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돌, 인간을 흉내 낸 인형이다. 그 인간 유사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고, 또 분노했다. 기술은 스스로를 창조하려는 인간의 오랜 욕망 실현에 한발 다가섰지만, 인간의 도구화 등 새로운 문제 역시 드러내고 있다. 리얼돌은 인간의 정의까지 다시 생각하게 할 새로운 존재 탄생의 시작점일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파도를 우리 사회는 잘 준비하고 있을까. 이에 <투데이신문>은 지난해 불거졌던 리얼돌 논란을 되짚어보고, 리얼돌 판매업체·관련 교수들을 만나 리얼돌 논란의 핵심 쟁점과 앞으로의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가톨릭대 윤지선 교수 ⓒ투데이신문
가톨릭대 윤지선 교수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한관우 인턴기자】 리얼돌에 대한 여성들의 불쾌감은 해소되지 못한 채 날로 커져만 가고 있다.

지난해 6월 대법원이 리얼돌 수입을 허가한 이후 여성들을 중심으로 리얼돌 수입허용 판결을 규탄하는 시위가 진행됐다. 리얼돌 수입 금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26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여성을 위한 정당을 표방하며 탄생한 ‘여성의당’이 ‘강간인형(리얼돌) 수입, 제작, 영업 금지’를 주장하기도 했다.

도대체 여성들은 리얼돌을 왜 이리도 거부하는 걸까. 본지는 페미니스트 철학자이자 소수자의 몸 정치학 연구자인 가톨릭대학교 윤지선 교수를 만나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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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돌, 여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폭력 야기해

대법원은 성적 혐오감을 줄 만한 성기구가 공공연하게 전시·판매돼 제재가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수입 자체를 금하는 것은 신중해야 하고, 성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사용을 본래 목적으로 하는 성기구의 수입 자체를 금지할 법적 근거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리얼돌 수입을 허가했다.

이에 대해 윤 교수는 대법원의 판결 근거가 잘못됐다며 대법원의 잘못된 판단이 여성 도구화에 일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법원 판결은 성적 혐오감이 무엇인지와 성적 혐오감을 느끼는 주체나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남성들에게는 어떤 성적 혐오감도 들지 않을 수 있지만 리얼돌이 모사 대상으로 삼고 있는 여성들은 충분히 성적인 혐오감을 느낄 수 있다. 판결 근거에는 남성의 성적 자유 부분만이 부각되고 리얼돌로 인해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감·혐오감 등은 간과하고 있다.”

또한 윤 교수는 남성들이 리얼돌을 통해 여성 또는 여성과의 관계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될 수 있다며, 리얼돌이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위험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리얼돌은 여성 신체를 사실적이고 극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충분히 ‘여성’으로 인식될 수 있다. 이런 리얼돌을 사용하는 남성들은 리얼돌을 사용함으로써 ‘여성이란 무엇인가’, ‘여성은 어떻게 대하는 것인가’라는 인식을 구축할 수 있다. 또한 리얼돌은 현실의 성관계와는 다르게 남성 성욕의 일방적인 방출을 목적으로 설계된 것으로, 리얼돌을 통해 일방적인 성관계를 반복적으로 경험한 남성들은 ‘남성 성욕은 제어 불가능하며 일방적으로 표출되는 것이다’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게 된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결국 남성들은 ‘여성이란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며 이것이 현실의 여성에게 적용돼 성범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리얼돌이 성범죄와 연관될 것이라는 주장은 여성 단체들이 리얼돌을 ‘강간인형’이라고 부르며 분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히려 리얼돌이 남성들의 욕구를 해소해 성매매·성범죄 등을 저하시킬 수 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 윤 교수는 남성 중심적 관점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이는 철저히 ‘남성 성욕은 제어불가능 하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해소돼야 한다’는 남성 중심적 욕망의 관점에 의한 것이다. 성매매나 성범죄를 저지르는 남성들은 본능이 충족되지 못해서 저지른다기보단 타인의 신체를 착취함으로써 자신의 힘과 권력의 우위를 경험·과시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리얼돌 허용이 성범죄 저하를 불러올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어 윤 교수는 과거 리얼돌이 남성 관람객들에 의해 훼손된 사건을 언급하며 리얼돌로 발생할 폭력을 우려했다.

“2017년 ‘아트 일렉트로닉스 페스티벌’에서 인공지능 섹스로봇 ‘사만다’가 출시됐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사만다는 남성 관람객들에 의해 폭력적인 방식으로 훼손된다. 이 같은 사례를 볼 때 남성들은 리얼돌을 통해서 단순한 성욕의 만족을 얻는 것이 아니라 여성 신체에 남성의 지배욕을 각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실제 여성들과 연관될 수 있는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리얼돌 업계 관계자들은 대부분의 구매자들이 리얼돌을 폭력적으로 다루지 않으며 오히려 아낀다고 말한다. 즉, 리얼돌과 폭력은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윤 교수는 리얼돌이 남성이 마음대로 제어 가능한 여성의 몸이라는 점에서 위험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리얼돌은 남성의 일방적인 성욕이나 공격성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리얼돌을 남성의 욕망, 섹슈얼리티 관계의 기본형으로 보게 된다면, 나의 기분을 거스를 수도 있고 내 욕망을 고려하지 않는 실제 여성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실제 여성들에게 거부당할 때 남성들은 자존감의 상처, 모욕감 등을 느낄 수 있다. 즉 남성이 생각하는 여성과의 관계에 대한 왜곡이 생겨나는 것이다.”

