투입한 여객선이다. 2014년 4월 16일 침몰 당시 세월호 총 중량은 일본에서 589톤, 청해진해운이 838톤을 늘리면서 5997톤에서 총 1238톤이 증가한 6835톤이 됐다.

◇ 기본소득 재원, 예산과 직접 비교는 무리

- ‘기본소득 지지 세력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런 얘기네요.

“적어도 돈이 목적인 사회, 돈 때문에 사람이 죽고, 돈 때문에 안전 문제가 비용취급 당하는 구조는 지금보다 크게 줄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이런 사회구조 틀에서 세월호 같은 대형 참사가 없었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고 봐요.”

- 기본소득을 전 국민 1인당 월 60만원씩 지급하겠다는 거죠?

“지난 총선 때가 60만원이었고요. 이번 대선에선 65만원 지급하는 걸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임기동안 매년 증액하는 방식을 적용한 거죠.”

- 단순 계산해도 연간 400조가 필요한데, 내년 예산이 600조 정도 되잖아요. 당장, ‘현실성이 없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기본소득 재원은 기존의 국가예산과 직접 비교하면 안 됩니다. 전혀 다른 방식이기 때문에, 예를 든 것처럼 계산하면 당연히 그런 주장이 나올 수 있죠. 또 기본소득 재정은 정부가 거둬서 관리하는 게 아니고 걷자마자 바로 지급되는 방식이라 정부가 따로 조정하고 이럴 필요가 없어요. 정부는 그냥 돈이 거쳐 가는 경로일 뿐입니다.”

- 어쨌든, 증세는 불가피한 거 아닌가요?

“당연히 증세 없는 기본소득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재원마련 방안은 어렵지 않아요. 금액대별로 전부 가능하거든요. 탄소세나 토지보유세 등 세목 신설 방안도 있고 소득세법 개정과 기본소득의 과세소득화, 그리고 생계급여나 아동수당, 기초노령연금, 근로장려금 등의 기존 복지제도와 EITC(Earned Income Tax Credit)를 재조정하면 증세액도 줄고요. 이재명 후보도 비슷한 얘기를 하잖아요. 그러나 정말 중요한 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내야 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정부와 정치권이 기본소득 도입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게 중요합니다.”

-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과 기본소득당의 안이 다른 건가요?

“아이디어만 놓고 보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다만, 지급액이나 방식 등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겠죠. 사실 정책이라는 게 공약으로 발표해도 추진이 어려운데, 이 후보가 기본소득 어젠더를 계속 후순위로 빼는 게 걱정입니다. 선거 과정에서 당위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그만큼 어려울 수 있거든요.”

- 이재명 후보는 기본소득을 증세 없이 하겠다 공약하지 않았나요.

“물론, 작은 규모로 시작하면 증세 없이도 가능하겠죠. 기존의 복지 지출을 조정하고, 정부의 불필요한 예산들을 정리하는 방법을 이용하면. 그것도 의미는 있어요. 동의도 가능하고요. 하지만, 시작하면 중단할 수 없고 효과를 체감하면 금액도 늘어날 거기 때문에 증세 없이 기본소득을 ‘완성한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봐요.”

- 조세저항이 클 것 같은데요.

“기본소득을 도입할 정도의 사회적 합의라면 증세에 대한 합의도 어렵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또 기본소득이 있어야 증세도 가능하다고 보고요. 지금과 같은 복지제도를 강화하기 위해 증세하겠다 그러면 그건 국민저항에 부딪힐 겁니다. 기본소득을 위한 증세의 경우 누가 수혜를 보느냐 하는 게 문제인데, 대부분의 국민들은 수혜대상입니다. 반대로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조세부담률로 그동안 세금을 적게 내던 자산가나 고소득 계층은 세 부담이 늘겠죠.”

- 넘어야 할 산이 많네요.

“그렇기 때문에 정부와 정치권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의지를 갖고 국민합의를 만들어내면, 이재명 후보 안부터 저희 기본소득당이 공약한 월 65만원 모델까지 정부부처 안에서 정책적으로 준비하는 건 어렵지 않거든요. 밖에 있는 우리도 하잖아요. 다시 말하지만, 국민합의가 중요합니다.”

