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겉보다 중요한 건 작동 방식이다. 정치는 말과 행동으로 움직이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고유한 ‘문법’이 존재한다. 법과 제도의 언어, 권력의 계산, 대중의 심리, 미디어 전략과 정치 언어 등이 어떤 타이밍에 움직이며, 무엇을 감추고 드러내는지는 단순한 논쟁 너머의 작동 규칙을 따른다.
〈정치문법〉은 한국 정치의 핵심 이슈와 정국 전개를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닌 정치 구조, 전략, 심리, 제도 작동 방식의 측면에서 분석해본다. 정치를 이해하고 싶다면, 정치의 문법부터 파악하라.
【투데이신문 박애경 발행인】 정치는 단순한 공방을 넘어 권력의 작동 방식을 드러내는 무대다. 지난 15일 열린 국회 대정부질문 첫날, 여야는 각각 ‘내란 청산’과 ‘정권 무능론’을 내세우며 정면충돌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해산론과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론을 통해 사법·정당 구조를 흔드는 전략을 펼쳤고, 국민의힘은 내란특별재판부 위헌론과 이재명 대통령 책임론을 전면에 내세워 맞섰다. 이 날의 정치문법은 ‘의례적 질의응답’이 아니라, 국가 권력의 정당성과 제도 운영을 둘러싼 대격돌이었다.
민주당 직접공세, ‘내란극복’과 ‘정당해산론’
민주당은 이날 대정부질문을 단순히 정부 성과 검증이 아닌 ‘12·3 내란 청산’의 장으로 규정했다. 박성준 의원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구집권을 위한 내란’으로 규정하며 김민석 국무총리에게 동의를 이끌어냈다. 이는 민주당이 단순히 과거 사건을 정치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국정운영 정당성을 윤 전 대통령의 책임과 직결시키려는 전략이다.
이해식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가 국민의힘 자체를 정당해산 심판 대상으로 지목했다. 그는 헌법 제8조 제4항을 근거로 국민의힘의 계엄 해제동의안 방해와 내란 옹호 발언을 열거하며, 대정부질문에 출석한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국민의힘 정당해산 검토 여부를 물었다. 그러자 정 장관은 “따로 검토한 바는 없지만 정당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반했을 때 해산 사유가 된다”고 설명하면서 “사건 종료 후 종합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러자 이 의원은 통합진보당 해산 선례를 적극 인용하며 해산 가능성을 제기했다.
민주당이 ‘정당해산론’을 꺼낸 것은 단순히 당을 압박하기 위한 레토릭(rhetoric)을 넘어, 법적·제도적 무기를 정치 투쟁의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통진당 해산 판결이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아직 생생한 만큼, 국민의힘에겐 ‘정치적 금기’에 가까운 프레임이다. 민주당은 이를 통해 국민의힘을 ‘내란정당’으로 고착시키려는 의도를 보인다.
또한 민주당은 국민의힘 주요 인사들의 발언을 내란 옹호로 규정하며 도덕적 압박을 가했다. 송언석 원내대표의 “그리됐으면 좋았을 것” 발언을 집중 부각시키며 사퇴 요구를 이어간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편, 지난 9일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노상원 수첩이 현실로 성공했더라면 이재명 대통령도, 저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하자, 송 원내대표가 “제발 그리됐으면 좋았을 걸”이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의심되면서 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의 이와 같은 압박은 여권의 도덕적 기반을 허물어뜨리고, 내란 청산을 국가적 과제로 규정함으로써 이재명 정부의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려는 정치문법이다.
국민의힘 우회반격, ‘3無정권’과 ‘특별재판부 위헌론’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내란 청산론’을 정면으로 받아치지 않고, 대신 이재명 정부의 무능을 전면에 내세웠다. 임이자 의원은 최근 잇따른 군 사망·폭발 사고와 조지아주 한인 구금 사건을 사례로 들며, “존재감도, 양심도, 진심도 없는 3無정권”이라고 규정했다. 이는 정부의 실책을 ‘무능 프레임’으로 묶어 국민 불안과 불신을 증폭시키려는 전략이다.
신성범 의원은 민주당이 추진 중인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를 정조준했다. 그는 “이미 윤 전 대통령 탄핵 절차는 적법하게 진행됐는데, 재판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특별재판부를 만든다는 것은 독재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서 드러나는 정치문법은 ‘삼권분립 수호자’로서 야당의 정체성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민주당을 사법부 장악 세력으로 몰아가는 이중효과를 노린 것이다.
