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홋카이도 복지 현장에서 얻은 통찰

△ 대한사회복지회 강대성 회장
△ 대한사회복지회 강대성 회장

며칠 전, 일본 홋카이도의 사회복지 현장을 돌아보는 연수에 참여했다. 단순한 시찰을 넘어 사회복지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뜻깊은 여정이었다. 

특히 츠시마의료복지그룹과의 만남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츠시마 노리아키 회장은 그저 조직 운영자가 아닌, 지역 고령화 문제를 스스로의 소명으로 받아들인 리더였다. 의료와 복지를 연결하는 통합 모델을 기반으로 일본의료대학 포함 11개의 법인을 운영하고 있었고, 그의 경영 철학과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감은 ‘지속가능한 공생’을 향한 집념으로 읽혔다. 

‘어세스먼트 스테이(Assessment Stay)’는 그룹이 운영하는 노인요양시설에 도입된 제도인데, 눈에 띄게 주목할 만하다. 한국은 어르신들이 요양원에 입소하면 그 곳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츠시마의료복지그룹은 입소 3개월 동안 평가 과정을 거쳐 재가 생활로의 복귀를 목표로 한다. 한국은 ‘돌봄의 종착지’라면 일본은 ‘돌아가는 삶의 중간 정거장’인 셈이다. 

평가 방식은 더 인상 깊다. 의사 1명이 ‘가능/불가능’을 판단하는 구조가 아닌, 물리치료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영양사 등 모두가 함께 모여 논의하는 다학제 팀이 구성돼 있다. 이들은 어르신의 신체 기능, 인지 능력, 정서적 상태에서 나아가 가족의 지원 가능성, 지역 자원과의 연결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의사결정을 내린다. 한 사람의 삶을 존중하는 이 방식은 진정한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돌봄’을 실감하게 했고, 절로 감탄이 나왔다. 

이는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통합돌봄’의 구체적인 구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커뮤니티케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지만, 아직 그 개념은 추상적인 경우가 많다. 반면 츠시마그룹의 제도는 이를 구체적인 서비스로 구현하고 있어 참고할 만한 좋은 사례로 배울 점이 많다. 

‘공생사회(Symbiotic Society)’에 대한 철학 역시 일본의 복지 모델에서 눈 여겨봐야 한다. 일본은 어린이, 장애인, 고령자, 외국인 등 다양한 사회 구성원이 하나의 커뮤니티 안에서 인격을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구조를 제도화하고 있다. 한국은 종종 복지를 ‘약자를 위한 제도’로 이해하는 것에 반해, 일본은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기반’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러한 차이는 실천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공생’의 철학은 복지 영역뿐 아니라, 지역 경제를 보호하려는 일본의 정책에서도 나타난다. 일본은 지역마다 고유의 과자, 사케, 공예품이 있고 이 제품들은 해당 지역에 가야만 구매할 수 있다. 한국처럼 온라인 쇼핑이 충분히 가능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일부러 불편함을 선택하고 있었다. 지역 상권과 공동체 기반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해당 지역 방문을 유도하고, 그 안에서 지역 상생을 도모하는 것이다.

사실 유사한 사례를 한국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대전의 명물로 손꼽히는 빵집 성심당은, 큰 인기를 얻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전 외 지역에는 지점을 두지 않는다. 최근에는 ‘저희 매장은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용처가 아니므로 혜택 적용이 불가합니다’라는 공지를 SNS를 통해 올려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자칫 비난을 받을 수도 있는 문구였지만, 지역 내 소상공인 빵집을 보호하기 위한 대표의 속뜻이 느껴졌다. 

또한 성심당은 지역 내 나눔 활동도 활발히 실천하고 있다. 1956년 설립 이후 69년째 당일 팔리지 않은 빵들을 모아 다음날 아침 복지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이렇듯 지역과 함께 살아가려는 ‘공생의 자세’는 거창한 이상이 아닌 내 주변의 작은 존재를 살피고 배려하는 일상 속 실천이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빠르게 늙어가고 있고, 지방은 인구 소멸의 위기를 맞이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복지의 양적 확대만이 아니다. 삶을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 공동체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필자는 일본의 복지 현장에서 그것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았다. 우리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을 뿐, 이미 누군가는 실천하고 있다.

이제는 한국의 지역사회, 복지 현장에서도 이런 변화의 바람이 불기를 기대해본다.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고, 서로를 지지하며 살아가는 따뜻한 공생사회는 ‘함께’라는 단어를 마음에 품는 그 순간, 이미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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