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br>▸철학박사<br>▸상지대학교 조교수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순서를 고려하면 이번 회차는 ‘보수·진보개혁진영 정치인’편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원인 때문에 이번 회차에서 보수·진보개혁진영 정치인 대신 현 시국에 역사가 ‘시민’에게 주는 교훈을 먼저 다루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 이유는 칼럼의 말미에 소개할 것이다.

다시 한 번 ‘임기를 채우지 못한 대통령’들을 생각해 보자. 이승만, 박정희, 박근혜. 이 세 명의 전직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게 된 결정적인 지점에 항상 시민 항쟁이 있었다. 3.15 부정선거가 일어났던 제4대 대통령·제5대 부통령선거 유세 과정에서 2월 28일에 대구지역 고등학생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학교 측이 당시 일요일에 있을 장면 부통령 후보의 유세에 학생들이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일요일 등교를 유도했기 때문이었다. 3.15 부정선거 이후 발생했던 광주와 마산에서의 의거 역시 학생과 시민들이 주도했고, 마산에서 사망한 김주열 열사 역시 중학생이었다. 그리고 4.19 항쟁에는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시위에 참여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와 관련해서 사람들이 많이 기억하는 것은 이승만이 경무대를 떠날 때 시민들이 도열해서 환송 인사를 건넸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시민들은 남산에 있던 이승만의 동상을 쓰러뜨렸고, 탑골공원에 있던 동상의 머리 부분을 거리에 끌고 다녔다. 그리고 이승만의 하야 성명을 듣던 시민들은 만세를 외쳤다.

박정희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한 직접적 이유는 10.26 사건, 즉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를 암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전부터 지속됐던 시민들의 항쟁은 10.26사건으로 이어졌다. 박정희 정권의 민주화 운동가에 대한 엄청난 탄압, 기업의 노동자 인권유린에 대한 방관, 박정희 정권의 각종 부정부패는 시민들의 분노를 축적시키기 충분했다. 그리고 이러한 시민들의 분노는 YH사건, 김영삼 당시 의원에 대한 국회의원직 제명으로 더욱 커졌으며, 이렇게 커진 시민들의 분노는 부마민주항쟁으로 드러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한 결정적인 계기는 시민들의 촛불시위였다. 세월호 참사, 백남기 농민의 사망, 전염병인 메르스에 대한 정부의 부실한 대응 등으로 촛불시위 전부터 시민들의 분노가 쌓였다. 그리고 소위 ‘태블릿 PC’ 보도로 비선 실세가 드러난 이후 2016년 10월 29일부터 총 23차례, 주최 측 추산 연인원 1600만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23차례의 촛불집회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오히려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이 시위 후 현장을 청소했으며, 심지어 경찰을 향한 물리적 대응을 자중하는 모습까지 드러났다. 유럽과 미국의 시위에서 약탈과 폭력이 발생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로 인해 세계적으로 대한민국 시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성숙한 모습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들 대통령들이 임기를 채우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는 시민들의 분노였다. 3.15 부정선거, 김영삼 의원 제명과 YH 사건, 태블릿 PC 보도 등 시민들이 분노를 표출하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그 이전에 세 명의 대통령 정부의 부정과 부패, 실정이 시민들의 분노를 키웠다.

현재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꽤 오랫동안 20% 초반에 머물고 있다. 임기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서 이런 지지율을 보여준 대통령은 없었다. 그만큼 시민들의 분노가 쌓여있다는 의미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에서 현 정부는 실정을 거듭했다. 이른바 명품 디올백 수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부산저축은행 사건 등 각종 의혹과 논란을 비롯한 대통령과 그 가족의 각종 부정부패 의혹도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 채해병 사망, 수해로 인한 인명피해 발생 등 희생자가 발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승만 정부의 3.15 부정선거, 박정희 정부 측의 김영삼 의원 제명, 박근혜 정부 당시 비선 실세 폭로 등 결정적인 무엇인가가 세상에 드러난다면, 시민들의 분노는 현실로 드러날 것이다.

