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우리의 작품을 알려야 할까요?” 최근 미술계는 유명 외국작가나 원로작가에 초점을 맞춰 전시, 홍보,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렇다보니 국내 전시에서는 신진작가의 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따라 나온다. 소수의 작가들만 주목받는, 지속적으로 되풀이되는, 미술계의 이러한 방식에 신진작가들은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현재 신진 작가의 발굴과 지원은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지원에 의존해 이뤄지고 있으며, 그마저도 ‘좁은 문’으로 불릴 만큼 치열하다. 예술적 재능이 있어도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예술가로서 인정받기란 젊은 작가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신진작가들이 직접 자신의 작품과 예술세계를 소개하는 코너를 통해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에 나서고자 한다. 팝아티스트 낸시랭과 김선 비평가가 작품에 대한 폭넓은 시각도 제공한다. 앞으로 온라인 갤러리 [영블러드]를 통해 젊은 작가들의 뜨거운 예술혼을 만나보길 바란다.
# ART STORY
안녕하세요, 평면과 입체 사이를 오가는 작업을 하는 최고래 작가입니다. 저는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것들과 맺는 다양한 관계, 그리고 그것에서 파생되는 마음과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이런 관계와 감정, 마음은 보이지 않는 찰나인데요, 그래서 변하더라도 알 수 없는 그 찰나의 순간, 불안정한 부분들이 제 작업에 중요한 시작점입니다. 이 순간들은 사람 간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어떤 동물이나 사물 혹은 상황을 보며 이입해 생기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2020년부터 지속해 오고 있는 <두 여자> 연작은 매년 매체와 설치 방식을 바꾸며 같은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두 여자> 작업은 두 여자 사이에 일어나는 미묘하고 다채로운 관계성에 주목해 그것을 수집하고 재해석합니다. 작업 속 두 여자는 엄마와 딸, 언니와 동생, 친구, 연인 등의 단어로 표현할 수 있으나, 그 단어 이상의 미묘함을 담고 있습니다. 사이가 좋은 모녀, 애증의 관계인 모녀, 남보다도 못한 자매 사이, 질투하는 친구 사이, 친구인지 애인인지 헷갈리는 사이… 자세히 쓰려고 해도 단어로 규정하기 어렵기에, 차라리 시각 언어를 통해 이 애매하고 섬세한 관계성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작업 속 두 여자의 이목구비와 배경을 생략하고 두 사람이 취하고 있는 포즈와 어지럽게 섞여 있는 색에 집중합니다. 두 사람 간의 관계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엉켜 있는 자세와 색을 보며 작가를 포함한 관람자들이 자신의 경험이나 유추를 더해가며 느낄 뿐입니다.
<두 여자> 연작 속 관계들에 이입하고 유추하는 관람법을 유도하기 위해, 관객과 가까운 설치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매년 다른 작은 주제를 바탕으로 구성됩니다.
2020년의 두 여자 작업은 페인팅을 벽에 걸지 않는 방식으로 설치합니다. 두 여자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보여주었기에, 일반적이지 않은 설치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두 여자의 다채롭고 미묘하고 명확하지 않은 관계성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림이 바닥을 바라보며 천장에 매달려 있고, 창문에서 직사광선을 듬뿍 받는 모습과 벽의 모서리에 쌓여있는 방식은 반항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 ARCHIVE
두 여자의 이야기를 확장하는 시도를 한 2021년에는 단면의 작은 그림이 아닌, 큰 천의 양면에 각기 다른 두 여자를 그려 통로 공간에 설치합니다. 양면의 그림이 서로의 반대편에 비쳐 각자의 이미지를 간섭합니다. 동시에, 통로를 오가는 관람객의 움직임에도 두 그림은 흔들립니다. 이렇게 그림과 관객은 서로의 간섭을 주고 받으며 교류합니다. 설치 또한 낚싯줄이나 와이어를 사용하지 않고, 작업의 모서리에서 뻗어 나온 크로쉐(코바늘을 사용한 뜨개 기법)를 통한 알록달록한 실로 매달아, 공간에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분위기를 주었습니다. 작업과 공간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끼치고 상호작용 합니다.
양면성과 교류의 설치 방식에 촉각을 더해 확장하고자 한 2022년에는 터프팅 이라는 기법으로 양면성을 더 부각합니다. 핸드 터프팅 기법(기계에 실을 끼워 천에 색실을 심는 직조 기법)을 활용해 다양한 색과 두께의 실을 사용합니다. 2020년과 2021년 두 여자 작업에서 물감을 이용해 작업했다면, 2022년부터는 실을 물감만큼이나 자유롭고 다양하게 사용하고자 했습니다. 핸드 터프팅 기법의 특성상, 실이 천에 완전히 고정돼 있지 않아서, 뒷면에 라텍스 본드를 발라서 실과 천을 고정해야 합니다. 라텍스 본드를 바른 후, 그 면에 천을 덮어서 안 보이게 마무리하는 것이 러그를 만드는 과정의 마무리인데, 저는 앞면과 뒷면 모두가 좋았고, 그것을 감추고 싶지 않았기에 그것을 적극 노출합니다. 심지어 뒷면이라고 말하는 납작하고 본드가 발리는 부위는 사실상 작업을 하면서 제가 마주하는 면이기도 합니다. 가까이 가면 라텍스 본드의 꾸리 꾸리한 냄새, 누리끼리한 색, 번들거리는 질감이 더 잘 보입니다. 복슬복슬하고 알록달록한 앞면은 사실 작업을 하면서 한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같은 그림이지만 양쪽이 갖는 다른 질감과 타인의 태도, 대비가 재미있었고 이것을 보여주고자 양면이 모두 보이지만 그 양면은 바로바로 비교할 수 없는 설치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3개의 면을 가진 병풍 구조물은 터프팅 작업을 할 때 사용한 틀 형태의 연장과 결합입니다. 병풍은 어떤 간격으로 펼쳐두냐에 따라 공간에 차지하는 면적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관람객의 관람 동선도 달라집니다. 작업을 둘러서 보다가 가까이 가기도 하고, 양면을 보기 위해 왔다 갔다 움직입니다.
