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중동 공급 확대와 수요 부진 겹치며 장기 불황
이달 말 정부 후속 지원책 발표 예정, 업계 관심 집중
설비 통합·M&A·세제 지원 등 구조 재편 방안 검토
【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국내 석유화학업계가 중국·중동발 고급 과잉으로 인해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후속 지원책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업계는 원가 절감과 규제 완화를 절실히 호소하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정부가 경영성만 고려한 채 구조조정을 추진하면 산업의 장기 경쟁력이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19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석유화학산업 구조 재편 방안’이 이달 중 발표될 예정이다. M&A, 설비 통폐합, 신사업 전환 등 구조조정에 나선 기업에 대해 정부가 금융·세제·행정 지원을 패키지 형태로 뒷받침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정유·석유화학사 간 설비 통합을 지원하는 방안도 논의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석화업체가 독자 생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유사가 원유 정제 과정에서 생산하는 나프타를 저가로 공급받게 되면 석유화학 제품의 원가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업계는 이 밖에도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나 고부가가치 소재 전환을 위한 세제 인센티브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도 기업들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하는 것은 공정거래법 규제의 한시적 완화다. 현행 제도 아래에서는 기업 간 협의나 설비 조정 논의가 담합으로 간주될 수 있어 구조조정 추진의 걸림돌이 돼왔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까지의 대책만으로는 업계가 느끼는 어려움을 해소하기엔 한계가 있다”며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기업들 사이에서도 실질적인 협력이 논의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중동과 중국의 공급 확대에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인한 수요 부진이 겹치며 장기 불황에 빠져 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실적 악화와 재무 불안에 동시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최대 수출국이던 중국은 대규모 설비 증설과 정부 지원을 앞세워 자국 내 생산에 집중하며 시장 판도를 뒤집었다. 중국은 2020년대 들어 에너지·화학 자급률 70% 달성을 목표로 내걸고, 나프타분해설비(NCC) 등 생산 설비를 신·증설해왔다. 그 결과 에틸렌 생산능력은 2014년 1950만톤에서 2024년 5274만톤으로 10년 만에 3배 가까이 늘었다.
이 같은 구조적 변화와 글로벌 수요 둔화가 맞물리면서 국내 기업들은 직접적인 충격을 받고 있다. 여천NCC가 적자 누적 끝에 부도 위기에 몰려 추가 출자와 유상증자 등 고강도 구조조정에 직면한 대표적 사례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상반기 별도 기준 1681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 전년 동기(1399억원)보다 적자 폭이 20.2% 확대됐다. LG화학은 684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전년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섰고, 한화솔루션도 1863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 전년 동기(893억원) 대비 적자 규모가 두 배 이상 불어났다. 국내 석화업계 빅4로 꼽히는 LG화학·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금호석유화학 중 금호석유화학만 132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흑자를 유지했다.
실적 지표도 뚜렷한 하락세다. 올 상반기 주요 석유화학사의 평균 가동률은 전년 대비 큰 폭으로 낮아졌고, 손익분기점으로 꼽히는 70~80%를 밑도는 기업이 속출했다. 롯데케미칼의 NCC 가동률은 81.0%에서 64.4%로, 폴리에틸렌은 88.8%에서 71.7%, 폴리프로필렌은 88.5%에서 72.8%로 각각 15%포인트 이상 줄었다. LG화학의 전체 가동률도 78.0%에서 71.8%로 하락했으며, 금호석유화학 합성수지 부문은 60%를 밑돌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과 중동발 공급 확대에 수요 부진까지 겹치면서 가동률이 손익분기점에도 못 미치고 있다”며 “기업 입장에선 설비를 돌릴수록 손해가 커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원책의 속도감은 중요하지만 정유사와 석유화학사 설비 통합이 단순한 효율성 문제가 아니라 산업 구조와 경쟁 구도에 큰 파장을 미칠 수 있다며,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경우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은 중동식 일관공장 모델 적용이 어렵고, 초거대 기업의 등장에 따른 공정거래법 문제와 기술적 고려 부족, 경영상 효과의 한계가 동시에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정유사와 석유화학 설비 통합이 실제로는 운영상의 통합일 뿐, 공장을 옮기거나 설비를 재배치하는 중동식 일관공장 모델은 불가능하다”며 “초거대 기업이 등장하면 공정거래법 등 규제 문제가 불거질 수 있고, 기술적 이해 없이 경영 중심의 구조조정만 추진될 경우 산업 경쟁력 강화 효과도 제한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획일적 정부 주도보다는 기업 자율에 기반한 점진적 구조조정이 바람직하다”며 “기술적 현실을 충분히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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