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보통 천하(天下)는 전통적 우주관에서 ‘온 세상’을 뜻한다. 그런데 시간을 뜻하는 수사와 명사가 합쳐진 후 그 뒤에서 ‘천하’라는 말이 붙으면, 해당되는 짧은 기간 동안 권력을 잡았다가 그 권력을 빼앗긴 사건을 뜻한다. 예를 들어서 1815년 3월, 유배지엔 엘바섬에서 탈출한 나폴레옹이 프랑스 최고 권력자 자리에 다시 오르고, 이후 6월 29일 워털루 전쟁에서 패배한 뒤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다시 유배된 약 100일간의 기간을 ‘100일천하’라고 부른다. 1884년(고종 21) 12월 4일 이전 칼럼에서 소개했던 김옥균 주도의 갑신정변(甲申政變)은 보통 “3일천하로 끝났다”라고 묘사된다. 갑신정변부터, 청(淸) 군대의 개입과 백성들의 반발로 갑신정변 주도 세력이 일본으로 도피하기까지 3일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2024년 12월 3일~4일. 윤석열의 ‘3시간천하’가 있었다.
지난 3일 오후 10시 30분경. 윤석열은 긴급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국회, 특히 더불어민주당의 예산 삭감 등을 비난하면서 종북세력 척결과 헌정질서 수호를 위해 계엄을 선포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신속하게 계엄사령부가 설치됐고, 계엄사령관 명의의 포고령도 발표됐다. 집회, 결사, 언론의 통제, 그리고 국회 활동 금지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특히 파업 중인 전공의들의 병원 복귀도 명시돼 있었다. 도로에는 장갑차가 등장했다.
시민들과 국회의원들은 국회로 모여들었다. 국회의원의 과반수 출석과 과반수 찬성이면 계엄령 해제를 요구할 수 있고, 이 요구를 받는 대통령은 3시간 안에 계엄령을 해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찰들이 국회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고, 국회 밖에 있던 국회의원들은 국회로 진입할 수 없었다. 모여든 시민들은 국회를 봉쇄한 경찰과 대치하다가 일부 시민들과 유튜버들이 국회 진입에 성공했다. 그러던 사이, 국회 앞마당에 헬리콥터가 도착했고, 공수특전단 소속 군인들이 국회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투입된 군인들의 수는 280명이라고 전해진다.
투입된 군인들은 유리창을 부수고 국회에 진입해서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했다. 당직자와 국회의원들은 온 힘을 다해서 이 시도를 막았다.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는 우원식 국회의장, 이재명 대표,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를 체포하기 위한 체포조의 움직임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4일 오전 2시 30분경 190명의 국회의원이 계엄해제 요구를 의결했다. 그리고 이후 국회에 진입했던 군인들은 철수를 시작했고, 계엄은 해제됐다.
이번 윤석열의 3일천하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계엄의 명분이 없었다. 국회는 국회의 권한으로 예산을 삭감했고 탄핵을 발의했다. 이것이 불만스럽다고 계엄을 선포할 수 없다. 또한 북한이나 반국가단체의 두드러진 준동이 없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대통령직에 있는 윤석열과 여당이 국가 체제를 위협하고 있다. 계엄을 선포할 어떤 근거도 없다는 의미다. 둘째, 계엄 하에서도 국회는 경찰이 봉쇄하고 군인이 진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헌법 체계에서 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것은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 자신과 국회다. 그렇다면 계엄 상황에서도 국회는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그런데 경찰이 국회를 봉쇄하고 군인이 진입해서 국회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하며, 각 당의 대표에 대한 체포를 시도했다는 것은 명백한 쿠데타다. 셋째, 국가에 엄청난 혼란을 초래했다. 계엄 선포 순간 환율은 급등했고, 이후 열린 주식시장에서 주가는 급락했다. 미국 정부는 윤석열의 계엄 선포에 대해 매우 우려했고, BBC는 속보로 전세계에 한국의 계엄 선포를 알렸다. 결국 경제는 더욱 퇴보했고, 한국의 외교적 신뢰도는 급락했음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수많은 계엄령이 있었다. 계엄령은 여순사건, 4.3사건, 부산정치파동, 4.19혁명, 5.16 군사쿠데타, 한일회담 반대, 유신선포, 부마항쟁, 12.12 군사 쿠데타 등 역사적 사건의 일부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계엄령은 권력의 탈취나 독재자의 권력 유지, 저항 세력을 향한 탄압의 수단으로 사용됐다.
그리고 이번 윤석열의 ‘3시간천하’에서도 권력의 유지와 자신과 행정부 권력을 견제하는 국회의 무력화 시도가 두드러진다. 한국전쟁의 와중에도 국회는 폐쇄되지 않았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계엄령 이후 경찰을 동원해 국회를 봉쇄하고, 군인들을 투입해서 본회의장 난입을 시도했다. 계엄해제 요구 의결을 막기 위한 시도가 너무 뻔히 보인다. 이번 쿠데타는 윤석열 정부 몰락을 더욱 앞당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