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前 현대제철 홍보팀장·기획실장(전무)
선발 회사의 일관제철소 ‘회사’ 대형화 논리 홍보는 참으로 오랫동안 진행됐다. 처음 현대제철은 350만톤 고로 2기(연산 700만톤)를 하겠다고 했다. 불필요한 공급과잉 이슈를 의식해서 보수적으로 계획했다가 철강 경기가 회복되고 사업 추진에 자신감이 생기자 400만톤 고로 3기(연산 1200만톤)로 최종 확정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전 세계 철강 회사들은 과잉 설비로 몸살을 앓았다. WSA(세계철강협회) 연례 회의때마다 국가별 설비감축이 주요 이슈였다. 한편으로는 철강 회사들끼리 합병을 통한 대형화가 추진되고 있었다. 독일은 티센(Thyssen)과 크룹(Krupp)이 합병해서 티센크룹철강(TKS)이 됐다. 영국의 브리티시 스틸(British Steel)과 네덜란드 후고번스(Hoogovens)가 합병해서 코러스(CORUS)로 탄생했다. 일본은 NKK와 가와사키(Kawasaki)가 합병해서 JFE로 탄생했다. 룩셈부르크의 아베드(Arbed), 프랑스의 유지노(Usinor), 스페인의 아세랄리아(Aceralia)가 합병해서 아르셀로(ARCELOR)가 됐다. EU의 LME는 미국의 ISG와 합병해서 MITTAL로 탄생했고, MITTAL은 다시 아르셀로를 인수해 아르셀로미탈(Arcelor Mittal)이 되면서 생산CAPA가 세계 최초로 1억톤이 됐다. 그러나 회사는 컸지만 제철소 평균 규모는 아르셀로미탈 700만톤, 신일철 600만톤, JFE 760만톤, 포스코 1300만톤 등 평균 670만톤 수준이었다.
선발 회사는 이러한 합병을 통한 ‘회사’ 대형화 추세에 따라 자신들도 기존 3300만톤과 인도에 계획 중인 1200만톤 제철소 브라질, 중국 등에 투자해 총 연산 5000만톤 회사로 대형화된다고 홍보했다.
그렇지만 선발 회사의 이러한 일방적·희망적 홍보에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반론을 수립하기 위해 WSD에서 발간하는 각 사별 수익성 자료로 분석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수익성이 가장 높은 4개 사의 2006년 세전 이익률이 일본 JFE 19.8%, 한국 포스코 20.5%, 대만 CSC 26.8%, 중국 바오스틸 13.2% 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회사’가 대형이 아니라 ‘용광로’가 ‘최신 대형’이었다. 당시 홍보팀에서 분석한 이러한 논리는 회사 경영진도 놀라게 했다. 그만큼 ‘회사’ 대형화 논리는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이렇게 분석한 자료를 출입 기자들에게 주면서 선발 회사에도 알려주고 반응을 취재해 보라고 했다. 그리고 초대형 아르셀로미탈도 철강 경기가 조금만 위축되면 위기를 맞을 것이라며 그 이유를 설명해 줬다. 유럽의 제철소들은 역사가 오래되고 설비가 노후화됐다. 또한 연·원료 생산지를 따라 내륙의 강과 운하를 중심으로 물류가 이뤄지므로 규모가 작았다. 노동조합의 긴 역사만큼이나 인건비 비율도 높았다. 2006년 기준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율이 포스코 5.7%, 신일철 7.0% 수준인데 반해 CORUS 15.4%, TKS 19.7%, 아르셀로미탈 24.2%나 됐다. 인당 연간생산성도 신일철은 2458톤이지만 CORUS는 469톤에 불과했다. 이에 반해 최신 대형 용광로 제철소들은 임해에 입지해서 대형 선박을 이용 최고 품질의 연·원료를 수입해서 사용하게 되므로 원가경쟁력이 있었다.
필자의 주장은 곧 입증됐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철강 경기가 위축되자 아르셀로미탈부터 어려움에 봉착했다. 기자나 언론사는 팩트에 동의하더라도 기사를 크게 다루기 위해서는 어떤 계기가 필요하다. 이를 염두에 두고 평소 기자들에게 설명을 축적해 놓은 결과 미탈이 어려움에 처하자 언론은 크게 보도했다.
선발 회사가 대형화와 관련해 후발 주자를 공격한 또 하나의 논리는 국내 설비 과잉 논쟁이었다. 우리나라 제조업 평균 영업이익률은 6% 수준이다. 2008년 선발 회사의 영업이익률은 21.3% 였다. 전형적인 국내 독점 이익이었다. 현대제철이 시장에 진입하기 전까지 이 수준이 늘 유지됐다. 그러나 현대제철과 경쟁체제가 시작되면서 낮아지기 시작해 평균 8% 수준이 됐다. 8%는 산업 평균보다는 높았지만 격세지감을 느끼는 수준이다. 선발 회사의 전·현직 임원들이 현대제철 때문이라고 여기저기에 성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독점이익과 경쟁 이익의 차이는 당연히 고객사의 이익으로 돌아갔지만 어느 고객사도 후발 주자를 옹호해 주지는 않았다.
반박 논리를 만들었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우리나라 철강 회사의 쇳물(제강) 생산능력을 조사한 결과 일관제철소 CAPA는 2798만톤이 증가했고, 전기로 CAPA는 713만톤이 증가했다. 일관제철소는 현대제철이 1315만톤 증가했는데 선발 회사는 이보다 더 많은 1483만톤을 증가 시켰다. 전기로는 현대제철은 38만톤을 감축했으나 다른 회사들이 751만톤을 늘렸다. 선발 회사는 8개 용광로 개보수를 하면서 기존 설비 CAPA를 늘렸던 것이다. 한 예로 현대제철이 2010년에 국내 최대 대형 고로(5,250M³)를 가동한다고 홍보하자 선발 회사는 한 해 앞선 2009년에 광양제철소 4고로를 3800M³에서 5500M³로 개수해 먼저 가동 시켰다. 당연히 국내 최초·최대 고로 타이틀을 홍보했다.
회사가 경쟁력 우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후발 주자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투자하게 된다. 그렇지만 어떤 현상에 대해 정확한 인과관계 분석 없이 손쉽게 후발 주자 탓으로 돌려 여론몰이하는 것에 대해서는 명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대응해야 했다. 철저한 데이터에 입각한 적시(適時) 대응으로 더 이상 ‘회사’ 대형화와 후발 주자 시장 진입 저지 논리로 괴롭히는 홍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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