- 입법으로 추동할만한 방안도 있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그래서 얼마 전에 ‘기본소득 공론화법’도 발의했어요. 필요성부터 재원마련방안, 시작시점, 형태 등 기본소득 전반에 관해 1년 이상 국민의견 수렴과정을 가지자는 차원에서요.”

- 이번 대선 결과가 중요하겠네요.

“그렇죠. 기본소득 의지가 있는 정부가 들어설지 여부에 따라 많이 달라질 거라고 봐요. 의지가 강한 정부가 들어선다면 국민적 합의가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계속 추진되겠지만, 아닐 경우라면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하자 그런 겁니다. 사실 이재명 후보의 경우 기본소득을 선도하는 입장이었는데, 요즘은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여 우려되죠.”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투데이신문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투데이신문

◇ 이 후보의 ‘전국민 기본소득’ 발표 듣고 놀라

- 이 후보가 경기지사로 있을 땐 활동도 같이하지 않았나요?

“맞아요. 지사로 계실 때 기본소득위원회 위원으로 참여도 했고, 경기도기본소득박람회 대변인도 했었어요. 당시, 이지사님이 저에게 ‘기본소득 동지’라는 말까지 했었거든요. 하하. 그래서 기대가 컸었는데, 소속 당이 오히려 기본소득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이런 게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후보 혼자 기본소득을 밀어붙일 수 있을지가 걱정인 거죠.”

- 이 후보가 ‘연간 100만원부터 시작하겠다’고 공약했잖아요.

“사실 민주당 경선 때 ‘월 8만원 수준에서 전 국민 기본소득을 시작하겠다’고 발표해서 개인적으로 깜짝 놀랐어요. 반갑기도 했지만, 의외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 왜요?

“이 후보가 ‘청년기본소득’이나 ‘농민기본소득’ 정도만 발표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저도 청년이나 아동, 노령연금 등을 100% 확대하는 식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는데, 오히려 ‘전 국민에게 지급하겠다’ 해서요. 금액이 크든 작든 전 국민 지급 얘기를 꺼내는 건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요즘 ‘이 후보가 기본소득을 안 할 것 같다’는 얘길 많이 들어요. 실제 기본소득 정책을 철회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기도 하고요.”

이 후보는 지난해 7월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을 통해 연간 100만원의 소멸성 지역화폐를 지급하는 전국민 기본소득 공약을 발표했다. 이 후보는 당시, 임기 1년 후부터 1인당 25만원 지급을 시작으로 마지막 해엔 연 4회에 걸쳐 100만원씩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19~29세 청년 700만 명에겐 100만원의 청년 기본소득을 추가지급 하겠다고도 했다. 기본소득에 필요한 재원은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및 재정구조, 조세감면 등을 통해 조달하겠다고 주장했다.

- 기본소득당 차원의 정책 홍보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300명 국회의원 중에 한 석 밖에 안 되는 작은 정당이다 보니, 사실 많은 어려움이 있어요. 대선정국에서 정책경쟁이 진행되면 그나마 기본소득이 부각될 수도 있는데, 토론조차 안 열리니 답답하죠. 저희 당도 이번에 대선후보를 냈거든요. 기본소득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하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큽니다.”

- ‘원내 진출 운이 좋았다’는 얘기도 있는데, 다음 총선 때도 의석확보가 가능할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합니다.

“창당 때도 그랬지만, 지난 총선 당시의 선거연합 참여 결정이 사실 쉬운 과정은 아니었어요. 그럼에도 기본소득이 시대적으로 중요한 어젠더가 될 것이라는 확신 속에 내린 결정인 만큼, 다음 총선에서의 원내 재진입은 아주 중요한 목표입니다. 내년 대선이나 지방선거도 거기에 맞춰 진행되고 있고요. 22대 총선에서 반드시 3% 이상 득표해야 합니다. 하하.”

- 대선후보는 냈는데, 지방선거는 어떤 계획이 있나요?

“일단은 17개 시·도 광역단체 후보를 다 내겠다는 계획인데, 적어도 7명 내외 단체장과 광역시도 비례후보는 낼 생각입니다.”

