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시국이 심상치 않다.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정부의 발표 이후 불거진 의료 대란으로 치료 가능한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가 사망하는 사람이 발생하고 있다. 끊임없이 제기된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수수, 도이치 모터스 주가조작사건 개입에 대한 의혹은 그대로 묻히는 분위기고, 그것도 모자라서 김건희 여사가 총선 경선에 개입했다는 현행법 위반 의혹도 불거졌다.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사망한 채해병 사망 사건에 대한 특검 도입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제 상황은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안 보인다. 북한에서는 연일 오물을 담은 풍선이 내려오고 있다. 일본 사도광산의 국제문화유산 등재에 동의해 주더니 독도 수호 훈련은 그 규모를 축소했다. 그런데 우리는 막상 일본에 얻은 것이 없다.
그 결과 윤석열 대통령과 현 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매우 낮다. 심지어 일부 평론가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직전의 징후와 비슷하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정부의 쇄신이나 국정 기조 변화를 위한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또다시 탄핵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임기를 채우지 못한 역대 대통령’의 공통점을 살펴보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교훈이 될 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한 사례는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임시정부 당시 이승만,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이다. 이 가운데 윤보선 전 대통령은 내각책임제 체제에서의 실권이 없는 대통령이며, 5.16 군사쿠데타에 의해 쫓겨난 것이고, 최규하 전 대통령은 10.26 사건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된 이후 국무총리에서 대통령 대행이었다가 대통령에 취임했고,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반강제로 쫓겨났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은 탄핵됐지만 임시정부 상황이니 예외로 두겠다.
그렇다면 이제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박정희,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남는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4.19혁명으로 스스로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10.26 사건으로 피살됐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헌정 체제 안에서 탄핵 된 대통령이다. 이들에겐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이들 전직 대통령들은 자기 상태와 욕망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이승만에 대해 일부 역사학자들은 “양녕대군의 후손이라서 그랬는지 몰라도 대통령과 군왕을 구분하지 못했던 것 같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즉 본인이 대한제국 황실의 후예이고, 민주공화정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대통령이 과거 대한제국 황제와 비슷한 지위라고 생각했다는 주장이다. 박정희의 경우 대통령직이 가진 공공성보다 자신의 출세욕을 채우는 사적인 자리라고 인식했다는 주장이 있다. 즉 소학교 교사에서 만주군관학교 진학과 임관 후 관동군 활동, 남로당 입당과 숙군 과정에서의 전향은 모두 개인의 안위와 출세욕 때문이었는데, 박정희에게 대통령직은 시민들의 심부름꾼이 아닌 자기 출세욕의 최종 목적지였다는 것이다. 박근혜에 대해서는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이 마치 쫓겨났던 집에 다시 들어간 것으로 인식했다는 평가가 있다. 또한 박근혜는 대통령직에 오르기 전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정치적 감각이 뛰어났는데, 대통령직에 오르고 나서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정치적 감각과 판단력이 많이 쇠퇴했고, 스스로가 그것을 파악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심지어 약물 중독 의혹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까지 돌았다. 박근혜 스스로가 이러한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둘째, 이들은 ‘대통령’이라는 역할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대통령은 국민을 대신해서 헌법 체제 아래서 국민을 대신해 국정을 수행하는 직위다. 특히 대통령은 영원히 유지되는 자리가 아니라 임기가 있다. 이들 전직 대통령들은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일부 역사학자들이 이승만이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왕과 비슷하게 본 것 같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래도 박정희는 이승만에 비해서는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3선 개헌과 유신개헌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법적으로 해낸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도 박근혜의 대통령 재직 기간은 이승만, 박정희 때와 같이 영구집권이 불가능한 시기였다. 이로 인해 수구 세력은 과거와 달리 자신들이 대통령감을 내세우더라도, 자기 안위를 위해서라면 대통령의 탄핵에 주저함이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국회 투표가 그것을 보여준다. 대통령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치 세력이 고른 대표 주자가 후보로 나서는 것이다. 이것은 대통령직에 있더라도 제대로 정치 세력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거나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조금 힘들고 복잡한 절차를 거치더라도 그 직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자리가 대통령임을 의미한다.