현 정부에서 시민들이 현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매우 큰 위험 부담이 있다. 이승만의 하야를 이끌었던 4.19혁명 당시 경찰의 발포로 혁명 당일인 4월 19일 하루 동안 1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과 마산 지역에 투입된 계엄군이 시위 진압 과정에서 많은 폭력을 자행했다. 그나마 박근혜 정부 당시 촛불시위 때는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당시 서울시장은 야당 소속인 박원순 시장이었고, 지금 서울시장은 여당 소속이다. 무엇보다도 현 대통령이 검찰총장 출신이다. 미국 건국의 주역이자 민주주의의 상징 중 한 명인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은 “자유의 나무는 때때로 애국자와 압제자의 피를 먹고 새로워져야 한다. 피는 곧 자유의 천연적인 거름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슬프게도 이 명언은 보통 민주주의가 더욱 성장하려면 시민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뜻을 전달할 때 쓰인다.

수많은 소문과 선동이 난무할 것이다. 김주열 열사 사망 직후 시위가 발생하자 이승만 정권은 공산당 운운하며 여론 호도를 시도했다. 오죽하면 4월 19일 당일 시위대가 “데모가 이적이냐, 폭정이 이적이냐”, “민주주의 바로잡아 공산주의 타도하자”는 구호를 외쳤을까. 박정희 정권은 자신의 정권을 연장하기 위해 용공 조작을 서슴지 않았다. 촛불집회 당시에도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을 향한 각종 괴담, 그리고 박근혜 탄핵 반대 시위도 벌어졌었다. 이승만, 박정희, 박근혜 정권 당시보다 소식을 접할 수 있는 매체의 종류도 증가했다. 그리고 그만큼 각종 괴담 유포와 선동도 난무할 것이다. 폭로와 괴담, 선동과 독려를 구분할 수 있는 시민들의 안목이 필요하다. 특히 선동의 경우 언론, 선출직을 꿈꾸는 정치인, 1인 미디어로 수익을 창출하는 사람들이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정치 진영을 불문한다. 수구진영 기성 언론의 최대 목표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권의 수립이고, 진보진영 기성 언론은 진실이 아닌 기계적 중립과 대안언론을 향한 질시에 빠져있다. 수구진영 유튜브는 썸네일부터 각종 조작과 거짓 선동으로 돈을 벌고 있다. 진보진영 유튜브 진행자 일부는 현 정권 수립의 일등공신이고, 일부 진행자는 ‘내가 다 안다.’, ‘너 잘 들어!’라는 식으로 과격하게 발언한다. 그러나 막상 자신이 잘못된 결과를 이끌었거나, 잘못된 태도로 발언하는 것에 대해서는 “보기 싫으면 보지 말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필자 역시 행여 이번 회차의 글을 읽는 분이 선동으로 느끼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해서 글을 쓰고 있음을 밝혀둔다.

마지막으로 현 시국에 역사가 ‘시민’에게 주는 교훈을 보수·진보개혁진영 정치인에게 주는 교훈보다 먼저 다루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이번 회차를 마무리하겠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 당시에는 야당이 탄압받는 모습을 본 시민들이 분노를 표출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산정치파동, 조봉암 사법살인, 김대중 납치사건, 김영삼 의원직 제명 등 이승만, 박정희의 정권 연장을 위해 야당 정치인이 탄압받는 경우는 셀 수 없었고, 이러한 상황을 맞이한 시민들이 분노를 표출했다. 그러나 박근혜의 대통령 탄핵은 시민들의 주도한 촛불시위로 인해 조성된 여론을 바탕으로 야당이 탄핵에 나섰다. 지금도 여소야대의 정치적 상황, 윤석열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로 인해 야당이 여론을 주도할 확률은 매우 낮을 것이다. 시민이 한발 먼저 나서야 할 상황이다.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은 유권자의 권리와 책임이다. 유권자는 투표를 통해 참정권을 누린다. 그러나 투표의 결과는 자신의 투표 내용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책임으로 돌아간다. 시위 역시 집회와 결사의 자유라는 권리를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 집회의 결과 역시 시민의 책임이다. 박정희는 쿠데타로 집권했고, 이승만은 초선 당시를 제외하고 선거 부정과 공권력을 동반한 개헌의 결과로 당선됐다. 그러나 박근혜는 공정한 선거를 거쳐 당선됐다. 현 정부 탄생의 책임은 모두에게 있지만, 가장 큰 책임은 정치를 결심한 윤석열 대통령, 그 결심을 받아안아 대통령 후보로 옹립한 국민의힘, 외곽에서 지원하다시피한 수구언론에도 있다. 그러나 표를 던진 시민에게도 책임이 있다. 투표로 박근혜를 당선시켜서 권리를 누린 시민은 엄동설한에 촛불을 들고 탄핵을 요구하는 것으로 책임을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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