- 의료, 교육, 주거, 교통 등의 공공사회서비스 무상 공약도 파격적인데요.

“많은 분들이 ‘기본소득이 실시되면 기존의 복지가 후퇴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데, 그렇게 연결되는 건 아니고요. 기본소득은 말 그대로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안전망일 뿐인 거죠. 공공사회서비스 무상화는 기본소득과 동시에 아픈데 치료 못 받아 죽거나, 적어도 돈 없어 이동을 못하고 교육받지 못하는 그런 상황은 막자는 겁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도 전국민 의료비 상한제(연 100만원)를 공약했잖아요?”

- 문제는 항상 돈이죠.

“이 또한 기본소득을 실시할 정도의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다면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기본소득은 중산층 이하의 ‘증세동맹’이 이뤄져야 하는데, 내는 세금보다 돌려받는 돈이 더 많기 때문에 동맹이 가능하거든요. 그런 차원에서 공공사회서비스 무상화를 위한 증세도 가능한 조건이라고 전망하는 거죠. 기본소득이 실현된 사회에선 공공서비스 강화가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증세동맹은 중산층을 대상으로 ‘세금을 더 내더라도 내는 것 이상 돌려받는다’는 확신을 심어줌으로써, 증세에 대한 동의를 얻어낼 수 있다는 개념이다.

지난 2014년 5월 15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정경대 후문에서 고려대 학생들이 세월호 참사 관련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2014년 5월 15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정경대 후문에서 고려대 학생들이 세월호 참사 관련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을 하고 있다. ⓒ뉴시스

◇ ‘가만히 있으라’ 운동 주도, 숨 막혀서 시작

- 세월호참사가 인생을 바꿨다는 생각이 드네요.

“맞아요. 진상규명활동과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직업정치인 생활, 지금의 입법 활동까지 세월호는 제 삶의 방향을 바꿨죠. 안 그랬으면 지금쯤 공무원이 됐거나, 되기 위한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하하.”

- 세월호 때 ‘가만히 있으라’ 침묵 행진도 주도했었죠.

“학교생활 하며 공무원시험 준비를 병행했는데, 세월호 소식을 듣고 그냥 있으려니 숨이 막히더라고요. 뭐라도 해야겠기에 시작한 거죠. 당시엔, 사회구조적 문제나 사명감 이런 건 모르고 그냥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렇게 해서라도 진상규명이 잘 마무리되면 좋겠다 그런 거였죠. 곧 다시 ‘공시생’으로 돌아가야 해서..”

세월호참사의 희생자가 많았던 이유 중 하나로 지목된 “가만히 있어라”는 선내 승객들을 향한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들의 안내방송이다. 탑승자들은 방송을 듣고 구조를 기다렸지만, 이 안내방송은 끝내 ‘죽음의 명령’이 됐다.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은 당시 대학생이었던 그의 제안으로 일어난 사회운동이다. 참가자들은 마스크를 쓰고 ‘가만히 있으라’는 문장이 쓰인 손팻말과 국화를 들고 서울도심을 행진했다. 2014년 4월 30일부터 진행된 이 운동은 희생자 추모 촛불집회 등으로 확산되며 참가자 100여 명이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행진을 주도한 그 역시 집시법 위반 등으로 징역 2년을 구형받기도 했다.

- 그 사건을 계기로 삶의 방향이 완전히 갈렸네요.

“행진시위를 하면서 목격한 건데, 공권력과 정치권이 더 이상 공무원 시험을 볼 수 없게 만들더라고요. 공무원이 된들 기여할 수 있는 건 이런 참사를 만들어내는 체제를 유지시키는 데 일조하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접었죠. 하하.”

- 접은 이후부터 본격적인 기본소득 활동을 한 것 이고요.

“기본소득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하거나 한 건 2016년 이후쯤이에요. 처음엔 좋은 아이디어라고만 생각하다 지평을 넓히면서 ‘기본소득 한국네트워크’라는 시민단체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실현되면 괜찮겠다는 마음으로 그런 활동들을 지켜보고 그랬죠. 집중해서 연구하고 공부하고자 한 건 정치활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후입니다.”

