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대비해 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집중 단속을 실시하던 중 이주노동자가 단속원들에 쫓기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시민사회는 단속정책이 ‘폭력적’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31일 노동계에 따르면 지난 28일부터 정부의 미등록 이주민들에 대한 단속 정책이 반인권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30일 법무부는 ‘불법체류 감축 5개년 계획’에 따라 지난달 말부터 오는 12월 5일까지 정부합동감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8일 대구 성서공단 한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근무하던 이주노동자 A씨가 합동단속 과정에서 높은 곳에서 추락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대구출입국 단속반원들이 큰소리를 내며 공장 현장을 돌아다니자 두려움을 느낀 A씨는 2층 높이의 에어컨 실외기에 숨어 있다가 떨어져 숨을 거뒀다.
A씨는 실외기에서 숨어 있는 동안 자신의 SNS에 ‘숨쉬기 힘들다’는 생전 마지막 메시지를 남긴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입사한 지 2주 정도 지난 신입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대구본부는 지난 29일 성명문을 발표해 “이번 사망은 폭력적인 합동단속이 현실에서 어떤 비극을 낳고 있는지 보여주는 경고”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대구본부는 “정부의 단속 정책이 노동자들에게 심각한 공포와 불안을 조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며 “정부와 사용자들은 평소에 싼 값으로 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다가 국제적인 큰 행사가 다가오면 이들을 지우기 바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을 미국 조지아주에서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단속으로 약 300여명의 한국인이 구금당한 사건과 빗대어 “노동현장을 급습하고 단속 과정에서 인권침해를 자행한 미국과 한국이 무엇이 다른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며 날을 세웠다.
또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노동위원회는 전날 발표한 성명문을 통해 “이번 사건은 단순한 우연이나 사고가 아니라 국가의 폭력적 단속 정책이 초래한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비판했다.
민변은 “정부와 출입국관리 당국은 이미 유사한 사고가 여러 차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속방식을 개선하지 않고 반복했다”며 “정부는 폭력적인 합동단속을 즉각 중단하고 체류권을 보장할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국내 미등록 노동자 단속 과정에서 폭력과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것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지난 2월에도 경기도 화성의 한 제조업체 단속 과정에서 카자흐스탄 출신 노동자가 추락해 골절상 및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으며, 같은 날 경북 경산의 한 공장 단속에서 이주노동자 7명이 중 경상을 입었다.
법무부는 지난 29일 사건에 대한 보도설명자료를 내고 “고인의 사망 시간은 단속 실시 이후 약 40분 이후로 추정된다”며 “법무부는 적법절차를 준수하고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조치를 취한 후, 해당 사업장에 대해 단속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한국이 가입한 국제인권규약(ICCPR)은 체류자격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의 생명권과 안전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지난 2019년 단속시 인명피해가 없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고 강압적 조치를 자제하며 안전매뉴얼을 만들도록 권고한 바 있다.
관련기사
- ‘고향 없는 귀향’...연휴에도 쉼이 없었던, 이주민들의 추석 이야기
- “인간답게 살고 싶다”…이주노동자들, ‘노동기본권’ 국정과제 수용 촉구
- 세이브더칠드런 “종료 앞둔 ‘미등록 이주아동 구제대책’...상시화해야”
- 외국인 주민 지원 인력 81.8% “이주아동 사회문제 심각”
- 이주단체 “출입국관리법, 헌법·국제인권규범 맞게 개정돼야”
- 하늘의 별이 된 ‘미등록 이주아동’ 출신 강태완…“차별적 사회가 만든 비극”
- 아리셀 참사 후 드러난 ‘위험의 이주화’…“불법파견 구조 뿌리 뽑아야”
-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이주단체 “혐오·착취 만연, 평등한 권리 보장해야”
- “이주노동자, 우리 사회·경제에 많이 기여…‘범죄자 취급’ 멈추고 상생해야”
- 이주인권단체 “범죄자 취급하는 반인권적 ‘미등록 이주민 단속’ 중단해야”
주요기획: 식물해방일지, 벼랑 끝 경찰들, 벼랑 끝 소방관
좌우명: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쓰겠습니다 다른기사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