셋째, 이들은 주변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 이승만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승만이 방귀를 뀌니까 옆에 있던 사람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부통령 이기붕을 비롯한 이승만 측근들은 자기 권력 유지와 집권 야욕만 눈멀어 있었고,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이라는 직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이승만의 눈과 귀를 더 가리면서 4.19혁명의 주요 원인이 됐다. 박정희의 경우 2인자 자리를 놓고 측근들을 경쟁시키면서 자기 자리를 유지했다. 김종필, 김형욱, 이후락, 김재규, 차지철 등이 이 과정에서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러나 결국 3선 개헌이나 유신 개헌에 대해 반대한 측근들을 숙청하고, 자기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들만 측근으로 둔 것이 피살의 주요 이유가 됐다. 독신이라 비리를 저지를 가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던 박근혜 역시 ‘문고리 3인방’으로 대표되는 측근 세력, 그리고 민간인 신분에서 국정에 개입했던 최서원씨와 관련된 사건이 탄핵으로 이어졌다.
넷째, 공교롭게도 이들이 임기를 마치지 못한 원인에는 시민들의 희생이 있었다. 이승만은 북한군의 침공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해 수많은 시민들이 전쟁의 참화에 희생되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또한 한국 전쟁의 와중에도 많은 민간인 학살에 관련돼 있다. 무엇보다도 이승만의 장기 집권 음모에 저항한 시민들을 경찰력을 동원해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김주열 열사를 비롯한 많은 희생자가 있었다. 박정희 정권의 경우 수많은 간첩조작 사건, 김형욱 살해 의혹, 베트남전 참전 군인·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희생자, 그리고 장준하 선생·전태일 열사를 비롯한 노동운동가와 민주화 운동가의 사망과 부마항쟁 당시 사상자 등이 존재한다. 박근혜 정권의 경우 경찰의 물대포 직사로 인해 사망한 백남기 열사, 그리고 세월호 참사로 200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러한 시민들의 희생은 이들 세 명의 전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세 명의 전 대통령에게는 또 다른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겠지만, 필자가 짚은 주요 공통점은 이렇다. 그렇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어떤가? 대통령도 자신에 대해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 ‘검찰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국정도 잘 할 수 있다’라는 이유로 자신의 정치 경험 부족에 대한 비판을 차단했지만, 초반에 언급한 정치, 경제, 외교, 한반도 문제 처리를 보면 자신의 정치력 부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자신의 부인과 장모의 비리 의혹, 측근에게 둘러싸여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또한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검찰총장과 헷갈린다는 비판을 받는 것을 보면, 대통령이라는 직에 대한 이해도 하지 못한 것 같다. 임기 초에 이태원에서 시민들이 압사당했고, 수해로 사람들이 희생됐다. 수해에 따른 실종자를 수색하다가 채해병이 순직했으며, 의료 대란으로 응급실에 제때 가지 못해 사망하는 시민들이 발생하고 있다. 시민들이 희생당하는 모습도 비슷하다는 의미다.
필자는 아직 윤석열 대통령에게 기회와 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임기는 반이 넘게 남았고, 대통령에게는 인사권이 있으며, 김건희 여사에 대한 재판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일시적인 권력인 동시에 자신의 대통령 당선이 거대한 수구세력의 대표로 선출된 것뿐이라서 언제든 그 자리에서 끌려내려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자신이 뭐든지 다 잘하는 검사 출신이 아닌 5급 공무원 출신임을 자각해야 한다. 잘 모르는 것은 전문가에게 물어보고, 측근의 말 중 거슬리는 부분이 있어도 한 번은 들어봐야 한다. 김건희 여사와는 이혼도 불사하고 엄정하고 중립적 수사가 이루어지도록 한발 물러나 있어야 하고, 수신(修身)과 제가(齊家)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국민을 향해 사과해야 한다. 자신이 선택한 측근들 가운데 잘못된 역사관을 가진 뉴라이트 인사들과 시대에 맞지 않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교체해야 한다. 현재 국회에서 나오는 특검 요청, 특히 채해병 특검을 야당이 추천한 인사로 꾸리는 것으로 재가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벼화를 바탕으로 국정을 쇄신해야 한다. 임기를 채우지 못한 대통령이 가진 공통점을 지금이라도 반면교사로 삼고 실천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무사히 임기를 마치고 역사에 남는 대통령도 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