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이영민 편집인
△ 투데이신문 이영민 편집인

2024년 12월 3일 저녁 10시를 넘긴 시각. 특별할 것 없던 연말 평일 저녁 시간대였다. 모두가 휴식을 취하고 있었을 그 평온한 저녁. 갑자기 정규방송을 끊고 등장한 대통령은 종북·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겠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한다. 비상계엄이라.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고 싶지 않은,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과거 세대에게는 극도의 공포감을 소환시키는 단어 ‘계엄’. 비상계엄이 45년 만에 다시 현실이 돼버린 순간이었다.

지난 금요일 헌재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선고했다. 정확히 122일이 걸렸다. 헌재의 만장일치 탄핵 인용으로 계엄선포의 정당성 여부에 대한 논란도 일단락됐다고 봐야 한다. 악몽과 같았던 윤 정권의 역사적 평가는 잠시 미뤄두자.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앞으로 정치권과 정부는 탄핵 이슈로 양분됐던 국론을 통합하고, 폭력적인 트럼프 행정부의 도전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지 현실적이고 치밀한 경제 대책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 사실 리카르도 이후 완성된 자유무역 질서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트럼프식 패권주의가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효율성을 추구해 온 자유무역 질서에 관세를 무기로 미국만을 위한 기이(奇異)한 질서를 만든다는 것은 자멸의 길을 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다수의 경제전문가들은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결국 미국의 역성장을 불러오며, 전 세계를 제2의 대공황으로 빠뜨릴 위험이 있다고 절망적 경고를 연이어 내놓고 있다.

당장 미국 시장은 트럼프의 관세정책에 큰 혼란으로 반응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경제가 더없이 좋은 상황에서 비현실적 억지 정책을 밀어붙이자 시장이 망가지고 있는 것이다. 주식시장은 이틀 연속 폭락했고, 변동성지수는 4년 새 최고조에 달했다. 경기침체 우려에 유가도 60달러 선까지 급락했다. 관세 폭탄을 맞은 세계 각국의 대응도 빨라지고 있다. 중국이 34%의 맞불 관세를 부과하고 희토류 수출을 통제하기로 했으며, 유럽연합도 보복관세 품목을 검토하는 등 맞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한중일도 경제통상장관회의를 통해 자유무역협정 추진을 논의하는 등 각국의 연대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반발 움직임은 거세다. 미 전역에서 정부구조조정과 관세정책을 반대하는 反트럼프 시위가 확산하고 있고, 트럼프 행정부의 황태자로 통하는 일론 머스크는 유럽과의 무관세 자유무역을 주장한다.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내년 중간선거에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수지취하(水之就下),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이치를 돌리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인류가 쌓아온 문명의 공든 탑이 이단아의 출현에 붕괴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영원할 것 같은 패권국의 지위도 역사의 흐름 속에서는 흥망성쇠를 거듭해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다. 네덜란드가 그랬고, 대영제국이, 그리고 미국도 그렇게 피고 지는 운명의 섭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특히, 트럼프가 촉발시킨 경제 혼란상을 미국 스스로 되돌리지 못한다면, 필켱 미국은 패권국의 지위를 급속하게 상실하게 될 것이다.

무도한 윤석열式 통치가 건강한 민주주의 체제를 흔들지 못했듯, 무논리로 동맹국을 압박하는 트럼프式 통상질서는 자유무역의 근간을 결코 훼손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일시적이든 잠깐이든 ‘관세 공세’에 우리 시장이, 우리 경제가 겪게 될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은 당면과제다. 정치권과 정부는 신속하게 국내 정치를 안정화시키고 발등의 불인 무역피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민간 부문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현실적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국제적으로도 세계 각국과 연대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미국 정부와도 통상마찰을 최소화하는 유연한 묘수 찾기에 총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헌재 탄핵이 내려지니 이제는 내란완전종식이 먼저니 개헌이 우선이니, 정치권의 도넘은 정치질이 몹시도 거슬린다. 벼랑끝에 서 있는 국민들의 삶을 바라보라. 그리고 그 안에서 해결책을 마련하라. 가장 시급한 현안은 경제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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