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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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국내 대학에서 비대면 시험을 둘러싼 대규모 부정행위가 잇달아 드러나며 대학 평가 방식 전반에 경고등이 켜졌다. 최근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의 교양·전공 시험에서 부정행위가 적발되며 시험 무효화와 대량의 0점 처리 조치가 발생했다.

10일 학계에 따르면 가장 먼저 논란이 불거진 곳은 연세대였다. 지난달 25일 신촌캠퍼스에서 개설된 3학년 전공 과목 ‘자연어처리(NLP)와 챗GPT’의 중간고사에서 상당수 학생이 부정행위를 저지른 정황이 확인됐다.

이 과목은 약 600명이 참여하는 대형 강의로, 비대면 시험 중 학생들은 얼굴·손·화면이 모두 보이는 촬영 영상을 제출해야 했지만 일부가 카메라의 사각지대를 만들거나 여러 창을 띄워 감시를 피해 부정행위를 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자진 신고자까지 포함해 190명에 달하는 다수의 학생이 인공지능(AI) 기반 도구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했다는 증언도 나오면서 담당 교수는 적발된 학생 전원의 성적을 0점 처리하기로 했다. 학교 측은 현재까지 40명이 부정행위를 자수했다고 밝혔다.

비슷한 시기 고려대에서도 대형 교양 과목 시험에서 부정행위가 발생했다. 1400명 규모의 ‘고령사회에 대한 다학제적 이해’ 중간고사가 지난달 25일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동안 일부 학생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만들어 문제와 정답을 실시간으로 공유한 것이다.

이를 목격한 학생들의 제보가 이어졌고 학교는 “부정행위 수준이 심각하다”며 시험 전체를 무효화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해당 결정은 시험 이틀 뒤인 27일 공지를 통해 공개됐다.

두 사건 모두 학생 수가 매우 많은 비대면 강의에서 발생했다는 점, 그리고 챗GPT 등 AI 도구 및 실시간 메시지 플랫폼이 부정행위 수단으로 사용됐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앞서 강의 형태가 비대면 강의로 전면 전환됐던 2020년 국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유행할 당시에도 대학가에서는 시험시 부정행위로 인해 골머리를 앓은 바 있다.

당시에는 시험 형태가 온라인인 점을 악용해 IP 동시 접속(하나의 웹사이트에 여러 개의 IP 주소로 동시에 접속하는 것)으로 문제를 대신 풀어주거나 같은 공간에 모여 논의하며 시험을 치르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대규모 비대면 강의를 수강한 전적이 있는 대학생 A(23)씨는 본보에 “비대면 강의는 특성상 부족한 학점을 채우기 위해 듣는 꿀교양(대학에서 낮은 노력으로 좋은 학점을 받기 쉬운 교양 수업)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같은 사례가 발생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마찬가지로 대학생 B(22)씨는 “600명 강의에 비대면 시험인데 부정행위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학측의 문제도 있다”며 “인원을 나눠 대면으로 시험을 치르거나 시험 방식을 바꿨어야 했다”고 진단했다.

생성형 AI가 대학 생활 전반으로 빠르게 스며들고 있음에도 이를 제어할 제도적 장치는 아직 미비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학생들은 과제 작성부터 자료 탐색, 학습 정리에 이르기까지 AI를 자연스럽게 활용하고 있지만 정작 많은 대학이 어떤 방식으로 허용하고 어디까지 금지할지에 대한 기준조차 확립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지난해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4~6년제 대학생 726명 중 91.7%가 과제나 자료 검색에 AI를 활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지만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조사에서는 전국 대학 131곳 중 71.1%가 생성형 AI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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