- 당시, 침묵 행진 외에도 여러 활동을 했다면서요.

“네. 대학에서 유가족간담회를 많이 열었어요. 서울에서 30~40회 하고, 대구 광주 청주 등 전국적으로 진행했었죠. 2014년 가을 개강시기 쯤 돼서는 개강거부운동도 하고, 광화문 농성과 단식 등 유가족 입장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많이 했어요.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도 하고요.”

- 스무 살 때(2010년)부터 정치활동을 했다는 얘긴 뭔가요?

“하하. 그건 그냥 선거 후원을 위한 당원가입 이력을 말하는 거 같아요. 당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던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를 도와달라는 선배 부탁받고 잠깐 도왔던 적이 있었거든요. 정당 활동을 하거나 그런 건 아니고요. 당비 몇 천원 내는, 말 그대로 당원이었던 거죠. 공무원시험 보고 나서 탈퇴할 생각으로 가입했던 거였어요. 정식 활동은 2014년 말 진보신당에서 노동당으로 이름을 바꾼 그 당에서 처음 당직선거 출마한 게 시작이었죠. 세월호 관련 활동할 때 만났던 분들이 대부분 노동당원들이었는데, 정말 괜찮은 분들이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정치활동을 하게 된 거죠.”

진보신당은 지난 2008년 민주노동당의 분당으로 노회찬, 심상정 등이 만든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2012년까지 존재했다. 노동당과 정의당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노동당은 진보신당의 강령과 역사를 이어받았고, 정의당은 직계 후신은 아니지만 진보신당 출신의 인물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 2011년엔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원정도 가셨다고.

“하하. 그것도 놀러간다는 생각으로 갔던 거였어요. 태어나서 처음 부산을 간 건데, 부산에 대한 ‘동경’ 같은 게 있었거든요. 어느 날 학교 앞 식당에서 친구들과 막걸리를 마시는데, 어떤 친구가 희망버스라는 게 있다 그래서 여럿이 놀러가듯 내려갔던 거죠. 지금 생각하면 철없는 행동이 부끄럽죠. 그런데, 거기서 너무 충격적인 장면들을 목격했어요. 그 일들은 지금도 세월호 만큼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어요.”

- 충격적인 장면이요?

“당시 아무것도 모르면서 노동자들 따라다니다 엉겁결에 한진중공업 담장을 넘었는데, 김진숙씨가 농성하던 고공크레인이 있는 거예요. 장기농성 내막을 듣고 현장을 목격한 건 엄청난 충격이었죠.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이 ‘죽음으로 투쟁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얘기한 적이 있잖아요... 저는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김씨가 상상도 못할 높이에서 여성의 몸으로 목숨 걸고 투쟁하는 걸 직접 본겁니다. 그걸 보면서 ‘세상이 내가 알고 있던 것과 참 많이 다르구나’ 하는 걸 느끼기도 했고요.”

노 전 대통령 발언을 예로 들던 그의 눈시울이 불거졌다. 그에게 ‘김진숙’은 어쩌면 ‘386세대’들이 품고 있는 ‘5·18 광주’에 대한 마음의 빚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김진숙(61) 씨는 한진중공업의 대규모 희망퇴직 결정에 반발하며 2011년 309일간 고공크레인 농성을 한 노동운동가다. 한진중공업은 지난 9월 동부건설 컨소시엄에 인수합병 됐지만, 김씨는 여전히 복직투쟁 중이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투데이신문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투데이신문

◇ ‘청년 몫’ 달라는 건 청년정치 미래 아니란 생각

- 입법 활동 1년 반이 흘렀어요.

“하루가 너무 짧고 아깝죠. 저희 당 당명이기도 한 기본소득 어젠다만 해도 어느 때보다 높은 관심을 끌고 있고, 관련 법안까지 낼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한계도 많이 느껴요. 작은 정당 의원이다 보니, 법안 하나 발의하는 것도 쉽지 않거든요. 기본소득 토지세법은 발의까지 8개월이나 걸렸으니까요. 정책과 정무, 당무를 혼자 하고 있는데 큰 정당은 다 역할분담이 돼 있거든요. 이걸 나눌 수 있는 동료 의원이 최소 두세 명은 필요한데, 다음 총선 때는 함께 일할 동료 의원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하하.”

