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80여명 투입…안전관리책임 관계자 다수 입건돼
경찰 “사고 원인은 물론 구조적 문제까지 조사 할 것”
사측-유족 협상은 결렬…대책위 ‘노숙 농성’ 돌입 앞둬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6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인근에서 고 김충현씨와 관련해 대책위 관계자로부터 요구안 서한을 직접 받기 전 기다리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고(故) 김충현씨가 사고로 목숨을 잃은지 2주가 지난 가운데, 이와 관련해 경찰과 노동 당국이 강제수사에 나섰다.

태안화력 故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와 사측 간 교섭은 최종 결렬됐다. 이후 대책위는 대통령실과 정부를 상대로 한 투쟁에 집중할 방침이다.

17일 충남경찰청,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충남경찰청 형사기동대와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은 전날 오전 10시경 인력 80여명을 투입해 한국서부발전과 한전KPS 본사, 현장 사무실, 2차 하청업체인 한국파워O&M 등에 대해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충남경찰청 김상훈 형사기동대장은 이날 태안화력발전소 앞 기자회견을 통해 “안전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다수의 관계자들을 입건했다”며 “(한전KPS 측의) 간접적이거나 실질적인 작업 지시 정황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해당 사망 사고와 관련해 한국서부발전과 한전KPS의 작업지시 여부, 2인 1조 작업 규정 준수, 방호장치 설치 여부 등을 중심으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정황을 조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양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핵심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번 수사 결과에 따라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적용 여부도 본격적으로 가려질 전망이다.

경찰은 이날 수급한 증거를 면밀히 분석해 김씨가 작업 중 사고를 당한 자세한 원인은 물론 구조적 문제까지 들여다본다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 또한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을 포함해 한전KPS 등 원·하청 관계자 다수를 수사 대상에 올린 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이날 역시 작업장 내 끼임 방지를 위한 안전장치 설치에 대한 책임 주체와 원청의 작업지시 정황 등을 파악하기 위한 증거물 확보에 중점을 두고 압수수색을 펼쳤다.

앞서 김씨는 지난 2일 오후 2시 30분경 태안화력 내 한전KPS 태안화력사업소 기계공작실에서 쇠막대를 절삭·가공하는 작업 중 공작기계에 끼어 사망했다. 그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 하청업체인 한전KPS의 2차 하청을 받은 한국파워O&M 소속이었는데, 혼자 작업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가 지난 1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가 지난 1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노사 교섭도 결렬…대책위 “처벌불원서 요구 때문”

수사당국이 원인 규명에 나선 가운데, 유족 측 대책위와 사측 간의 교섭은 끝내 결렬됐다. 대책위는 교섭 결렬 이유에 대해 사측이 처벌불원서 작성을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대책위는 한국서부발전, 한전KPS, 한국파워O&M과 지난 12일부터 전날 새벽까지 2차례의 본교섭과 6차례의 실무교섭을 진행했다.

결렬된 후 대책위는 입장문을 통해 “사측은 위험의 외주화를 멈추기 위한 한전KPS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며 교섭을 파행으로 몰았다”며 “심지어 유족이 참석한 교섭자리에서 유족의 뜻에 반해 처벌불원서를 써줄 것을 고집하며 중대재해처벌법 처벌을 적극적으로 회피하려는 반인륜적 모습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 역시 6년 전 약속에 대한 이행 책임이 있음에도 그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며 “비서실장이 대책위의 요구안을 받아가며 해결의 의지가 있는 것처럼 큰소리만 치더니 정작 교섭이 진행되는 순간에는 발을 뺐다”고 비판했다.

이후 대책위는 오는 19일부터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노숙 농성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들은 △대통령실·국회·정부 부처와 故김충현 대책위 간의 협의체 우선 구성 △노조·유족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 구성 △원·하청의 사과와 유족 배·보상 △중대재해처벌법 엄정 적용 통한 원·하청 책임자 처벌 △위험업무 2인 1조 △발전소 폐쇄 관련 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이와 관련해 한국서부발전과 한전KPS는 별도 입장을 담은 자료를 내지 않았다. 다만 양측은 현재 정확한 원인 파악을 위한 관계기관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에 성실히 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궁극적으로 이번 수사가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위반 여부에 따라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L-ESG평가연구원 김성희 원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원청의 책임은 분명하다. 외주화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기술적 외주가 아닌 단순 인건비 절감을 위한 ‘인적 외주화’가 반복되는 구조가 핵심”이라며 “수사는 단순 처벌을 넘어 이런 구조적 책임을 규명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기술·전문성에 기반한 합리적 외주화가 아닌 단순 인건비 절감을 위한, 즉 ‘위험의 외주화’ 금지 원칙을 강화하고 원청의 책임을 실질화하는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며 “다단계 하청 구조를 제한하고 직접 고용 확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실질적 보호장치가 강화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대책위는 협상이 결렬됐지만 유족의 뜻에 따라 고인 장례식을 진행하기로 했다. 고인이 사망한 지 16일 만이다.

오는 18일 오전 8시 발인 후 오전 9시 30분에는 고인이 근무하던 태안화력발전소 정문 앞에서 영결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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