2023년의 두 여자 작업은 작업보다 공간이 먼저 정해졌습니다. 3층짜리 세모 모양 건물을 단독으로 사용하는 기회가 생겨 공간을 재미있게 활용하고 싶었습니다. 이쯤에 인간관계가 서로 다 영향을 주고 연결돼 있다는 생각이 주로 들었는데, 서로 연대하기도 하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영향을 끼친다는 걸 더 깊이 깨달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여러 쌍의 여자들이 한 프레임 안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작업이 건물의 옥상 외벽에서 내려와 1층으로 들어오고, 건물 안에서 다시 옥상 쪽으로 올라가는 것을 구상했습니다. 건물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하나의 링 모양의 설치입니다. 건물이 모두 통유리라서 실내·외가 연결된 느낌이 듭니다. 건물 안쪽에 설치한 부분에는 실내지만 실외처럼 우산을 쓴 사람을 양면에 한 명씩 그려서 건물 밖과 안에서 보이게 했고, 건물 밖에서 1층으로 링이 들어오는 부분에서는 누워있는 여자가 실외와 실내에 걸쳐져 있는 모습으로, 실내로 발걸음을 유도하고자 했습니다. 문을 열면 누워있는 다른 여자의 얼굴이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올해의 두 여자 작업은 공간과 일상에 스며든 순간을 적극적으로 보여줍니다. 반투명한 쉬폰 천에 두 여자의 실루엣 형태로 바느질된 ‘꼬아 만든 실’은 다양한 색의 양모와 자투리 실, 머리카락 등을 섞어서 꼬아 만든 것으로, 앞서 두 여자 연작에서 계속 지속적으로 중요하게 사용된 ‘색’을 응축해 보여줍니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하나의 ‘선’ 같아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았을 때 부지런히 섞여 있는 실의 색은, 가까이할수록 미묘함이 더 잘 느껴지는 두 여자의 관계성과 닮아 있습니다. 30미터가 넘는 큰 공간을 아우르는 반투명한 천과 그 위의 두 여자의 실루엣은 천 건너편의 공간이 비치며 작업과 겹쳐 보이고, 지나가는 사람의 모습 또한 겹쳐 보여 일상과 맞닿아있음을 보여줍니다. 다가오는 8월 8일부터 9월 1일까지 서리풀청년아트갤러리<털요정> 전시에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 ARTIST STORY
지금까지 이야기해 왔던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관계들과 마음에 대한 작업을 더욱 세분화하며 확장해 보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입니다. 더 나아가, 제가 자주 쓰는 다양한 패브릭 재료와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 그리고 작업에 표현되고 조합된 색의 모습으로 저의 작업에 더 이입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감각들에 집중해 보려 합니다. 말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작업을 바라보며 같은 공간에 있기만 해도 느낄 수 있는 작업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ART CRITICISM
최고래 작가는 현대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자신과 타인을 바라보는 섬세한 관찰력으로 인간에게 ‘관계’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아티스트다. 최고래의 작업은 주요 주제인 인간의 모습은 정체되지 않았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동적인 상태를 유지한다. 최고래의 인간탐구는 변화하는 시간, 지속되는 관계들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타인과의 신체적 뒤얽힘은 관계를 상징하는 제스처로 서로 간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현실 속 인간의 모습을 평면과 설치작업에 투영시키면서 최고래는 인간관계로부터 드러나는 개인의 회의적인 감정에서부터 인간의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다채로운 삶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최고래의 인간의 다양한 모습은 지금 우리, 서로 간의 얽혀있는 관계에서 이뤄지는 마음과 감정을 흔든다. (김선 비평가)
평면과 입체 사이를 오가는 작업을 하는 최고래 작가는 일반적이지 않은 설치 방식을 선택했다. 이를 통해 평면 페인팅 작업에서 느껴질 수 있는 지루함에서 탈피할 수 있는 순간을 느낄 수 있다. 찰나의 순간, 불안정한 부분들이 작가 작업에 중요한 시작점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순간들은 사람 간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어떤 동물이나 사물 혹은 상황을 보며 이입해 생기는 마음이기도 한다는데 무엇보다도 작업과 공간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끼치는 상호작용이 작가 작품의 핵심으로 표현됐다. 두 여자 관계성의 주제로 풀어나가는 일관성 있는 작품들에서 실험적인 요소의 시도가 매력적인 장점인 것 같다. 다만, 그림이라는 페인팅에 있어서 좀 더 세련된 구도감각과 조형감각의 실력을 앞으로 노력해 함께 보여준다면 ‘Emerging Artist’ 로서 자리매김은 자신의 꿈 꾸는 대로 현실로 이뤄질 것이라 기대한다. (팝아티스트 낸시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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