용혜인 의원실은 여느 국회의원실과 많이 달랐다. 그 큰 의원실엔 보좌진들과 수시로 미팅할 수 있는 길쭉한 테이블 하나와 회의용 의자 몇 개, 탁상용 컴퓨터 한 대 올려져 있는 의원 책상 하나가 전부다. 그는 “개원일에 처음 의원실에 들어왔더니, 살고 있는 집보다 더 넓고 크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자신은 기본소득당을 대표해 자리만 지키고 있을 뿐이라고 강조한다.

- 청년정치시대가 열렸는데, 청년 국회의원은 여전히 적어요.

“일단, 기성세대에게 유리한 현재의 정치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봐요. 기탁금도 낮춰야하고요. 그러나 할당요구 방식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나쁘진 않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지 않나 싶어요. 청년들의 국회진출을 늘리려면 할당제가 아니라 필요성과 당위성이 더 가치 있고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 필요성과 당위성이라면?

“지금의 청년들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한 소통과 연결이 몸에 체화된 세대잖아요. 세상은 이미 첨단기기·시스템으로 개편돼 있고요. 그렇다면 이런 시대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중심에 서야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거란 얘기죠. 그게 사회 전반에도 좋은 현상이라 보고요. 기성세대를 향해 ‘우리 몫을 달라’고 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건 청년정치의 미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설득력도 떨어지고요.”

- 제1야당 청년 대표의 출현은 어떻게 보세요.

“이준석 대표의 정치적 정책적 견해와는 별개로, 삼십대의 제1야당 대표 등장은 의미가 있다고 봐요. 사실 기성 정당 틀 안에서 삼십대가 당선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거든요. 그런 면에선 놀랐죠. 여의도정치에 변화가 일 것이라는 기대도 살짝 했고요. 하지만, 역시 쉽지 않다는 게 확인되니까 실망도 빠르더라고요. 하하. 청년들을 나이어린 철부지 취급하는 ‘철딱서니’ 같은 단어들로 국민의힘 선대위가 이 대표를 패싱하는 걸 보면 여전히 요원하다는 생각이죠.”

- 이 대표의 당선 요인은 뭐라고 보나요.

“청년들은 청년정치인과 청년들 사이가 괴리돼 있다고들 생각하는데, 이 대표는 2030 남성들이 원하는 게 정확히 뭔지를 파악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했기 때문인 거죠.”

- 청년들의 정치권 진출을 위한 입법지원은 어떤 게 있나요.

“피선거권과 기탁금, 선거비용 보전 비율 등을 낮추는 ‘청년국회 4법’이 지금 국회 정개특위에서 논의 중에 있어요. 그럼에도 청년정치인 진출을 위해 필요한 건 그들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모아낼 건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걸 기본소득으로 추진하는 거고 이 대표는 2030 남성들의 박탈감 같은 걸 활용하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보면 내용 상 다르지만, 비슷한 면도 있다 볼 수 있죠.”

청년의 정치적 권리와 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국회의원·지방의회의원·지방자치단체의 장의 피선거권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는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지난해 12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5세 이상’이었던 현행 피선거권 연령이 ‘18세 이상’으로 하향 조정돼 고3 학생도 광역단체장 선거 출마가 가능해졌다.

- 기본소득당도 청년들이 많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기존 거대정당들이 경쟁적으로 영입하는 청년들과는 많이 다릅니다. 당원 대부분이 주 6일씩 일하고, 비정규직에 야간알바 뛰는 그런 사람들이거든요. 정치권의 청년 영입경쟁을 보면서 어디에서도 저희 당원들 같은 청년들은 볼 수가 없더라고요. 저런 영입방식으로 청년들을 대변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고요.”

- 기성 정당과 다른 점과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요.

“기본소득당은 당 대표도 30대 여성이고, 전체 당원의 80%가 20대입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청년들이 시스템이 구축돼 있는 기성 정당에서 완전히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건 불가능하더라고요. 그래서 창당을 결심하고 지금까지 왔는데, 기본소득을 통해 전 국민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는 당이 되도록 전력을 쏟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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