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실손보험 손해액 2조5008억원…5년째 적자
생보사 중심으로 실손보험 판매 중단 움직임 확산
4세대 전환 임박 불구, 일부 보험사 출시 계획 혼선
【투데이신문 이세미 기자】 다음 달부터 새롭게 시행되는 4세대 실손보험 도입을 앞두고 보험업계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기존 실손보험 상품이 가지고 있는 높은 손해율 부담 등을 이유로 관련 상품 판매 여부를 확정 짓지 못하는 등 고심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1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다음 달 1일부터 ‘4세대 실손보험’이 시장에 선보인다. 4세대 실손보험은 지난 2017년 3세대 실손보험 출시 이후 4년 만에 개편되는 상품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5월 4세대 실손보험 개편 방안을 발표, 이번 4세대 실손보험은 가입자 간 보험료 부담 형평성을 위해 비급여 의료이용에 따른 보험료 차등화를 담았다고 강조했다. 이는 기존 실손보험의 일부 가입자들이 과잉진료로 인해 보험료 부담을 전체 가입자로 전가시키는 등 보험료 상승을 유발한다는 지적에 대한 보완책이다.
이에 일부 이용자의 과잉 의료로 보험금 누수가 심한 도수치료 등 비급여 항목에 대해 보장범위가 제한되며, 의료 이용량이 많은 경우 기준 보험료 대비 최대 300% 할증된다.
금융당국은 4세대 실손보험은 보장범위 및 한도는 기존과 유사하며, 국민의 보험료 부담은 기존 상품 대비 10~70%로 대폭 인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의료 이용률이 높을수록 보험료 부담이 커지는 구조라는 점은 보험 소비자 입장에서 고민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소비자들은 보험료 부담이 있더라도 더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존의 실손보험을 선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달부터 4세대 실손보험이 본격 출시되면 가입자들은 현재 판매되고 있는 3세대 실손보험에는 더 이상 가입할 수가 없게 된다.
실손보험은 그동안 보험업계에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아왔다. ‘팔면 팔수록 적자’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0년 실손보험 사업실적 및 향후 대응계획’에 따르면 실손보험은 지난 2016년부터 5년 연속 적자행진 중으로, 2020년 중 총 적자 규모는 2조500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손보업계 실손보험 손해액은 2조3694억원, 생보업계 실손보험 손해액도 1314억원에 달했다.
실손보험의 보험사 손해율도 123.7%를 기록했다. 실손보험 손해율은 발생 손해액과 실제 사업비를 더해 보험료 수익을 나눠 계산하는데, 손해율이 100%를 넘긴다는 것은 보험사가 그만큼 손실을 보고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손실은 기존 1·2세대 실손보험 중심의 시장 구조에 기인한다. 1세대 실손보험(구실손)은 2009년 9월까지, 2세대 실손보험(표준화실손)은 2017년 3월까지 판매 후 단종된 상품으로, 현재 실손보험 가입자의 80% 이상은 1·2세대 실손보험을 보유하고 있다. 1·2세대 실손보험의 가장 큰 장점은 자기부담금 비율이 각각 0%, 10~20%로 의료 이용 시 가입자 부담이 낮다는 점이 꼽힌다.
보험 가입자가 부담하는 비율이 낮다 보니 보험사로서는 가입자의 의료 이용률이 높을수록 손해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가입자가 낼 보험료가 갱신되고 있지만 보험사들의 손실 구조를 메우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업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금융당국은 2017년부터 기본형에 특약이 따로 마련된 형태의 3세대(착한 실손) 실손보험으로의 전환을 시도했으나 보험사들의 손익구조를 개선하는데 효과는 없었다.
실제 지난해 기준 실손보험 손실은 1·2·3세대를 막론하고 모든 상품에서 발생했다. 다만, 1세대(구실손) 실손보험 손실액은 1조2838억원으로 가장 큰 규모를 차지했다. 이어 △2세대(표준화실손보험) 실손보험(1조1417억원) △3세대 실손보험(1767억원) 순으로 집계됐다. 이 중 1·2세대 실손보험은 전체 손실액 중 97.0%를 차지했다.
이처럼 높은 손해율에 부담을 느낀 보험사들은 중소형생명보험사 중심으로 일찌감치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하고 있다. 손해보험사의 경우 2012년 AXA(악사)손해보험에 이어 2013년 ACE(에이스)손해보험이, 2017년 AIG손해보험이 실손보험 영업을 중단했다.
특히 실손보험이 비주력 상품인 생명보험업계에서는 적자를 기록하는 실손보험을 판매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 확대되면서 이탈 움직임도 커져가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 2011년 AIA생명을 시작으로 오렌지라이프, 라이나생명이 실손보험 판매를 멈췄고, 2017년~2019년에는 푸본현대생명, KDB생명, KB생명이 실손보험 판매 대열에서 차례대로 손을 뗐다. 지난해 말과 올해 3월에는 신한생명과 미래에셋생명이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했다.
보험업계는 기존 1·2세대 가입자들 상당수가 4세대 실손보험으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현재 상황을 타계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이에 다음달 4세대 실손보험 전환을 임박했음에도 보험사들은 상품 출시와 관련해 다소 미온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나아가 기존 실손판매 중단 흐름이 확산되는 분위기까지 감지됐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ABL생명은 실손보험의 손해율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4세대 실손보험 판매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ABL생명 관계자는 “출시 여부에 대해 아직 검토중이다”라며 “판매를 하더라도 새 상품 준비에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ABL생명의 실손보험은 손해율이 계속 높아지는 데다가 보유계약 규모도 단체계약을 포함해 총 11만4000건에 그치는 등 전체 실적에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ABL생명이 4세대 실손보험 출시를 포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본보가 확인한 결과 다음달 4세대 실손보험 출시를 확정지은 생명보험사는 총 6곳(삼성생명·교보생명·한화생명·농협생명·흥국생명)에 그쳤다. 이 중 농협생명은 판매시점을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농협생명 관계자는 “다음 달 1일로 실손보험 판매 일정을 맞추기는 어렵고, 7월 중으로 판매 예정”이라고 말했다. 교보·한화생명 등도 판매 여부와 시점 등을 고민하다 이달 중순 쯤 들어 결정은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일각에서는 보험료 형평성 문제 뿐 아니라 실손보험 손해율 상승에 따른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보험사이 4세대 실손보험 전환에 적극 참여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보험연구원 정성의 연구실장은 “4세대 실손보험 개편과 출시만으로 기존 보유계약에까지 미치는 영향은 역부족이기 때문에 보유계약 관리에 대한 공론화도 필요하다”라면서 “기존 1·2세대 실손보험 가입자들의 보험료 상승 및 형평성을 위해서라도 4세대 실손보험 전환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다만 “4세대 실손보험 또한 높은 손해율과 제도의 지속성 제고를 위한 목적으로 개편된 것으로 과잉진료 등 소비자 부담과 손해율 상승의 문제가 되는 비급여 항목에 대한 꾸준한 관리체계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기존의 실손보험처럼 효과는 미비할 것”라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