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겉보다 중요한 건 작동 방식이다. 정치는 말과 행동으로 움직이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고유한 ‘문법’이 존재한다. 법과 제도의 언어, 권력의 계산, 대중의 심리, 미디어 전략과 정치 언어 등이 어떤 타이밍에 움직이며, 무엇을 감추고 드러내는지는 단순한 논쟁 너머의 작동 규칙을 따른다.
〈정치문법〉은 한국 정치의 핵심 이슈와 정국 전개를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닌 정치 구조, 전략, 심리, 제도 작동 방식의 측면에서 분석해본다. 정치를 이해하고 싶다면, 정치의 문법부터 파악하라.
【투데이신문 박애경 발행인】 정치는 단순한 말의 충돌이 아니라 ‘누구를 위해 어떤 구상을 관철시킬 수 있는가’의 기술이다. 특히 당권 경쟁은 그 정당이 향후 어디로 나아갈지를 결정짓는 이정표다. 그런 의미에서 8월 2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는 단순한 지도부 교체 이상의 상징성을 지닌다. 민주당의 정체성과 전략은 물론 이재명 정부의 국정방향까지 좌우할 중요한 선택의 시간인 것이다.
정청래·박찬대 두 당권 후보는 막바지 당심을 파고들기 위해 점점 더 강한 언어로 존재감을 어필하고 있다. ‘누가 더 선명한 개혁추진자이자, 강력한 투사인가’를 놓고 승부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박찬대, ‘강성 이미지’로 전환…막판 뒤집기 노린 승부수
초반 ‘온건하고 안정적인 리더십’을 내세우던 박찬대 의원은 충청·영남 순회 경선에서 정청래 의원에게 연패하면서, 태도를 선회해 투사적 메시지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최근 그는 “윤석열·김건희 등 내란세력을 햇빛 아래 두지 않겠다”, “내란종식특별법·검찰청 폐지” 등 강경한 발언으로 자신의 선명성을 부각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 대선 과정에서 벌어진 국민의힘 후보 교체를 ‘내란 동조의 대선 쿠데타’라고 규정하고, 국민의힘 의원 45명 제명·고발 방침까지 밝혔다. 이른바 ‘야멸찬 5대 개혁’을 내세우며 내란, 검찰, 김건희 특검 등을 전면 이슈화한 것도 당심의 강성 성향을 의식한 전략이다. 이는 정청래의 ‘파이터’ 선명성에 맞불을 놓으며 자신의 개혁성과 투쟁성을 부각하려는 의도이다.
박찬대의 태도 돌변은 지역별 순회 경선에서 정 의원 후보에게 밀리면서다. 지난 29일까지 누적된 순회 경선 득표율은 정 의원이 62.65%(7만6010명), 박 의원이 37.35%(4만5310명)로 25%p 격차로 뒤처지고 있다.
여론의 흐름도 박 후보에게 불리한 상황이다. 민주당 지지층 내 차기 당대표 적합도 조사에서 정청래가 박찬대를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29일 나왔다.
뉴시스가 여론조사업체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27~28일 이틀간 전국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층(471명) 내 차기 당대표 적합도는 정 후보가 56.1%, 박 후보가 33.3%로 집계됐다. '잘 모르겠다'는 유보층은 10.6%였다.
이번 조사는 ARS 자동응답(무선·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식 100%)으로 이뤄졌다. 응답률은 2.1%,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러한 상황은 박찬대를 ‘온건한 리더십’에서 ‘투사적 리더십’으로 전향케 했다. 권리당원 비중이 높은 당내 구조에서 ‘누가 더 강하게 싸우느냐’가 당심을 끌어안는 핵심 척도가 되고 있다. 당내 한 관계자는 “정청래의 투쟁적 언어는 강한 인상을 남긴 데 반해, 박찬대는 중도적 이미지 때문에 초반 밀렸다”며 “강성 메시지로 이미지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라 해석했다.
