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휴식은 저항이다> [사진제공=책짓는 아재]
도서 <휴식은 저항이다> [사진제공=책짓는 아재]

<휴식은 저항이다>라는 특이한 책을 읽었다.

저자 트리샤 허시(Tricia Hersey)는 흑인이고, 여성이며, 흑인해방신학자이다(흑인해방신학은 정치신학이라 불리는 진보 혹은 좌파 계열의 신학 사상이다). 낮잠사역단(Nap Ministry)을 설립해 단체 낮잠, 워크숍, 강연, 코칭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낮잠 주교(the Nap Bishop)로 알려져 있다.

한국과 흑인해방

<휴식은 저항이다>를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낮잠으로 자본주의와 백인우월주의를 극복하자고 주창하는 선언문이다. 실제로 수시로 선언이 쏟아진다. “휴식은 저항이다. 이것이 우리의 구호이자 주문이다. 외침이다. 휴식은 자본주의와 백인우월주의를 뒤흔들고 밀쳐내기에 하나의 저항이다.” (23쪽) 저자는 예언자이다. 원서 제목이 <Rest Is Resistance: A Manifesto>이다.

이렇게 매니페스토를 천명하고(원서가 22년 10월에 출간됨), 이듬해 4월에 실천 항목이 기재되어 있는 50장의 카드 묶음(Deck)을 출간했다: <낮잠 사역 휴식 카드: 과로 문화에 저항하기 위한 50가지 실천 항목들(Nap Ministry's Rest Deck : 50 Practices to Resist Grind Culture)>. 최근에는 후속편(“Rest Is Resistance, 2”)으로 <우리는 휴식할 것이다!: 탈출의 기예(We Will Rest!: The Art of Escape)>도 출간됐다.

그런데 질문이 제기돼야 할 것이다. 도대체 한국과 흑인해방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아무 관계도 없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미국이나 남아공 등과 궤를 달리한다. 재미교포는 어떤지 몰라도 우리가 흑인을 차별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한국과 흑인해방신학은 별다른 관련이 없다. 하지만 낮잠과 휴식을 반자본주의적 맥락에서 다루는 저자의 서술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낮잠과 자본주의

트리샤 허시의 주장은 실로 매력적이다. 휴식은 저항이다. 좀 더 풀어 말해보자. 낮잠을 포함한 휴식은 노동이 떠받치는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의 수단이다. 심지어 생존과 치유의 방편이다. 그래서 서문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나는 쉬었기에 살아남았다.” (18쪽) 어느 노동자가 솔깃하지 않겠는가.

사실 이 주장이 트리샤 허시 만의 주장일 리도 없다. 마르크스의 사위로도 유명한 폴 라파르그의 작품 두 권이 하나로 묶어 봐도 비슷한 주장이 될 것이다. 하나는 <자본이라는 종교(La religion du Capital)>(새물결)이고, 다른 하나는 <게으를 수 있는 권리(Le droit a la paresse)>(새물결)이다. 재밌다. 그래서 당대에는 장인보다 더 잘나가는 작가였다. (역자는 영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프레인의 <일하지 않을 권리>를 언급했다).

현대에 와서 보자면, 미국의 진보적이고 복음적인 신학자 월터 부르그만의 저작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안식일은 저항이다(Sabbath as Resistance)>( 제목도 유사하고, 방향도 비슷하다. 일주일의 하루를 온전히 안식하는 것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균열을 내는 방책이라는 것이다.

낮잠과 치유

낮잠사역단의 4대 교리 가운데 세 번째가 낮잠에 대한 것이다. “낮잠은 상상과 발명과 치유의 관문을 열어준다.” 사실 이 낮잠은 휴식(속도 줄이기, 충분한 수면, 10분간 소파에서 명상하기, 10분간 눈 감고 있기, 창밖을 바라보며 공상하기, 기도하기 등)의 대유법적 표현이라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물론 낮잠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나도 오늘 낮잠을 20분 잤다.

집단 낮잠은 낮잠 사역단의 기원이기도 하다. 2017년 5월 21일 일요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집단 낮잠 행사에 40명이 몰렸다. 신학대학 졸업을 앞두고 여기저기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에 일회성으로 열었던 행사였다. 하지만 뜻밖에 낮잠 사역의 가능성을 보았기에 곧바로 그녀는 이 일에 풀타임으로 뛰어들었다.

물론 흑인신학자 제임스 콘에 이론적 영향을 받았고(81쪽), 존 블래신게임(John W. Blassingame)이 편집한 <노예 증언(Slave Testimony)>이 서사적 근간을 제공해 줬다(119-120쪽). 하지만 결국 그녀가 목격한 경험이 가장 핵심일 수밖에 없다. 낮잠에 사람들이 끌린 것이다. 낮잠이, 그리고 휴식이 해방과 저항이 되고, 치유와 회복이 돼서인 것이다.

“휴식은 가장 깊은 자아로 통하는 치유의 관문portal이다. […] 휴식은 저항이다. 운동은 진정한 본성을 되찾게 하는 연결 고리이자 통로이다. 우리는 껍질을 벗고 자본주의와 백인우월주의의 공포를 겪기 전의 자신으로 돌아간다.” (23쪽)

<strong>바벨 도서관의 사서</strong><br>인간은 세우고 신은 허문다.<br>인간의 지식 탐구는 끝이 없는 수고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앎에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br>나 역시 마찬가지다.<br>나의 소박한 지적 탐구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br>
바벨 도서관의 사서
인간은 세우고 신은 허문다.
인간의 지식 탐구는 끝이 없는 수고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앎에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의 소박한 지적 탐구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집단 낮잠 체험이 사람들을 사로잡은 것은 함께 쉬는 것에 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집단적으로 쉬면서 과로문화에 맞추어진 우리를 해방할수록 껍질이 차차 벗겨지며 진실이 드러난다.” (192쪽) 동의한다. 혼자 쉬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다른 OECD 가입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초과근무를 하는 한국 노동문화는 영혼과 육체에 폭력적이다.

우리 모두가 함께 쉰다면, 이 폭력적인 문화가 바뀔 것이다.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홀로 쉬고, 함께 쉬어야 한다. 휴식을 결단해야 할 뿐만 아니라 휴식 선언도 해야 한다. “마음에서 우러나 말하고, 큰 소리로 속삭이고, 잠들면서 반복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자. “우리는 쉴 것이다! 쉴 것이다! 쉴 것이다!””(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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