가톨릭대 윤지선 교수 ⓒ투데이신문
가톨릭대 윤지선 교수 ⓒ투데이신문

특정 형태 리얼돌 문제 아니다전면 금지가 최선

여성들의 리얼돌에 대한 우려가 남성형 리얼돌이 없기 때문이라거나, 사실상 불가능한 특정 인물 모방 리얼돌에 대한 오해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윤 교수는 남성형 리얼돌이 많아진다면 여성들의 반감이 줄어들 것이라는 의견에 대해 단순한 성별 반전으로 리얼돌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짚었다.

또한 윤 교수는 특정 인물을 모방한 리얼돌 제작이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다며 우려했다.

“신체 형상을 성적 도구화한다는 점에서 남성형 리얼돌 역시 남성을 성적 대상화한다는 본질적인 문제를 피해 갈 수 없다. 또한 이미 SNS 특정인의 사진을 활용해 ‘지인 능욕’으로 불리는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 ‘딥페이크 포르노’ 등 모방하고자 하는 인물의 얼굴 전면, 좌·우측 세 가지 방향의 사진만 있다면 완벽한 모방이 가능하다. 이런 기술적 지형 안에서 특정 인물 리얼돌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법 구조에서 지인 능욕 범죄 등이 제대로 처벌되고 잇지 않음을 고려하면, 과연 법이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특정 인물 리얼돌을 제재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가장 큰 논란이 됐었던 아동형 리얼돌에 대해서도 특정 형태의 리얼돌만 규제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해외에서 아동형 리얼돌을 금지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아동형 리얼돌을 성적으로 인지하는 것이 아동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강화해 실제 아동들에게도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성인여성 리얼돌도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다.”

결국 몇몇 특정 형태 리얼돌을 제재하는 방법으론 문제의 핵심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게 윤 교수의 의견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 윤 교수는 리얼돌 문제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조치는 모든 형태의 리얼돌에 대한 전면 금지라고 바라봤다.

“모든 형태의 리얼돌의 유통·수입·판매·제작 등 리얼돌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 문화에 일조할 수 있는 리얼돌을 미리미리 제거하지 않았을 때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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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재고 필요…우리 사회의 문화 되돌아봐야

그러나 이런 불법화가 오히려 포르노·성매매 산업 등을 사회의 감시에서 멀어지게 했다는 의견도 있다. 차라리 리얼돌 산업을 양성화해 관리해야 한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윤 교수는 리얼돌 문제의 핵심은 산업의 음성·양성화가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문화적인 배경이라고 말했다.

“여성을 대상화하고 사물화하는 것만이 남성의 쾌락인지를 되돌아봐야 한다. 섹슈얼리티란 결국 나와 나의 몸의 관계일 뿐만 아니라 나와 상대방의 관계이다. 현재는 이 관계 맺기가 잘못돼 있다고 생각한다. 즉, 산업적인 음성·양성화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 섹슈얼리티가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 문제다.”

윤 교수는 n번방 사건 등을 언급하며 이런 우리 사회의 남성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지적했다.

“리얼돌을 문제 삼는 이유는 리얼돌 산업만이 문제라서가 아니다. 리얼돌이 다른 성착취적 문화와 연관성을 맺고 있는지 그 지형을 살펴봐야 한다. n번방이나 웰컴투비디오 등의 사례를 볼 때, 디지털 성범죄는 한국에서 특화돼 나타나고 있다. 이는 남성들이 여성을 어떻게 폭력적으로 욕망하는지를 용인해온 것이 원인이 됐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리얼돌 사용을 개인의 자유로 본다거나 해외의 규제를 마냥 따라가는 것은 적합하지 못하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윤 교수는 먼저 남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남성 욕망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그간 일방적이었던 남성 성욕을 정상적인 것으로 용인하고 제어 없이 만들어온 사회의 전반적 반성이 필요하다. 이 폭력적인 문화가 n번방 등의 성범죄 역시 낳았다.”

또한 윤 교수는 새로운 성 교육과 성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성인지 감수성을 함양한 성교육이 유치원 등 어린 나이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성교육이 부재해온 지금까지 남성들은 포르노그래피를 통해 여성을 배워왔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타자를 능욕·착취하는 것이 섹슈얼리티라고 생각하는 문화를 해체하기 위해 성범죄에 대한 엄정한 법적 처벌이 필요하다.”

윤 교수는 여성들이 리얼돌을 거부하는 이유 역시 이런 문화 속에서 리얼돌이 폭력으로 작용하게 되기 때문이라며, 이 문제는 남성이 ‘무엇을’ 욕망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욕망하는지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야동 등의 포르노그래피가 여성을 늘 성적 대상으로 놀이화하는 남성 놀이문화를 구축했고, 남성 욕망은 일방적·공격적이며 타자를 능욕하는 쾌락이라고 정상화했다. 그것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며 리얼돌 문제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 장치라는 점에서 양보하기 힘들다. 남성이 여성을 욕망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남성이 여성을 어떤 방식으로 욕망하고 있는지, 왜 남성은 여성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밖에 욕망하지 못하는지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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