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前 현대제철 홍보팀장·기획실장(전무)
2007년 1월 23일, 최고 품격을 자랑하는 종합지 J일보 1면에 <‘외환위기 10년 당진 10년’ 현장 르포, 공장·일자리가 ‘죽은 당진’ 되살렸다>는 톱(TOP) 기사가 실렸다. 이어서 4면에는 한보철강 시절과 현재를 비교하는 세 사람의 인터뷰, 5면에는 현대제철 인수 후 달라진 당진 지역경제 모습이 소개됐다. 종합지에 한 기업과 그에 따른 활기찬 지역경제 모습이 1면 톱과 전면 2개 면에 소개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보도다.
그 며칠 전, J일보 L기자의 현장 취재 협조 요청을 받고 걱정을 많이 했다. 불과 3개월 전인 2006년 10월 27일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한 당진제철소 기공식을 계기로 언론 보도가 우호적으로 조금 변했다. 그렇지만 경쟁사의 정보 흘리기와 문제를 찾아서 이슈화시키는 언론의 본성은 여전했다. 그러니 종합지 베테랑 기자가 현장 르포를 가겠다는 것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홍보인들은 트라우마가 있다. 회사에 아무리 좋은 기사라도 그 기사 속의 어느 한 줄, 단어 하나가 상사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그것은 나쁜 기사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언론인들은 기사의 어느 한구석에는 반드시 자신의 존재 흔적을 남기는 직업병이 있다.
그런데 당일 취재 지원을 다녀온 직원이 전하는 말에 필자는 둔기로 머리를 맞은 듯했다. 정확히 르포 보도 10년 전인 1997년 1월 23일 한보철강이 쓰러졌다. 한보철강의 부도는 1997년 말 IMF 외환위기로 가는 서막이었다. L 기자는 당시 재정경제원 출입기자였는데 IMF 외환위기를 사전에 경고하지 못한 것이 ‘기자로서 회한(悔恨)’으로 남아있었다고 했다. 그러한 한보철강을 현대제철이 인수해서 10년 만에 상전벽해로 변화시킨 희망의 현장을 소개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때까지 3년여 홍보를 하면서 언론인에 대한 경외(敬畏)심이 있었다. 일종의 역(逆) 화수분 같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L 기자 같은 언론인이 있다는 사실에 우리 사회의 희망을 보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 책에서 본 ‘기자는 민중의 목탁’이라는 표현이 생각났다. 당시 같이 고생한 후배들에 의하면 이때를 계기로 필자의 언론사·언론인 관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긍정·희망·자신감의 모습이 많아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L 기자의 회사 내부 설득력도 훌륭했지만 종합지 3면의 지면을 할애해 준 언론사도 대단한 결정이었다. 지난번에 소개한 현대제철 최고의 홍보 전형이었던 ‘사랑해요 현대제철’이라는 기사가 나오도록 C 기자에게 내부정보를 알려준 것도 이 르포 기사를 통해 인식하게 된 언론인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단짜리 기사 하나가 세상을 바꾸는 기폭제가 되듯이 언론인의 사명과 언론사의 영향력은 참으로 막중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 극복을 책임진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홍보로 승부한다”고 전략을 세우고 본인이 홍보와 관련된 디테일을 직접 챙겼다.(홍보 오디세이 15회 참조) 모든 정책은 사전에 언론을 통해 파장을 파악하고 다듬어서 발표했다. 한마디로 ‘소통’의 힘이다. 홍보 수단을 통해 전파가 아니라 ‘전달’이 돼 경제주체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게 했다. 홍보는 그만큼 중요하고 영향력이 있다.
‘홍보 오디세이’ 첫 회에서 소개했듯이 필자는 정몽구 회장이 일관제철소를 건설하기 위해 당진의 한보철강을 인수하는 것을 계기로 홍보 업무를 시작했다. 오늘날 현대제철은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했고 고로 철강 경쟁시대를 열어 자동차, 조선, 가전, 기계산업 등 고객에게 우수한 철강 제품을 제공하고 있다. K 제조업 르네상스의 밑바탕을 받치고 있다. 홍보인으로서 이 과정의 한구석에 있었다는 것은 큰 영광이다.
그렇지만 선발 회사의 후발 회사 견제는 집요했다. 처음에는 진입을 저지했고, 진입을 하니 이제는 스스로 주저앉도록 했다. 이 모든 과정을 예상하고 시작한 홍보였지만 오늘날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한 것은 언론인의 도움이 컸다. 대부분 언론이 이제 대한민국에도 ‘철강 경쟁시대’가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지원을 해줬다. 그러한 지원은 금융시장에도, 원료조달 시장에도, 제품 판매시장에도, 정부와 정치권에도, 시민사회에도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해 줬다.
언론으로부터 받은 또 다른 형태의 도움도 잊을 수 없다. 제철사업은 고소, 고열, 고압력, 고중량 등 중대재해 요인이 많은 사업이다. 사업 초기 안전을 위한 회사의 부주의에 대해 언론의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아주 아팠지만, 덕분에 좀 더 빨리, 좀 더 좋은 회사로 거듭날 수 있었다. 제철사업은 지역 경제에 큰 기여를 하지만 주민들에게는 불편을 주는 요소들이 있다. 이러한 지역주민들의 불편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회사를 더 친환경적으로, 더 지역 친화적으로 변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채찍의 아픔만큼 더 좋은 회사가 될 수 있었음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맞아 국내외 많은 기업들이 투자를 취소하고 사업을 축소할 때 정몽구 회장은 당진제철소의 경제적 효과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라고 지시했다. 2008년 한 해에 철강출입 기자단 전원을 네 번이나 당진제철소 건설 현장에 초청했다. 마지막 초청은 크리스마스이브 때였다. ‘하루 건설인력 1만명...현대제철판 뉴딜’, ‘건설인력 총 700만명 소요’, ‘완공땐 7만8천명 고용효과’, ‘한국 철강 대역사...투자+고용 두 토끼’. 이날 제철소 건설현장을 취재한 언론의 제목들이다. 정몽구 회장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기업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의 이러한 현장 지휘는 12월 26일자 모든 신문의 지면을 장식했다. 국민들에게 드리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됐다. 그리고 한 신문은 정몽구 회장의 이러한 집념을 담담하게 소개해 줬다. 이 기사는 ‘고독한 리더’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거듭 감사를 드린다.
홍보는 자기가 속한 조직을 ‘사회의 가치 지향’에 맞게 조율해 가는 과정이다. 사회의 가치 지향을 자기 조직에 소개해서 내재화시키고, 조직의 활동은 사회의 가치 지향에 맞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한 노력의 진정성을 언론인들은 평가해 준다. 기업의 그러한 행동이 모여서 ‘좋은 회사가 좋은 사회를 만든다.’ 이것이 홍보의 미션이고 홍보인의 자부심은 이러한 실천을 통해 자기 조직을 사회의 긍정 바이러스 집단으로 만드는 데서 나온다.
(지금까지 어설픈 글을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홍보 현장의 후배들에게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경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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