또한 국민의힘은 지난 11일 열린 이재명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을 문제 삼았다. 이 대통령은 이날 “대한민국에는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다. 최고 권력은 국민, 그리고 직접 선출권력(입법·행정), 간접 선출권력(사법)”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사법부는 간접 선출권력’이라는 대통령 발언을 “삼권분립 서열화”로 규정하며,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발상이라 공격했다. 김민석 총리가 “국민 주권 강조 차원”이라고 해명했지만, 야당은 이를 ‘선출독재’의 증거로 해석하며 정권의 권력 집중 성향을 강조했다.
이러한 전략은 민주당의 내란 프레임을 무력화하는 동시에, 국민의힘 스스로를 ‘헌법 수호 세력’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이다. 즉 민주당이 ‘내란 정당’ 프레임으로 몰아붙이는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헌법 질서 수호자’라는 맞불 프레임으로 대응한 셈이다.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론, 사법부를 둘러싼 문법
대정부질문 첫날의 또 다른 쟁점은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론이었다. 민주당은 윤 전 대통령 파면 직후 조 대법원장이 한덕수 전 총리 등과 회동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이재명 사건을 대법원에서 해결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몰아붙였다. 이는 단순한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사법부의 정치개입 여부를 정권의 운명과 직결시키는 폭발적 의제였다.
정청래 대표는 “본인의 명예를 지키려면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한다”며 조 대법원장의 자진사퇴를 압박했다. 추미애 법사위원장도 “만약 사실이라면 대법원장의 대선 개입”이라며 특검 수사 필요성을 주장했다. 민주당 내에서는 사퇴 촉구와 특검 도입 목소리가 동시에 커지면서, 사법부 전체에 대한 신뢰 문제로 번지는 양상이다.
이에 맞서 국민의힘은 “사법부 숙청 시도”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장동혁 대표는 “이 대통령의 5개 재판이 중단돼 있어 불리한 상황을 바꾸려는 정치적 의도”라고 주장했고, 한동훈 전 대표는 “대법원장을 쫓아내려는 것은 헌법 위반이자 탄핵 사유”라고 반격했다. 국민의힘은 오히려 이재명 대통령이 사법 리스크를 벗어나기 위해 사법부를 흔든다고 프레임을 역전시켰다.
이 쟁점에서 정치문법은 ‘사법부 독립 vs 정치적 개입’이라는 구도로 압축된다.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 의혹을 사법 신뢰 위기로 규정해 정치적 공세를 강화했고, 국민의힘은 이를 ‘정권의 사법 리스크 돌파 시도’로 재규정하며 여론전에 나섰다. 사법부를 둘러싼 프레임 전쟁이 본격화된 것이다.
‘내란 vs 무능’, ‘정당해산 vs 사법부 독립’
이번 대정부질문 첫날은 단순한 정책 검증이 아니라, 정치적 생존을 건 전면전이었다. 민주당은 내란 청산·국힘 해산·조희대 사퇴라는 삼각 공세로 국민의힘을 ‘반헌법 세력’으로 몰아붙였다. 국민의힘은 이에 맞서 무능 정권·특별재판부 위헌·사법부 독립 수호라는 삼각 방어로 맞섰다.
정치문법적으로 보면, 민주당은 ‘과거 청산’을 통해 현재의 정당성을 강화하려는 전략을 택했고, 국민의힘은 ‘현재 무능’을 강조해 미래 정국의 주도권을 확보하려 했다. 이는 각각 ‘내란 vs 무능’이라는 핵심 프레임으로 압축된다.
또한 사법부를 둘러싼 ‘정당 해산 가능성’과 ‘대법원장 사퇴 압박’은 제도권 권력의 경계를 흔드는 중대 변수다. 민주당은 ‘헌법 수호를 위한 최후 수단’을 전면으로 내세우며 정당 구조에 칼날을 들이대고 있고, 국민의힘은 ‘삼권분립 수호자’를 자임하며 역공을 펼치고 있다.
결국 이번 대정부질문은 여야 모두가 정책적 성과 검증보다 권력의 정당성과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프레임 전쟁에 집중했다. 앞으로 남은 대정부질문에서도, 이러한 정치문법의 격돌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관련기사
- [정치문법] 여야, 악수 하루 만에 다시 격돌
- [정치문법] ‘한복 vs 상복’ 정기국회, 격랑의 정치문법
- [정치문법] 국힘 당대표 결선…金 ‘찬탄 포용’ vs 張 ‘반탄 결집’
- [정치문법] 조국의 귀환, 출발부터 논란된 언어와 장면
- [정치문법] ‘아무것도 아닌 사람’ 김건희의 문법…겸손으로 치장한 결백 주장인가
- [정치문법] ‘담요 체포’ vs ‘손대면 법적조치’…尹체포영장 재집행 속 ‘법의 문법’
- [정치문법] 민주당 당권 레이스, ‘누가 더 강력한 투사인가’ 막바지 혈투
- [정치문법] 정치, ‘명분’보다 국민 눈높이를 더 예민하게 감지해야 하는 기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