정청래, 지지층이 원하는 ‘파이터 리더십’으로 당심 결집
반면 정청래는 일관되게 ‘파이터(Fighter)’로서의 이미지를 보여 왔다. 국회 투쟁의 선봉장, SNS 전사로서의 존재감은 이번 당권 레이스에서 명확한 브랜드가 됐다. 특히 정 후보는 “민주당은 개혁을 완수해야 한다. 싸움을 피하면 지지층은 등을 돌린다”며 강한 개혁추진자이자 파이터로서의 선명성을 고수해왔다.
이러한 태도는 친명계 권리당원들의 성향과도 부합한다. 정청래는 친명 직계는 아니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과 코드가 맞는 정치인이다. 특히 ‘나는 꼼수다’, ‘뉴스공장’, ‘매불쇼’ 등 채널을 통해 오랫동안 당원들과 직접 교감해 온 것도 한 몫을 했다. 당원들과의 ‘감정 밀착도’가 박찬대 보다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당원들은 선명하고 직설적인 리더십을 원한다. 정청래의 ‘내란 종식’, ‘검찰·사법·언론 개혁 골든타임’ 같은 메시지가 강하게 울리는 이유다. 그의 과거 법사위원장 활동,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전면전을 이끌던 모습은 권리당원들에게 ‘사이다’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정청래의 ‘파이터 리더십’은 민주당 강성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는 효과적이겠지만, 자칫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 노선과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까지 권리당원 투표가 진행된 충청·영남권의 선거인 수는 약 21만명. 민주당 전체 권리당원 111만여명 중 약 90만명은 아직 표를 행사하지 않았다. 이들은 호남 약 36만명, 수도권·강원·제주 54만명으로 추산된다. 특히 권리당원 투표는 최종 득표에 55%를 반영하기 때문에 이들의 선택이 결정적인 힘을 지닌다. 남은 권리당원의 향방에 따라 ‘정청래 굳히기’로 이어질지, ‘박찬대 역전극’으로 판세가 뒤집힐지 두고 볼 일이다.
강도만 다를 뿐, 차별화는 실종
문제는 두 후보자 모두 지나치게 ‘강한 메시지’ 경쟁에 몰두하면서, 당대표 선출 이후 당 운영이 ‘투쟁 일변도’로 굳어질 가능성이 있다. 박찬대 후보의 야당을 향한 고발 공세는 실제 입법 추진까지 이어질 경우 정치적 긴장을 한층 고조시킬 수 있다.
한 민주당 의원은 “야당을 겨냥한 선명성 경쟁은 선거 국면에선 필요할 수 있지만, 선거 이후에도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면 불필요한 정쟁으로 당 전체가 발목 잡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전략의 차별성도 없다는 것이다. 메시지는 비슷한데, 누가 더 강하게 외치는지에 대한 경쟁처럼 보인다. 이러한 싸움은 유권자에게는 결국 ‘같은 말을 누가 더 많이 했는가’로 들릴 수 있다.
누가 당대표가 되든 차별화된 전략과 리더십 없이 ‘투쟁 일변도’로 나아간다면, 향후 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주의 국정운영 기조와 상충될 수 있고, 나아가 국민의 정치적 피로감을 부를 수 있다.
민주당 전당대회, 전략과 체제구상의 변곡점
전당대회를 앞두고 박찬대는 방향을 급선회하며 강경 노선에 편승하고 있고, 정청래는 일관된 ‘투쟁 정치’로 당심을 결집시키고 있다. 정치의 본질은 관철이며, 리더십은 강한 말보다 긴 호흡이 필요하다.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내는 두 후보자 중에서 유권자는 어떤 선택을 할지 두고 볼 일이다.
이번 8월 2일 고양 킨텍스에서 열리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는 단순히 당권 경쟁을 넘어,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 국정 운영과 당심이 요구하는 강성 노선 사이에서 당의 정체성을 재정의하는 시험대다. 또한, 민주당의 단기 전략은 물론 중장기 체제 구상까지 좌우할 변곡점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국민 앞에 어떤 정당으로 서게 될지를 결정짓는 출발점에 정치문법이 잘 적용되길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