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사화(士禍)란 조선조 신하나 선비가 정치적 반대파에게 참혹하게 희생당한 일들을 일컫는 말이다. 흔히 조선의 4대 사화는 최초의 사화로서 연산군 4년(1498), 성종 재위 기간 성장했던 김종직 일파가 연산군 등위 이후 실록의 사초 문제로 숙청당한 사건인 무오사화(戊午士禍), 가장 많은 선비들이 희생된 사건으로 1504년(연산군 10) 연산군 집권기에 연산군의 친어머니 윤씨의 폐비와 처형에 관련된 사람들을 숙청한 사건인 갑자사화(甲子士禍), 연산군 폐위 이후 집권한 중종이 비대해진 사림(士林)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들을 숙청한 기묘사화(己卯士禍), 그리고 명종 집권 이후 파평 윤씨(尹氏) 일족들 사이의 권력 다툼 과정에서 소윤(小尹)이라 일컬어지던 윤원형(尹元衡) 세력이 윤임(尹任)을 비롯한 대윤 세력과 이에 협력했던 사림 세력이 숙청당한 을사사화(乙巳士禍) 등을 꼽는다.
이번 회차에 다룰 정미사화는 조선의 4대 사화에 들어가는 사건은 아니다. 을사사화의 연장선에서, 소윤 세력이 대윤 세력의 잔당을 숙청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사건으로 대윤의 잔존 세력들이 숙청당하고 이언적(李彦迪), 백인걸(白仁傑), 노수신(盧守愼) 등 사림이나 사림에게 온건했던 훈구 세력이 유배형에 처해졌는데, 그 규모는 을사사화를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정미사화는 양재역(良才驛) 근처에 나붙은 벽서로부터 시작됐다. 이로 인해 정미사화는 ‘벽서의 옥(壁書獄)’, ‘양재역 벽서 사건’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 벽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주(女主)가 위에서 정권(政權)을 잡고 간신(奸臣) 이기(李芑) 등이 아래에서 권세를 농간하고 있으니 나라가 장차 망할 것을 서서 기다릴 수 있게 됐다. 어찌 한심하지 않은가. 중추월(仲秋月) 그믐날.
벽서에서 여주(女主)는 명종의 어머니이자 소윤의 영수 윤원형의 누이인 문정왕후(文定王后)를 일컫는다. 또한 이기(李芑)는 윤원형과 함께 문정왕후를 뒷배로 전횡을 휘두르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결국 붉은색 글씨로 쓰여졌다고 전해지는 저 벽서는 을사사화로 정적을 누르고 권력을 잡은 소윤 세력을 향한 비난이었다. 이에 소윤 세력은 발본색원과 작성자 처벌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특히 소윤의 영수 윤원형은 “을사년 당시에 재앙의 근원들을 다 뿌리 뽑지 못한 데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라고 주장했으며, 벽서에 이름을 올린 이기(李芑)는 대윤의 잔당들이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하면서 처벌에 앞장섰다. 그리고 실제로 을사사화 당시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처벌됐다.
그런데 정미사화의 단초가 된 벽서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돼왔다. 과거에 보통 벽서가 나붙기 시작하면 벽서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벽서를 떼어낸 뒤 소각했다. 또한 왕이나 지배층에 관한 벽서는 그들에게 보여줬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벽서는 명종에게 그대로 바쳐졌다.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문정왕후 역시 이 벽서를 봤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벽서 사건이 발생하면 용의자를 찾는 것이 기본인데, 윤원형은 사건이 터지자마자 “을사년 당시 재앙의 근원”이라고 말하면서 구체적인 용의자 세력을 지목했다. 이로 인해 벽서를 떼어다가 바쳐서 이 벽서 사건을 대전과 신하들에게 처음으로 고발한 부제학 정언각(鄭彦慤)의 조작이었다는 풍문이 당대에 팽배했고, 심지어 당시 사관(史官)들까지도 정언각이 조작했다고 의심했다.
정미사화로 인해 대윤세력과 대윤세력에 협조적이었던 사림세력은 완전히 축출됐다. 을사사화가 대윤세력 축출의 시작이었다면, 정미사화는 그 마무리였다. 그리고 윤원형과 그 추종세력은 확실하게 권력을 독점했다. 그러나 이들의 권력 다툼과 살육전 속에서 당시 백성들의 생활은 갈수록 피폐해져 갔다. ‘의적’이라는 별명이 붙지만 실제로는 도적떼였던 임꺽정이 활동했던 시기가 바로 명종 대였다.
최근 국민의힘의 홈페이지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대통령과 영부인을 비난하는 내용의 글들이 올라왔던 것이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친윤석열 측에서는 누가 올렸는지 발본색원하라고 하고, 친한동훈 측에서는 계속 부정하고 숨기려다가 조금씩 “뭐가 어때!”라고 외치고 있는 상황이다. 인기 없는 현직 대통령 윤석열과 그편에 선 세력, 그 반대편에 언론이 그런 대통령의 대안 세력으로 열심히 밀고 있으나 도통 인기가 오르지 않는 한동훈과 그편에 선 세력 사이의 권력 다툼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인기도 없는 두 정치인 중심의 세력이 권력을 놓고 내부 갈등을 벌이는 사이 시민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있고, 많은 사건과 의혹의 당사자들은 증거를 감추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